한여름밤의 꿈, 스위트 홈
괜찮아, 혼자만의 시간과 우정도 소중하니까
월요일 오전 아홉 시, 사회적으로 합의된 오피스 타임이 되자마자 부동산에 연락했다.
돌아온 대답은 황당했다.
방이 네 개 있는 타운하우스는 우리가 보고 간 직후에 다른 분이 계약을 해버렸다고 했다.
혼자 살 집으로 고민했던 초소형 단독주택은 주인이 세를 놓지 않겠다며 거둬들였다고 했다.
집을 보고 간 토요일 오후부터 셋이서 머리 터지게 고민하던 일요일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이틀 후 수요일, 혼자서 새로운 집을 찾아갔다.
한경면에 위치한 타운하우스는 스무 세대 정도가 모여있었고 1층에 침실 하나와 거실, 화장실 그리고 2층에 다락방이 있는 작은 이층 집이었다.
제주시나 서귀포 시내 권역에서는 꽤나 멀어서 직장인의 출퇴근은 어려웠다.
마트나 병원 등 편의시설도 부족했고 해안에서도 떨어진 내륙이라 오션뷰도 아니었다.
대신에 감귤밭과 메밀밭을 낀 주위가 무척 한적했고 월세도 합리적인 편이었다.
시내권 다세대주택 투룸도 월세가 80만 원씩 하는데 아무리 농촌지역이라고 하지만 잔디마당이 딸린 단독주택 월세가 90만 원이었으니까.
이사 갈 집을 알아보던 보름 간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재택근무하는 일만 겨우 억지로 해냈을 뿐, 저녁에 혼자 있는 시간에도 책 한 권 제대로 집중해서 읽을 수가 없었다.
집을 정 못 구하면 한 달 살기 집으로 당분간 옮겨 다녀도 되지 뭐, 걱정하지 말자고 다독였건만 갈 곳이 없다는 게 불안했다.
자꾸만 멍해져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겠다 싶었을 때, 한경면에 있는 작은 타운하우스를 발견했다. 일 층 면적이 십오 평, 이 층이 다섯 평으로 혼자 살기에 충분히 널찍하면서도 휑하지는 않을 정도로 딱 적당한 크기였다.
제주시에서 출퇴근하는 친구들과 달리 혼자 살 집은 위치가 어디라도 크게 상관없었다.
편의시설 중 자주 이용하는 곳은 카페뿐인데, 카페는 제주도 어느 곳이나 있으니까.
새로 구한 한경면 집에서도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커피맛이 좋기로 이름난 카페가 있었고 차로 10분 정도 나가면 오션뷰 카페도 갈 수 있었다. 하나로마트도 차로 십 분 거리에 있었다.
에어비엔비로 한 달 동안 사시는 분이 배려해주신 덕분에 집 내부를 둘러보고 난 후에 근처 카페까지 십분 정도 걸어갔다.
뜨거운 카페라테에 무화과 스콘을 곁들여서 천천히 먹으면서 그냥 이 집에서 혼자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작은 아씨들처럼 밝고 명랑하며 매너와 성품도 나무랄 데 없는 친구들과 함께 산다면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셋이 살 만한 집을 구하는 건 어렵겠다는 판단이 섰다.
나뿐만 아니라 친구들도 집 보러 다니기에 지쳤을 테고 그 중에서도 K는 앞으로도 제주에서 지낼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제주살이를 시작하면서 일상에서 추구한 것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즐거움보다는 자연을 즐기고 독서와 사색의 시간을 갖는 거였다.
제주에서 만난 친구들과는 서로 좋은 면만 알았지 굳이 보이고 싶지 않은 면은 감추기도 했다. 가끔은 무척 우울해지기도 하는 데, 한쪽 앞발을 내주고 말없이 쳐다보는 주인집 마당개 보더콜리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비밀이었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로 계약을 하는 데는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등기부등본과 집주인 신분증 사본을 확인하고 계약금 오십만 원을 쏘고 나니까 끝이었다.
한경면 들판에는 커다란 밭을 하얗게 뒤덮다시피 안개꽃을 닮은 메밀꽃이 한창이었다.
타운하우스 사진과 메밀꽃 사진을 단톡에 올리고는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이사 가기 전에 남은 기간인 두 달 동안에 셋 다 살고 싶은 멋진 풀옵션 집이 나온다면 계약금 50만 원을 기꺼이 포기할테니까 다같이 살아도 좋다는 의사도 밝혔다.
다정한 친구들은 시원섭섭하게 축하해 주었다.
Y는 좋은 집 얻은 것 같다며 만약에 제주시에서 출퇴근만 가능하다면 자신도 옆집으로 이사 오고 싶다고도 했다.
한경면에 구한 새 집은 지금 사는 목조주택 별채처럼 제주스러운 집은 아니었다. 바다도 안 보였다.
그래도 잔디마당 있는 단독주택이므로 책 읽고 글 쓰기엔 좋을 것 같았다.
2층에 손님방과 화장실이 따로 있니 친구들이 놀러 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근사한 제주 카페에서 또 만나서 독서하고 책수다 떨 수 있을테지.
‘친구랑 같이 산다고?
그거 친구가 원수 된다’며 대뜸 말렸던 지인 말이 떠올랐다.
제주에 내려와서 혼자 살게 된 게 일 년 반밖에 안 됐는데 아직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더 필요한 것도 같았다.
딱 한번 괜찮았던 소개팅한 이성과 결혼해서 행복하게 산 분들도 있겠지?
아마 전생에 나라를 구하셨던 거 같은 분들 말이다.
젊은 시절 딱 한 번 만났던 괜찮은 남자는 두루두루 무난했지만 한눈에 반할만한 매력은 부족했던 거 같다.
어쩌면 나는 언제나 혼자만의 시간을 더 바랐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