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결혼식을 끝내고 이제 내 삶의 여정에 놓여있는 큰 숙제를 또 하나 마친 안도의 느낌이었다. 그런데 이틀 후 202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계엄 사태에 분노와 불안의 열흘을 지냈다. 뉴스를 보고 또 보며 충혈된 눈으로 힘들어도 쉽게 잠들기 어려웠다. 그런데 광장에 사람들이 모이고, 절실하지만 즐겁게 폭발하는 에너지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며 안도하였다. 내가 성인이 되어 경험한 두 번째 계엄이었다. 고통이 느껴졌다. 12월 14일 꿈틀거리는 마음을 진정하지 못해 여의도로 나섰다. ‘가결!’ 그 순간에 내 주변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시에 움직이며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고, 특히 젊은 여성들이 엄청난 힘과 에너지로 환호하고 춤추며 노래하고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 목소리와 몸짓은 그 자체로 희망이었다. 슬쩍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어려운 시기마다 여성들이 발화한 목소리의 의미를 생각하며 오늘 1919년 <대한독립여자선언서>를 새삼스럽게 읽어본다. 1919년 3.1 운동 직전 간도에 있는 애국부인회 회원을 중심으로 작성된 이 선언서는 순한글로 작성되었다. 147행 1,355 글자에 여성과 남성은 서로 대등함을 천명하면서 나라를 빼앗긴 슬픔과 억울함, 분노와 고통 그리고 두려움 없이 독립을 위해 용기를 내자는 목소리를 꾹꾹 눌러 담아 작성하였다.
읽어본다.
대한독립여자선언서
슬푸고 억울하다 우리 대한동포시여 우리나라 이 반만년 문명역사와 이천만 신성민족으로 삼천리 강토를 족히 자존할 만 하거늘 침략적 야심으로 세계의 공법 공리를 무시하는 저 일본이추세적 만성으로 조국의 흥망이해를 불고하는 역적을 협동하야 압박수단으로 형식에 불과한 합방을 성립하고 제반 음독한 정치 하에 우리 이천만 형제자매가 노예와 희생이 되어 천고에 씻지 못할 수욕을 받고 모진 목숨이 죽지 못하야 스스로 멸망할 함정에 가처서 하로가 일년 갓흔 지리한 세월이 십여년을 지나스니 그 동안 무한한 고통은 다 말할 것 업시 우리 동포의 마음속에 품은 비수로써 징거할 바로다
필부함원에 오월비상이라 하엿거늘 하물며 수천만 창생의 억울 불평한 애소를 지공무사하신 상제께서 통촉하심이 업스리요 고금에 업는 구주대전란의 결국에 민본적 주의로 만국이 평화를 주창하는 금일을 당하야 감사하신 남자사회에서 처처에 독립을 선언하고 독립만세 한 소리에 엄동설한의 반도강산이 양춘화풍을 만나 만물이 소생할 시기가 이르럿스니 아모조록 용력 위에 일층의 용력을 더하고 열성 중에 일도의 열성을 더하야 유시유종하시믈 혈성으로 기도하는 바오며 우리도 비록 규중에 생활하야 지식이 몽매하고 신체가 연약한 아녀자의 무리나 국민됨은 일반이오 양심은 한가지라 용력이 절등하고 지식이 고명한 영웅달사도 뜻을 달하지 못하고 억울이 이 세상을 마친 자 허다하것마는 비록 지극히 몽매한 필부라도 성력이 극도에 달하면 반다시 원하는 거슬 일우난 거슨 소소한 천리라
우리 여자 회에서도 동서를 물론 하고 후생의 모범될 만한 숙녀현원이 허다하것마는 특별히 금일에 우리의 본바들 선생을 들어 말하면 서양 사파달이라 하는 나라에 사리라 하는 부인은농가에 출생으로 아들 여덟을 나아 국가에 바쳤더니 전장에 나가 승전은 하엿스나 불행이 여덟 아들이 다 전망한지라 부인은 그 참혹한 소식을 듯고 조곰도 슬퍼하지 안이하고 춤추며 노래하여 가라대 사파달 사파달아 내 너를 위하야 여덟 아들을 나았다 하며 의태리에 메리야라 하는 부인은 청누 출신으로 의태리가 타국의 절제 하에 잇슴을 분개히 녁여 재정방침을 연구하며 청년사상을 고취하야 백절불회하는 지기와 신출귀몰 하는 수단으로 마침내 독립전쟁을 개시하얏스나 불행하여 열열한 뜻을 다 일우지 못하고 이 세상을 영별할 때에 감은 눈을 다시 뜨고 제군 제군아 국가 국가라는 비장한 유언에 삼군의 격렬한 피가 일시에 끌어 죽기로써 맹셔하야 의태리의 독립이 그날로 되엿스며 우리나라 임난 때에 진주에 논개씨와 평양에 화월씨는 또한 화류계 출신으로 용력이 무쌍한 적장 청정과 소섭을 죽여 국가를 다시 붓든 공이 두 분 선생의 힘이라 하야도 과언이 안이니
우리도 이러한 급한 때를 당하야 겁나의 구습을 파괴하고 용감한 정신을 분발하야 이러한 여러 선생을 본바다 의리의 전신갑주를 입고 신력의 방패와 열성의 비수를 잡고 유진무퇴하는 신을 신고 일심으로 이러나면 지극히 자비하신 하나님이 하감하시고 우리나라 충혼 열백이 명명 중에 도으시고 세계만국의 공논이 업지 아니할 거시니 우리는 아모 자저할 것 업스며 두려할 것도 업도다 사라서 독립기 하에 활발한 신국민이 되어 보고 죽어서 구천지하에 이러한 여러 선생을 조차 수괴함이 업시 즐겁게 묘시는 거시 우리의 제일 의무가 아닌가 간장에서 솟는 눈물과 충곡에서 나오는 단심으로써 우리 사랑하는 대한 동포에게 엎드려 고하오니 동포 동포여 때는 두번 이르지 안이하고 일은 지나면 못하나니 속히 분발할지어다 동포 동포시여
대한독립만세 기원 사천이백오십이년 이월 일
김인종 김숙경 김옥경 고순경 김숙원 최영자 박봉희 리정숙 등
출처 : 여성신문(https://www.womennews.co.kr)
나라가 어려우면 언제라도 절실한 내면의 목소리를 모아 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함께 하고 앞장서 온 여성들의 에너지는 지금 더욱 생생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