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아발론 연대기>
오래전에 번역자인 김정란 선생님에게 선물을 받았었다. 그런데 전공과 멀고 8권의 대작이라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서가에 꽂혀 있었다. 퇴직을 하고 요즈음 무차별 독서를 하고 있는데 눈길이 가서 읽고 싶어진 책이 바로 <아발론 연대기>이다. 유렵 전역에 펼쳐져 있는 아더 왕에 대한 수많은 신화와 설화 그리고 이야기를 섭렵한 작가가 그 모든 이야기를 다시 아더와 성배를 중심으로 풀어낸 책이다. 켈트 신화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데, 책을 든 순간부터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 흥미로웠다. 새삼 마법사 멀린을 연상시키는 저자 장 마르칼과 매끄럽고 매혹적인 번역을 하신 김정란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그런데 <아발론 연대기 02 원탁의 기사들>에서 발견한 다음 에피소드를 읽으며 깜짝 놀랐다. 한강 작가가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했다면, 이 에피소드는 여성과 남성의 생각과 관계에 대한 통찰력 있는 질문과 답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책에 소개되어 있는 이야기를 옮겨 본다.
아더왕은 커다란 몽둥이를 든 무시무시한 거인인 숲 속의 남자와 싸우게 되었다. 무적의 무기인 엑스칼리버도 챙기지 않은 상황이라 아더는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더는 숲의 주인인 거인에게 보상을 해줄 테니 목숨을 살려달라고 한다. 그런데 이 거인은 자기 질문에 답하면 살려주겠다며 1년 안에 답을 찾아오라고 하는 여유로움을 보인다.
그 질문은 “여자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거인과 아더는 1년 뒤에 답을 찾아 그 장소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진다. 위기를 벗어난 아더는 성에 돌아와 첫 번째로 마법사 멀린에게 답을 구한다. 멀린은 답한다.
“ 질문의 답을 제게 물으시면 안 되지요. 폐하 자신에게 물어보셔야 합니다. 제가 답을 찾아 드릴 것이라는 기대는 버리십시오”라고 한다. 그래서 아더는 1년 동안 만나는 사람마다 이 질문을 했는데 매번 다른 대답이 돌아왔다.
1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답을 구하지 못한 아더는 초조한 마음으로 약속 날짜에 숲으로 간다. 슬픈 표정으로 숲으로 가고 있는 아더는 끔찍하게 못생긴 데다 더럽고 너덜너덜한 옷을 입은 여자를 만나게 된다. 여자는 아더에게 당신의 고민이 무언지 안다며, 자기만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정답을 알려주는 조건으로 자신을 성으로 데려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아더의 연인이라고 공표하라고 요구한다. 아더는 그렇게 하겠다고 맹세를 하고 답을 구한다. 여자가 답한다.
“ 아주 좋아요. 여자가 무엇보다 좋아하는 것은 주권이랍니다. 이 답을 당신의 적에게 말해 주세요. 그는 답을 당신에게 가르쳐준 여자를 저주할걸요”
아더는 몽둥이를 든 숲 속의 거인을 만나 ‘주권’이라는 답을 내놓자 거인은 화를 내며 어쩔 수 없다고 아더를 보내준다. 아더가 성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 여자는 함께 가자고 한다. 성에 돌아와 아더가 여자가 자신의 연인이라고 소개하자 사람들은 놀라서 반응도 못하며 슬슬 피해 도망간다. 밤늦도록 아더가 여자와 한 방에 침실에 들 마음을 내지 못하고 서성이자 여자는 말한다.
“입맞춤 정도는 예의로라도 해 주셔야지요”
아더가 꾹 참고 입맞춤 한 순간 여자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여자로 변신했다. 아더가 놀라움을 표하자 여자는 다시 질문한다.
“ 잘 들으세요. 당신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어요. 나는 낮에는 아름답고 밤에는 끔찍한 모습을 할 수도 있고, 밤에는 아름답고 낮에는 추한 모습을 할 수도 있어요. 당신이 선택하세요.”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아더는 이 질문이 미묘하다고 생각하고 이는 여자만이 판단할 수 있는 질문이라고 답변의 선택을 여자에게 넘긴다. 이에 여자는 답한다.
“ ... 당신은 저에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어서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주권이라는 것을 인정했어요. 당신은 저를 귀하게 대해 줌으로써 마법에서 구해 주었어요, 죽을 때까지 그 고마움을 잊지 않을 거예요”
여자는 낮에도 밤에도 하루 종일 아름다운 모습으로 있는 방법을 선택하였고, 그날 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런 현명한 질문과 대답이라니!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선택과 결정권을 갖고 싶어 하고, 이를 인정할 때 공존할 수 있다는 지혜를 책 속에서 발견한다. 오래전 이야기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유이다. 여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남자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 지금 현재 우리가 진지하게 질문하고 답해야 할 그런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