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부산발 기차에서 울었다

by 나디아


'몰입'

무언가에 흠뻑 빠져 심취해 있는 무아지경의 상태

멕시코> 과나후아토> 바라띠요 (사진출처: 과나후아토 관광청 인스타그램)


어린 시절부터 나는 몰입력이 큰 사람이었다.

무언가에 한번 빠지면 앞도 뒤도 옆도 보지 않는 그런 성격

'몰입'이란 단어를 타이틀에 내세운 책 들도 우연찮게 서너 권 읽었다.

-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잠재력을 깨우는 '몰입'을 하라! 는 카피를 내세우며 두뇌계발요법? 즉 몰입적 사고를 강조하는 자기 계발서도 있었고

- '행복 추구'라는 인류의 끊임없는 염원을 고찰하는 인문학서도 있다. 행위에 깊게 몰입하여 시간의 흐름이나 공간, 더 나아가서는 자신에 대한 생각까지도 잊어버리게 될 때를 일컫는 심리적 상태인 flow 플로우. 그 즐거움에 몰입하는 것. 어쩜 '몰입'의 사전적 정의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책이다.

아! 최근에 독서모임을 위해 읽은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잊혀진 몰입의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그때 그 순간이 떠올랐다. 부산에서 출발하는 기차에 앉아 가뿐 숨을 몰아쉬며 눈물 콧물을 쏟았던 나.

그렇다. 보편적인 인간인 나는 저자들이 파헤친 몰입하는 인간의 색깔을 많이 띠고 있다.

밥벌이 즉, 해야 하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내 외적 에너지를 고갈시킨다는 것을 얼마나 일찍 체득한 건지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일이 나를 억누를세라 난 몰입할 거리를 끊임없이 찾았다.

그리고 그것이 내 인생에서 꽤 긍정적으로 작용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참 이상하다. 열심히 일에 몰두를 하면 월급으로 보상받고 시효는 오래 못 갈지라도 칭찬의 말과 좋은 평가의 결과가 있는데도 그것만으로는 행복하지 않으니 말이다.

반면에 내가 '몰입'하고 있는 것은 원사이드일 확률이 거의 백프로다. 그러나 아무도 말릴 수 없다. 기꺼이 빠져든다.

그 대상은 그것이 유형이든 무형이든 아무 반응도 피드백도 없다.

그런데도 아낌없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게 하며 알 수 없는 상실감을 채워주며 도파민을 분비시키며 충만한 삶으로 인도하고 있다고 느끼니 말이다.

몰입하는 인간인 나는 여전히 반응 없는 그 무엇에 열정을 쏟으며 충만함을 느낄 것이며 그것은 카타르시스가 되어 적잖이 나를 위로할 테지만,

나는 오늘 '몰입'이란 제목을 달고 이제야 본론, 바로 '몰입'의 부작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몇 년 전 겨울이었다.

패딩을 벗어 팔에 걸고 가방을 단단히 고정시켜 메고 끝이 없어 보이는 워킹벨트와 계단을 쉼 없이 달리며 비행기에 올라타고 기차에 올라탔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그 여정을 위해 작은 거짓말도 저질렀고 크진 않아도 몇 가지 모험을 무릅쓰기도 했다.

나는 전 날 조퇴를 하고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해에 도착하여 저녁부터 덕질을 즐겼다. 김해에서 1박을 했고 다음날 부산으로 왔다.

광안리 어느 카페에서 부산에 사는 친구와 잠깐의 조우를 마치고 그녀의 배웅을 받으며 부산역을 향해 근처에서 지하철을 탔다.

한 번인가 갈아탔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시계를 자꾸 쳐다본다. 이런.. 기차시간이 빠듯하다.

출발시간 정확히 1분 전 헉헉거리며 기차에 올라타 몇 량을 통과해 내 자리를 찾아 앉으니 찬바람을 가르고 뛰어와 거칠어진 호흡이 제 궤도를 쉽사리 찾지 못하고 연신 기침을 쏟아내었다.

얼굴에 땀범벅

자리에 착석하여 그제야 가뿐 숨을 몰아쉬는데 십 분이 지나도록 진정이 되지 않았다.

헉헉 휴후휴우... 콧물이 사정없이 흘러나왔다. (추운 날 바람을 가르며 뛰다 멈춰 서서 숨을 고르면 그렇게 콧물이 나더라.)

숨을 고르는 소리는 되도록 억눌러가며 쉴 새 없이 흐르는 콧물을 휴지로 닦으며 혼자 그 자리에서 무척 바빴다. 그리고 콧물을 닦는 척하며 눈물을 닦았다. 그 참에 눈물을 쏟아버린 것.

누가 보면 사연 있는 줄 알겠다.

덕질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오늘이건만 난 현생 때문에 파라다이스를 즐기고 있는 덕친들을 뒤로하고 혼자 상경을 하는 참이었다.

왜 나만? 이 말도 안 되는 억울함은 무엇이며 아쉽고도 아쉬우면 그만일 것을 그 천국잔치에서 나만 버려진 것 같은 마음은 대체 무엇인지.

속상한 마음 반이라면 나머진 너무 당황스러워서 흘린 눈물이라면 믿을까.

이 나이에 어느 대상에게 너무 몰입하여 이러고 있는 꼬락서니(?)라니. 참 당황스럽다.

겨우 몇 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그때의 난 지금은 좀 생경스러울 정도로, 놀랍도록 그 덕질의 삶에 몰입해 있었다.

그 눈물의 의미는 나도 정확히 모르니 설명할 수 없다.

한여름밤의 꿈같다면 설명이 될까.

그 미칠듯한 행복은 너무 짧다. 그것을 끝내고 시간 맞추어 제자리로 돌아온 신데렐라. 그 모습.

여전히 손에 잡힐 듯한데 내 것도 아니고 그것을 쫓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덩그러니 남겨진 현실.

뒷수습은 끝이 없다.

그러니 허탈해지고 외로워지고 씁쓸해지고 행복하기만 했던 그 '몰입'이 점차 내 마음을 복잡하게 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제자리로 돌아와 가리어진 시간 속에 남겨져 있다. 쉽사리 손도 마음도 가지 않는 무엇들이 도처에 널려있다.

마음은 여전히 반쯤은 붕 떠있고 그 공기는 이상스레 심란하게 차 올라 있어 난 '몰입'의 심각한 부작용, 후유증에 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몰입'의 지경에 빠지다 보니 이렇게 부작용(?)도 겪었지만 다시 돌아와 몰입의 즐거움, 그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났다. 지난 5년이란 시간은 내 삶의 암흑기랄까 사막을 걷는 기분이었다. 코로나 블루에 시달렸고 목숨 같은 내 사랑, 엄마가 큰 사고를 겪었으며 나도 큰 병치레를 했다.

그래서 웃음 헤픈 여자로 평가받던 나는 정신적으로 꽤 깊은 우물을 체험했다.

당연히 몰입의 즐거움이 깨졌다. 뭐를 해도 집중이 되지 않고 즐거운 일은 도처에 없었다.

누군가 나에게 '최근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인가' 묻는다면 나는 대답할 것이다.

"몇 년 전 딱 이 계절 즈음 부산발 기차 안에서 눈물 콧물을 흘리던 그 때요! 그때의 내가 그리워요!"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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