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거닐다 04

:정갈한 구도(求道)의 정원, 산청 수선사

by 수파인

정갈하다. 산청군의 수선사에 들어서면서 받은 첫 느낌은 정갈하다였다. 수선사는 지리산 자락의 작은 사찰이다. 우리나라에는 깊은 산속에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위치한 수많은 명승사찰이 있다. 그런데 굳이 좁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가야 하는 수선사까지 가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다. 거기에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우산을 쓰고 절에 들어서기 전에 화장실을 찾았는데, 이곳부터 약간 생경한 느낌이었다. 사찰 입구 밖에 모던하게 지은 화장실은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는데, 실내화로 갈아 신어야 들어갈 수 있었다. 화장실을 신발을 갈아 신어야 이용할 수 있다니!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조금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내부가 너무 청결하고 차분했다. 갸우뚱하는 생각을 한 편에 담고 사찰 경내로 들어섰다.


입구에 카페와 특산품을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우선 사찰 본당이 있는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런데 잔디에 단 하나의 잡초도 보이지 않는다. 정원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규모이고, 요란스럽게 화려한 꽃들도 없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끌리면서 정갈해진다. 깨끗한 잔디뿐만 아니라 그곳에 서있는 나무들과 나뭇가지도 다 온전하게 정돈되어 있다. 지나치게 깨끗하면 자칫 긴장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곳의 정갈함은 그런 긴장감보다는 누가 이렇게 세심하게 보살폈을까 하는 궁금증을 일으키는 정갈함이었다. 이런 정도로 보살피려면 꽃과 나무를 돌보며 도를 닦는 자세로 다가가지 않으면 어려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 주지스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증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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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한 정원을 바라보고 있자니 추적거린다고 생각했던 빗방울이 맑은 이슬처럼 느껴졌다. 우산을 쓰고 한참이나 쳐다보고 있으니 그저 내 마음도 고요해졌다. 그런데 수선사의 더 특이한 정경은 연못 위에 설치되어 있는 얼기설기 나무로 엮여 있는 산책길과 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간이 정자와 같은 구조물이다. 자연적인 나무의 모양 그대로 하나하나 연결해 만든 나무산책길과 물레방아 그리고 지붕을 엮어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놓은 정자인데, 이는 한 눈에 보아도 어떤 구도자의 정성과 헌신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그대로 알 수 있었다. 연못 가장자리에는 노란 창포가 한창이다. 그곳에서 연못으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또 무심하게 쳐다보며 한참이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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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선사의 정원은 그냥 꽃이 피는 정원이 아니고 그 자체로 도를 닦는 도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 수선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자료를 보니 여경스님이라는 비구니 스님이 1990년대 초반 설립하여 30여 년간 정성을 다해 사찰을 가꾸어 왔다고 한다. 여경 스님은 매일 새벽부터 호미를 들고 사찰 주변을 가꾸며, 잡초 제거, 소나무 전정, 모종 식재 등 정원지기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모든 존재는 자기의 자리가 있는 거예요"라는 신념 아래, 정원의 생명들에게 제 자리를 찾아주고 그 자리의 주인공을 만들어 주는 일을 하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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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었다. 정원은 정원을 가꾸는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다. 불교 수행과 정원 가꾸기는 여경 스님에게는 똑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작은 규모의 사찰이지만 연못을 내려다볼 수 있는 카페와 작은 갤러리까지 아기자기한 공간들이 주변을 해치지 않고 조성되어 있다. 수선사의 연못에 맑은 연꽃이 이제 막 하나씩 둘씩 피어나고 있었다. 하얀색 연꽃이 수선사와 수선사를 돌보는 스님과 사람들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수선사는 작은 곳이었지만 내 마음에 큰 울림으로 남아있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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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보니 수선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서인지 구불구불한 길을 직선으로 만드는 도로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작은 곳에서 큰 평화와 위로를 얻고 싶다면 수선사에 조용히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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