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나디아


어제 퇴근 후 집, 여지없이 귀찮고 배는 고프고

유난히 자잘한 일로 꼬였던, 신경 많이 쓴 하루라 아무것도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원래도 퇴근 후 별것도 안 하지만 더 철저히 아무것도 안 하리라 의지 불끈하여

방치된 곳곳 안보리라 실눈을 뜨고 집안 구석구석을 누빈다.

우유 따르고 요즘 나의 최애 과일 참외와 골드키위를 깎아 자르고

냉동실에 있던 적당히 해동된 빵을 잘랐다. 바질 크림빵

맛이 아닌 허기를 채우고자 먹는 거였지만 그래도 빵 너, 빵 주제에 너무 맛.없.다.

불현듯 정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빵을 꾸역꾸역 먹으며 그래서 그 情.

정든다는 것, 정이 떨어진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해 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이 든다는 것

그게 얼마나 무서운(?)것인지 어렴풋이 알게되었던 그 때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로 돌아간다.

엄마는 그 시절에도 유치원 교육을 지나치지 않으셨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피아노 학원 등 기초 과외를 충실히 시켜주셨다.

우리 집에 멋들어진 갈색 영창 피아노가 딱~ 들어선 순간! 난 더욱 열심히 피아노 학원을 드나들었고 막 체르니 100번을 시작하며 조금 버벅거리는 중이었다.

하교 후 일주일에 두세 번 악보집을 넣은 커다랗고 넓적한 가방을 앞뒤로 휘두르며 걸어가

큰길 건너 있는 미화음악학원 문을 열어젖혔다. 안녕하세요 오오~~!

"OO 왔니~~ 3번 실로 들어갈까~" 하며 반겨주시던 선생님

세상에나 강산이 수차례 변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선생님이 이름이 정확히 기억난다.

김정희 선생님. 생김새, 머리 스타일, 말투,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신기할 정도로.

선생님은 얼굴이 하얬으며 코는 약간 가늘고 길었고 머리카락은 갈색, 컬로 둥그런 형태의 중 단발을 하고 계셨다.

난 그냥 선생님이 좋았다. 초등생 어린이가 뭘 알았겠냐만 그전에 여러 차례 거쳐 간 어떤 선생님들보다 느낌이 좋았고 편하고 함께하는 시간, 마음 따뜻했다.

꽤 오랜 기간 김정희 선생님께 피아노를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습관처럼 "엄마~ 나 피아노 다녀올게~" 가방을 휘저으며 미화음악학원에 도착,

웬일인지 원장님과 부원장님이(이들은 부부) 앞장서 나를 맞이하셨다.

그리고 원장님의 교습을 받았다.

"김정희 선생님은요?"

그만두셨단다. 심장이 쿵. 떨어지는 느낌이 이거구나.

어쩜 선생님은 그럴 수 있지? 내게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떠나실 수 있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난 집에 와서 바로 방에 들어가 한동안 펑펑 울었다.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선생님에게 너무 많은 정이 들었던 것.

울음이 멈추지 않았다. 꺽꺽 꺼이꺼이 책상에 엎드려 우는 나를 보다 못해 아빠가 들어오셔서 그만하면 되었다고 그만 울고 나와서 밥 먹으라고 꽤 단호히 말하고 나가셨다.

"밥이 뭐가 중요해~~" 난 더 목청 높여 울었다. 아빠가 뭘 아냐면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다. 학원 선생님이란 직업이 이직률이 높고도 높은 직종이며 그 선생님에게는 그저 잠시 거쳐 간 직장이었을 뿐이리라. '선생님, 근데 너무 정들었나봐요. 선생님이 너무 그립습니다'

이렇게 일기를 쓰며 마음을 다독였으며 인생 최초의 헤어짐에 어린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고 이별은 예기치 않은 것이었기에 후유증이 좀 길었다.


정 떨어지는 것에 대하여.

