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침묵과 친해지기
D-25.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추자도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한 장도 읽지 못한 채로 배낭 속에 넣어뒀던 책을 꺼냈다.
틱낫한 스님의 ’ 침묵’이었다. 이미 도서관 반납 기한이 한참이나 지났으므로 대충 훑어보고 반납하러 갈 예정이었다.
그날은 유난히 머릿속이 맑았던가.
앉은자리에서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었다. 책 내용이 그때 나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눈을 떼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침묵 속에서 마음을 알아차리고 내 안에 있는 고요함과 만나라는 메시지가 가슴속에 남았다.
내 안에 시냇물이 흐르고 숲이 우거진 세상이 있다는 책 내용과 달리, 내 안에는 슬픔 밖에 없었지만 어느 사이에 표면에 햇살이 반짝이는 짙푸른 수평선처럼 드넓고 잔잔해져 있었다. 물결이 일렁이듯 기억이 떠오르고 슬픔이 솟구쳐 올라왔다가 잔잔해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 후부터는 그가 떠난 빈자리가 예전처럼 괴롭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나 외출했다가 집에 돌아올 때도 버림받았다는 비참함을 그전보다 덜 느꼈다.
지인들과 추자도로 여행을 가서 실컷 걸었고 그들과 어울리다가 돌아왔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육지를 떠나 제주에 정착한 지인들도 나와 마찬가지로 중년의 나이에도 홀몸이었다. 줄곧 독신으로 지낸 이도 있었고 결혼했다가 헤어진 이도 있었다. 어차피 누구나 혼자였다.
텅 빈 집에서 침묵이 어색할 때는 창문을 열었다. 낮 동안에는 진녹색 나무 안에 숨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바람 소리와 섞여서 들렸다. 밤에는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듯 수많은 풀벌레 소리가 쨍하게 들렸다.
밤에는 불을 끄고 침대에 반듯이 누워서 유튜브로 스님의 법문을 들었다.
생각이 끊어지는 잠은 죽음과 닮았다. 아마도 죽음이 잠과 비슷할 거라고, 그처럼 평온할 거라고 생각하면 괴로움이 천천히 사그라들었다.
그가 떠난 지 이십오 일째 되던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