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거닐다 10

: 미술관 옆 전통 정원, 희원

by 수파인

겸재 정선의 그림을 집약해서 볼 수 있는 전시가 있다고 해서 용인의 호암 미술관에 갔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술관으로 가는데 입구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공작새 한마리가 그냥 밖에 나와 도로 앞을 거닐고 있었다. 어떻게 나와 있게 된 것인지 모르지만, 꼬리를 활짝 피는 것은 보지 못했어도 이런 행운이라니! 공작새는 사람들의 시선이 싫은지 저 멀리 도로로 걸어 가버렸는데, 몇 몇은 공작새를 따라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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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의 그림은 한 폭 한 폭 전부 감동이었다. 1부의 전시 제목은 ‘진경에 거닐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였다. 금강산을 사랑했다는 화가는 금강산의 봉우리와 폭포, 암석 그리고 계절의 변화를 그리고 또 그렸다. 생동감 있는 풍경과 정교하면서도 단아한 그림이 감동을 주었다. 이어 한양 곳곳의 장소를 그린 그림 전시가 이어져 그림으로 그 시대 시간과 장소를 다녀온 듯했다. 그림을 잘 모르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한꺼번에 감상하는 것은 그냥 대표 작품 몇 개를 보는 것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다. 작품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거의 모든 그림에 등장하는 소나무이다. 강한 붓질로 표현된 소나무가 있는가 하면, 점묘법처럼 세심하게 묘사된 소나무 숲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KakaoTalk_20250615_195308847.jpg 정선 <노송영지도>, 1755년.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 2층에서 밖을 내다보면 첫눈에 보이는 것이 멋진 소나무들이다. 멀리 보이는 연못과 조화를 이룬 소나무 풍경을 보며 미술관을 나서면 만나게 되는 품격 있는 정원이 바로 희원(熙園)이다. 일부의 관객들은 서둘러 빠져나가기도 하지만 우리는 호암 미술관에 올 때마다 천천히 희원을 둘러보곤 한다. 희원은 비원과 같은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모습은 아니지만, 전통 정원의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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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암미술관 양 옆에는 국보급 석탑인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원주 법천사지 현묘탑이 정교하게 재현되어 있다. 이번에 자세히 보니 희원에는 여기저기 다양한 석물들이 배치되어 있는데, 12세기 마애불상과 조선시대 문인석 그리고 다양한 표정을 가진 석물인 벅수 등이 정원 이곳저곳에 조화롭게 놓여 있어 정원을 보는 재미가 한층 있었다. 넓은 장소는 아니지만 희원은 길을 따라 휘돌아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조성되어 있다. 돌계단을 내려가면 작은 연못에 어울리는 정자가 놓여 있고, 그 옆에는 연꽃 연못이 있다.


KakaoTalk_20250615_194725602_12.jpg 표정이 우스운 벅수

희원의 전통 대문이나 담장도 언제 보아도 멋지다. 보화문, 월대 등의 건축물도 편안하면서 세련된 모습이고 색감도 좋다. 정원에는 다양한 꽃과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는데, 이곳의 꽃과 나무는 화려함이나 그 자체의 존재감보다는 석조 유물과 연못, 대문 등과 조화롭게 놓여 있다. 그래서 희원은 걸어 다니며 때로 멈춰 서서 정원을 멀리 쳐다볼 때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이곳 역시 우리나라 대표 조경가인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찬찬히 다니면서 정원을 자세히 보면 역시 자연스러우면서도 세련된 정원의 품격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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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도 소나무가 눈에 띄지만, 작은 오솔길을 따라가다 보면 대나무 숲길도 있고 다양한 수종의 나무들이 곳곳에 있다. 작약과 연꽃이 피는 계절도 좋고 특히 가을에는 건축물과 조화되는 단풍이 아주 멋들어진 곳이다. 미술관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정원을 천천히 걸으며 함께 간 사람들과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이야기하다 보면 더 긴 여운이 남는다. 정자와 연못, 석탑과 석등, 멋진 대문과 오솔길 그리고 낮은 담장 등 전통 정원의 모든 요소를 만날 수 있는 희원은 그래서 또 하나의 예술 작품이자 참 의미 있는 정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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