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량한 대나무 숲에서의 사색, 죽녹원
10월 말 단풍이 한바탕 지나가려고 하는 시기, 전라남도 담양으로 향했다. 죽녹원은 전라남도 담양에 위치한 대표적인 대나무 테마 관광지로, 2003년 담양시에서 조성한 대나무 정원이다. 들어서자마자 높디높은 대나무 숲과 길을 만나게 되는데, 죽녹원을 벗어날 때까지 계속 대나무 숲이다.
여기저기 화려하고 아기자기한 정원들이 많은데 오직 대나무 숲 하나만으로 조성되어 있는 정원이라니 지나치게 단조로운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대나무 숲길을 걸어가면서 나는 죽녹원의 매력에 완벽하게 스며들기 시작하였다. 곧게 뻗은 대나무로 계속 이어지는 대나무 숲길을 들어서면서 나는 다른 공간, 다른 세상으로 옮겨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청량한 푸르름과 공기, 그리고 바람이 불 때마다 사르락 거리는 댓잎 부딪치는 소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안정시킨다. 어떤 감탄이나 말을 할 필요도 없고, 그저 조용히 걷는 것만으로도 깊은 사색이 시작된다. 나이가 제법 있는 사람이라면 "또 다른 세상을 만날 땐 잠시 꺼두셔도 좋습니다"라는 인상적인 휴대폰 광고를 기억할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 광고였는데 죽녹원에 들어서면서 바로 이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걷다가 다리가 아프면 대나무 벤치와 평상도 만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다 내려놓고 그저 편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죽녹원은 8개의 테마 산책로가 있는데, 계속 이어지는 대나무 숲길에 ’ 철학자의 길‘ ’ 사색의 길’이 죽녹원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그 외에도 사랑, 친구, 선비와 같은 테마길을 조성하고 간단한 조형물들이 놓여 있었는데, 사실 대나무 숲길의 청량함과 조화롭지 않은 것들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매우 세심하게 잘 관리되고 있는 곳이어서 걷는 내내 편안하였다. 또한 청량한 푸르름을 찍기 위해 사진작가들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라는 점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죽녹원의 경우 테마 산책로나 그 외의 시설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대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청량한 바람과 댓잎이 사르락~ 흔들리는 소리에 마음을 맡기고 그냥 천천히 걷는 것 그 자체로 죽녹원을 다 체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나무만 있는 숲길이라 무엇을 보려고 신경 쓸 필요도 없다. 그저 걷다 보면 마음은 차분해지고 머릿속도 청정해진다. 죽녹원을 다녀온 이후, 사람들에게 자연을 추천할 일이 있다면 단연 이곳을 꼽게 될 것 같다. 화려하지 않고, 오히려 조용한 존재감을 지닌 공간. 오롯이 ‘쉼’과 ‘걷기’에 집중할 수 있는 이 대나무 숲은 분명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공간이다.
죽녹원을 나서면 바로 맞은편에 조선 시대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나무를 심어 놓은 담양의 대표적인 명소인 관방제림이 있다. 관방제림의 규모와 길이는 생각보다 크고 긴데 300여 년 된 느티나무 숲과 평평하게 이어지는 제방길에는 많은 시민들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관방제림은 약 2km의 천연기념구역 숲길과 담양천변을 따라 이어진 제방 산책, 자전거 길까지 합해 약 6km의 길이다. 평탄한 길도 가볍게 산책과 운동하기에 좋은 길인 것 같다.
그리고 죽녹원에 간다면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는 담양 떡갈비 집도 꼭 들러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남도의 음식은 언제라도 맛있는데, 이 지역의 음식도 역시 기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몸은 건강해지고, 마음은 힐링되는 유용한 정원 여행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