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1호 국가정원, 순천만 국가정원
생각해 보니 세 번째 방문이었다. 결코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순천만국가정원까지 먼 거리를 오게 만드는 매력이 분명 이곳에 있는 것 같다.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에 처음 방문했을 때는 너무 많은 사람들과 넓은 공간 그리고 행사장 특유의 번잡함으로 충분하게 감상하기보다는 힘겹게 다녔던 것 같다. 그래도 엄청난 넓이의 공간에 펼쳐져 있는 다양한 꽃과 유명 조경가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두 번째 방문은 아이들과 함께 순천만 습지를 중심으로 한 여행이었다. 조금 깊은 가을이었고 꽃들은 차분해졌고, 그래서 끝없이 펼쳐진 갈대밭을 걸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색했던 시간이었다.
2025년 5월 이번 방문은 순천만국가정원의 매력과 아름다움을 가장 많이 느낀 시간이었다. 동문 주차장을 들어서자마자 펼쳐진 정원의 규모는 압도적으로 넓은데도 불구하고 잘 정리되고 구획된 느낌이었다. 우리가 흔히 ‘정원’ 하면 떠올리는 것은 유럽의 멋진 정원들이다. 잘 관리된 대칭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프랑스 정원, 다양한 꽃의 섬세한 배합과 미로 공원 등이 돋보이는 영국의 정원, 아름다운 조각과 분수와 조화가 된 이탈리아 정원을 볼 때마다 놀라웠고 부럽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난 순천만국가정원은 그런 부러운 마음을 싹 가시게 하는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으로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 주었다. 들어서자마자 호수정원과 시그니처가 된 ‘원형동산’을 만나게 된다. 조형 지형 조경의 개척자로 알려진 찰스 젱스 (Charles Jencks, 1939~2019)가 설계한 원형동산은 높고 낮은 5개의 동산으로 구성되었다. 순천의 산과 들, 강, 갯벌이 이어지는 경관을 ‘세계에 자랑할 만한 생태 예술 공간’으로 보아 이를 기초로 설계한 원형 동산은 언제 보아도 인상적이다. 사람들은 일제히 파란색 나무 데크길을 따라 길게 이어진 나선형 산책로를 따라 정상으로 올라간다. 산책로를 따라 천천히 걷다 보면 자연스레 순천만 국가정원을 360도로 조망하면서 정원의 전체 규모를 가늠할 수 있게 된다. 오르고 내려오는 길의 자연스러운 원형 순환으로 많은 사람들이 올라가도 번잡하지 않다. 시간 나는 만큼 오르고 내리며 몇 개의 원형 동산을 체험하고 나면 이제 다양한 세계 테마 정원으로 이동한다.
세계정원은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일본, 영국, 멕시코 등 세계 각국의 정원을 모티브로 조성되어 있다. 각 나라의 특징을 살린 조경과 조형물, 식물 구성이 흥미로운데, 네덜란드 정원에는 진짜 풍차가 돌아가고 있었고, 중국 정원에는 동양적인 단청과 연못, 미국 정원에는 꽃과 자유의 여신상이 그리고 스페인 정원은 강렬한 빨간색 꽃들이 가득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흥미롭게 관찰하고, 사진도 찍으며 여유롭게 보기에 재미있는 정원들이었다. 한국정원은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데, 스페이스 브릿지라는 미디어 아트 전시를 결합한 터널 공간을 넘어서서 한참 가야 했다. 공원 서문에서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데 핵심 공간에서 먼 곳에 조성되어 있다 보니 우리 정원까지 가는 사람들은 적다. 비원의 부용정과 선비들의 전형적인 정원 공간을 느낄 수 있는 곳인데 고즈넉해서 좋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에는 외진 곳이라 다소 아쉬웠다.
이외에도 어린이들을 위한 생태 놀이터와 정원 워케이션 프로그램, 숙박시설 등 다채로운 공간이 많았지만 다 즐기기에는 너무 넓었다. 중간중간 쉬어가며 하루 종일 머물러도 다 보기는 어렵다. 여러 정원 공간 중에서 조경적으로 가장 아름답다고 느낀 공간은 프랑스 정원 앞에 조성된 노을 정원이었다. 편안하게 펼쳐진 잔디와 조형물들 그리고 꽃과 색의 배합이 너무나도 멋지게 조성된 정원을 근처 벤치나 돌에 편하게 앉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순천만 국가정원에 온 보람을 충분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번에 보니 다양한 꽃들의 조화가 한층 섬세하고 세련미가 넘친다. 시든 꽃들을 방치하지 않고 관리해서인지 모든 꽃들이 생생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이제 더 돌아다니고 싶지만 도저히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래서 숙소에 가서 잠깐 쉬기로 했다.
피로를 조금 덜어내고 다시 순천만 습지로 향했다. 순천만 습지는 순천만 국가정원에서 스카이큐브라는 친환경 무인열차를 타고 편리하게 이동할 수 있는데, 우리는 차량으로 순천만 습지로 갔다. 저녁 어스름 습지의 전망과 갈대밭을 스치는 바람은 한층 운치 있었다. 잘 조성된 나무데크길을 따라가다, 갯벌을 잘 살펴보면 짱뚱어나 붉은 발말똥게 등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5월 습지 갈대밭은 새로 올라오는 푸릇한 갈댓잎과 사람 키를 넘어서는 누런 갈대의 사각거리는 움직임이 어울려 가을 갈대밭과는 다른 싱그러운 느낌이다. 걷고 사진 찍고 쉬며 이제 천천히 넘어가는 일몰의 움직임을 관찰하며 순천만의 하루를 마감했다. 만보계를 보니 2만 2 천보, 하루 최대치의 걸음이라고 알려준다. 걸음걸음마다 가득 새긴 순천만 정원과 습지의 아름다움에 감사한 하루였다.
“순천은 도시를 멈추고 자연을 선택한 희귀한 도시다.”
찰스 젱스가 순천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남긴 말이라고 한다. 자연을 선택한 순천은 청정한 도시로 생명력이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