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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수 Sep 02. 2023

1923년 관동(간토)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 요코하마 등 관동(간토) 지방 대지진 때 조선인 대학살 사건이 일어난 지 딱 100년이 되었습니다. 100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진상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통한의 심정으로 참담한 역사 현장을 되돌아봅니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간토) 지방에서 대규모 지진이 일어났을 때 일본 군경, 민간인에 의해 수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습니다. 영화 [박열]에서 관동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의 진실을 그려 많은 사람들이 이 참상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관동대지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는데 당시 일본 정부 각료였던 ‘미즈노 렌타로’가 내각 회의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키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여 치안책임을 맡게 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화 [박열]의 미즈노 렌타로 실제 모습

    

미즈노 랜타로는 3.1만세 운동 때 조선총독부에서 해임되어 본국으로 송환된 실존 인물로 사태 수습을 위해 재일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획책합니다. 그가 주도하여 유언비어를 퍼트리고 재일 조선인에 대한 테러를 사주합니다. 계엄령을 내리면서 산하기관에 다음과 같은 지령을 내립니다. “조선인이 일본인을 학살하고, 우물에 독약을 넣고 방화를 하며, 강도와 절도, 약탈하는 배후엔 조선의 사회주의자가 주도하고 있으며, 이에 일본의 아나키스트들이 동조하여 사태를 증가시키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의 역사학자들에 의해 이미 진상이 많이 밝혀졌는데도 우리 정부는 왜 진상 규명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가.     

2014년에 103명 의원이 ‘관동조선인학살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공동 발의했지만 본회의에 상정되지도 못하고 폐기되고 만 적이 있습니다. 조선인이 6천 명에서 2만 명 정도가 학살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진상 규명을 요구하거나 배상 청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조선인으로 오인되어 수백 명의 중국인이 살해된 것에 대해 중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강력 항의하여 사과와 보상을 받아냈는데 우리나라 정부는 왜 문제 제기를 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오욕의 역사를 꼼꼼하게 되짚어 봐야 합니다.     

1919년 3.1만세운동으로 중국 본토 상해에서는 임시정부가 수립되고 간도 지역의 독립군은 급속하게 세를 확장하여 1920년 봉오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큰 전과를 올리게 됩니다. 큰 타격을 입은 일본군은 간도, 연해주 일대의 조선인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데 간도 지역의 ‘경신대참변’으로 3만 이상, 연해주 지역의 ‘4월참변’으로 5천 이상이 끔찍하게 살해되었습니다. 1923년 일본에서 간토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무고한 조선인이 2만이나 학살된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들이 친일파의 후손들이라 이런 아픈 민족사가 감추어진 게 아닐까요? 영화에서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 ‘가네코 후미코’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등장하는데 그를 보면서 우리 역사의 왜곡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당시 일본의 많은 지식인들이 제국주의의 만행에 저항했습니다.  

집단학살 당하는 동경의 조선인들 ⓒ가야하라 하쿠도 작품

김용필은 소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에서 양심적인 일본 지식인을 그려냈습니다. 소설에서 언급한 ‘다케오’는 실존 인물 ‘가야하라 하쿠도’를 바탕으로 그린 인물인데 그는 관동대학살 때 일본인 자경단이 재일 조선인을 학살하는 장면을 리얼하게 그려낸 화가입니다. ‘시게하루’라는 소설가도 언급되는데 이 작가는 소설 ‘십오원 오십전(十五圓 五十錢)‘에서 관동 대학살 때의 자경단 만행을 다음과 같이 그렸습니다. 이 장면은 영화 [박열]에 리얼한 영상으로 담겼습니다      


  기차가 역에 닿을 때마다 총검을 손에 든 병정이 플랫폼에서 차 속을 들여다보곤 했다. 우리를 태운 기차가 어느 시골 역에 닿았을 때 총검을 든 병정이 차내를 검색하러 들어왔다. 눈알이 차간을 훑어보다가 바로 내 곁에 앉았던 노동자 한 사람을 보고 "쥬우 고엥 고짓생(15원 50전) 해봐"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 허름한 차림의 사나이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지 못해 한참을 머뭇거리더니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쥬우 고엥 고짓생?"했다. "요시"하고 병정이 차간을 나간 뒤에 나는 그 사내 쪽을 눈여겨보면서 "쥬우 고엥 고짓생! 쥬우 고엥 고짓생?"하고 혼자서 속으로 몇 번이나 되씹어 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겨우 그 질문의 의미를 알아차렸다. 무엇을 목적한 질문이었던가를……. 그 노동복 입은 사내가 만일 조선인이었던들, 그리고 '쥬우 고엥 고짓생'을 '쥬우 고엔 고짓샌'이라고 발음했던들 그는 그 자리에서 영락없이 끌려가고 말았을 것이다.

- <十五圓 五十錢> 중에서 -


[박열] 자경단에 의해 조선인 소녀가 학살당하는 장면

소설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의 주인공은 아버지로부터, 일본에서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시신을 찾아보라는 부탁을 받고 일본으로 갑니다. 일본에서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러준 여인의 후손을 만납니다. 할아버지의 묘소에 가보고 할아버지에 대해 글을 쓴 소설가의 후손과 학살 장면을 그림으로 남긴 화가의 후손도 만나게 됩니다. 그가 만난 이가 바로 일본 제국주의 시대에 좌파 문인으로 유명한 ‘시게하루’와 조선인 대학살을 그림으로 그려 남긴 화가는 ‘소오 다케오’입니다.      

일본이 저지른 만행이 너무 끔찍하여 아이들에게 이 아픈 역사를 가르치는 일이 참 곤혹스럽습니다. 그렇지만 덮어두고 넘길 수도 없는 노릇입니다. 송재찬 작가는 <1923년 9월 1일>로, 손연자 작가는 <꽃을 먹는 아이들>로 관동대학살을 그려내어 여린 아이의 감성으로 우리 아픈 역사에 공감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 분들의 고뇌와 노고에 보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작품이 나옴으로써 우리 역사는 소리 없이 진보해 왔으며 영화 [박열]로 꽃을 피웠습니다.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게 된 대작의 탄생 이면에서 눈에 띄지 않게 고역을 감당해온 분들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겠습니다. 재일 동포 영화감독 ‘오충공’에 의해 세 차례에 걸쳐 조선인 학살을 다룬 영화가 이미 제작되었습니다. 1983년에 다큐멘터리 <감춰진 손톱자국>이 나왔고 1986년에 <마을 사람들에게 불하된 조선인>이 나왔습니다. 세 번째 작품 <1923년 제노사이드>가 곧 발표된다고 합니다. 그는 ‘관동조선인학살 제94주기 추도식’에 참석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를 성토했습니다. 역사 왜곡의 적폐를 더이상 좌시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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