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봄이 오고 주말이 되면 사람들은 꽃구경을 다닌다. 화사한 벚꽃이 여기저기서 만개하면 가끔 느껴지는 찬바람에도 불구하고 꽃구경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다닌다. 웃고 사진을 찍고 행복해한다. 튤립, 수선화, 모란, 작약 그리고 붓꽃과 창포 이어서 장미까지 꽃들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요즈음 날씨의 변덕과 진폭이 너무 커서 하루는 30도 다음 날은 기온이 뚝 떨어져 긴팔 옷과 외투를 넣다 꺼냈다 반복하기에 바쁘지만 꽃들은 조용히 성실하게 우리에게 온다. 전원주택에서 살기 시작한 게 벌써 20년이 되었다. 매일 숨 가쁘게 바쁜 일상이어서 여유롭게 마당과 꽃들을 충분히 살펴주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숲 가까이에서 나무와 풀과 꽃을 보며 살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고 기쁨이었는지 모른다.
이제 퇴직을 하고 마당과 정원을 돌보는 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한 바퀴, 한낮 더위가 지나면 또 한 바퀴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새로 나온 꽃들과 인사하고, 잡초는 잘 가거라 하며 뽑아주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잔디와 대나무류의 사사, 그리고 매발톱꽃과 조팝처럼 그저 잘 자라는 야생화들이 있던 마당이 이제 튤립과 수선화, 작약과 모란, 미스김 라일락, 명자나무 꽃이 있는 정원으로 조금씩 풍성해지고 있다.
생각해 보니 우리 둘은 조용히 꽃을 보고 거니는 여행을 좋아했던 것 같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놀이공원, 박물관, 과학관, 미술관 그리고 역사 유적지를 다니며 함께 보고 설명하고 하는 여행을 주로 했었다. 부모 욕심에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설명해주고 싶었던 것은 우리라고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소란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모두 독립하고 둘만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니 여행의 내용도 달라진다. 그동안 여행 사진을 살펴보니 정원에서 찍은 사진이 가득하다. 사진 찍는 게 취미이자 특기인 남편은 어디를 가든 무거운 카메라 세트를 챙겨 다닌다. 나는 정원을 거닐고, 간간히 휴대폰 사진을 찍으며 이런저런 생각과 감동을 하는 것이 전문이다.
그렇게 천천히 홀가분하게 떠나 정원을 다닌 기록과 감흥들이 제법 쌓여 있다. 우리 집 정원에서 더 크고 새로운 정원으로 확장해 가며 새로운 감동을 느끼는 시간들이었다. 이제 천천히 그 기억을 마음에서 꺼내 정리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지식과 정보 그리고 체계를 갖춘 정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정원을 거닐며 마음 가는 대로 천천히 생각했던 사색과 기억을 펼쳐보는 소박한 작업이다. 사진은 그동안 열심히 사진을 찍어 컴퓨터에 저장해 놓은 남편의 기록들에서 꺼내본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우리는 어디선가 정원을 거닐고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