그건 한순간.

언젠가 엄마랑 언니랑 서울투어를 했다. 걷기 좋아하는 세 모녀(엄마는 그 후 고관절을 다쳐 걷는게 힘드시다 ㅠ)가 계획한 코스는 청계천 ~ 인사동 ~ 익선동 ~ 삼청동

특히 삼청동은 오래전부터 내가 참 좋아하는 동네였다.

십수 년 전 '삼청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란 카페에 가입까지 했으니 말이다.

요즘도 종종 경복궁을 지나 삼청동 길을 걷고 그 길 끝, 삼청공원에서 초록 내음과 함께 힐링하며

꼭대기 동네까지 올라가 그곳에서 인왕산 자락 아래 서울 동네를 내려다보는 걸 좋아했다.

그러나 번번이 식사를 만족하게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지라 그날도 그게 난제였다.

그래서 그냥 많은 기대 없이 요기나 하자며 참으로 익숙한 이름의 나름 맛집에 들어섰다.

한 번도 가본 적 없지만 이름이 익숙한 것은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검색에서 수없이 지나쳐 봐 온 상호였기 때문이다.

난 미식가도 아니고 그래서 사 먹는 밥에 대한 기대치가 높지 않다.

차고 넘치게 지속되 온 맛집 리뷰, 2층 홀로 올라가는 계단 벽에 붙여진 수많은 방문 연예인 사인

이것만 아니었어도 이리 배신감이 들진 않았을 것.

김치말이 국수는 무맛. 초등생이 집에서 대충 김치를 가지고 만들어도 그보다는 맛있겠다 싶을 정도로

이상한 시궁창 맛이 날 정도. 다 남김

평양 왕만두는 무슨 냉동만두 확실하고 고기 냄새 비릿하고 다 식어빠진 채 나와 이것도 다 남김.

떡갈비??? 무슨 떡갈비가 두께 5미리도 안되며 ㅠ 이것도 인스턴트 확실.. 너무하리 만치 부실한 식단.

녹두전?.... 아 말하고 싶지 않다. 화가 치민다.........

어떻게 이렇게 장사를 하지?

진수성찬, 때깔 나는 호텔 정찬이 아니어도 소박한 한 끼에도 진심의 맛이 느껴질수 있다는 걸 잘 알기에

난 삼청동에서 그날 그 밥 한 끼를 먹으며 삼청동, 내가 사랑하는 동네에 정이 뚝 떨어졌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단호하게.

디저트라도 맛나게 먹어보고자 봐두었던 큰 규모의 빵집에 들어가 빵을 골라 나와서 한쪽씩 맛 보았다.

그 빵집에 버글대며 앉아있던 사람들은 뭐지? 요즘 맛난 빵집이 얼마나 많은데.. 두세 평짜리 가게라도.

그 빵을 다시 꺼내 먹어보아도 수준 미달이다. 바로 지금 이 빵, 바질 크림빵.

그 한 끼 식사 이후 난 앞으로 삼청동엘 한동안 아니 오래도록 안 가게 될 것 같다.

애정이 식었다..

이렇게 한순간이다 정이 떨어지는 게....

빵이 성에 차지 않으니 2차 디저트는 내 사랑 옥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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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떤 대상에게 쉽게 정이 드는 사람이었다.

우리 언니는 그런 나를 금사빠라고 놀린다.

그렇지만 나의 오랜 사랑, 삼청동도 이렇게 떠나가는구나.

새로운 사랑이여 오렴~

사랑은 사랑으로 잊히는 거라며?






p.s. 호기롭게 브런치를 시작하고 마지막 글을 쓴지 6개월이 지나 오늘 오랜만에 찾아왔습니다. 이토록 힘든것이, 그토록 대단한것이 꾸준함이죠. 꾸준하게 꾸욱꾸욱 진심을 담아 글을 쓰는 모든 브런치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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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드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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