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과 자연의 조화, 군위 사유원
사유원(思惟園)은 이름을 듣자마자 가고 싶은 곳이었다. 사유원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자연 속에서 인간이 사유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철학 아래 설계된 정원이고 단순히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정원을 넘어서, 철학적 사색과 내면의 성찰을 유도하는 공간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풍경을 보고, 걸으며, 사유하다.”
사전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고 한 번에 많은 사람들을 입장시키는 관광지 같은 곳이 아니라 더 매력적이었다. 예약을 하고 날짜에 맞춰 경상북도 군위로 떠났다. 다소 먼 거리여서 대구에서 1박을 하고 예약 시간에 맞추어 사유원에 도착했는데 사유원이 있는 군위군 산성면은 상당히 외진 곳이라 근처에 식당이나 숙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사유원 입장 시에는 물 외에는 다른 먹거리를 갖고 들어갈 수 없으니 조금 넉넉하게 배를 채우고 사색의 정원에 들어가야 한다.
사유원은 민간 정원으로 2019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대략 30만 평에 이르는 넓은 산에 펼쳐져 있는 자연과 건축물의 조화가 뛰어난 정원이다. 승효상, 알바로 시자 등 유명 건축가들의 크고 작은 건축물과 정영선 조경가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다. 어떤 건축물은 우뚝 서 있기도 하고, 어떤 구조물들은 자연에 스며들어 편안하게 놓여 있기도 하다. 사유원의 산책로는 평평한 지형은 아니고 등산 코스처럼 오르고 내리는 길이 많은데, 곳곳에 있는 멋진 건축물들이 이정표가 되거나 쉼의 공간이 되어 준다.
사유원은 전체적으로 울창한 숲과 나무가 있는 자연의 공간이지만, 건축물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기획된 컨셉을 가진 테마 정원이기도 하다. 사유원의 산책은 여기저기 서 있는 건축물을 따라 발길을 옮기는 것으로 시작된다. 모든 건축물이 사유원의 숲과 지형, 바람, 햇살을 반영하여 기획되어 있어, 각 장소에 도착해 건축과 자연의 어울림을 느끼며 한 호흡씩 쉬며 걷기를 계속하게 된다. 각 건축물은 ‘소요헌’ ‘현암’ ‘ 명정’ ‘소대’ ‘와사’ 등 멋진 이름을 갖고 있고, 독특한 조경과 나무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정원은 ‘풍설기천년’ ‘별유동천’ ‘사담’ 그리고 ‘유원’ 등의 이름으로 명명되어 있다.
한 장소 한 장소마다 독특한 컨셉을 가지고 있어 다 멋지지만, 나에게 특별히 기억나는 곳을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명정’에서 조금 오래 머물렀던 것 같다. 승효상 건축가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길게 이어지는 콘크리트 구조물 길과 잔잔한 연못 그리고 강렬한 빨간색 벽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데, 들어서는 순간 차분해지고 구석에 앉아 머리를 텅 비우게 만드는 매력을 가진 장소였다. 다음은 ‘와사’라는 철제 구조물도 인상적이었다. 자연스레 녹슨 것 같은 철제 구조물이 길게 놓여 있었는데 터널 같은 곳을 지나 만나는 초록 자연이 더 선명하게 마음에 들어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정원이란 관점에서 사유원의 설립자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장소는 배롱나무가 정성스럽게 식재되어 있는 ‘별유동천’과 108그루의 모과나무가 심어져 있는 ‘풍설기천년’이라는 공간이었다. 특히 모과나무로 조성된 이곳은 사유원의 설립자가 사유원을 만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된 곳이라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안내판에 있는 내용을 보니 모과는 수형이 아름다워 일본에서 인기가 있는 수종인데, 우리나라의 멋진 모과나무가 일본에 밀반출되는 것이 안타까워 수목원을 만들었다가, 사유원의 가장 중심에 멋진 조경과 함께 모과나무 정원을 조성했다고 한다. 모과나무가 이렇게 멋진 나무였는지 이곳에서 한 그루 한 그루 관찰하면서 새삼 느끼게 되었다. 이 모과나무 정원 역시 정영선 조경가의 작품이라고 한다.
사유원에는 한국 정원도 조성되어 있는데, 넓은 정자 겸 대청마루가 있는 한옥과 연못 그리고 담장이 둘러쳐있는 이곳은 한참 걸으며 피곤해진 몸을 쉬어가기 가장 좋은 곳이었다. 마루에는 올라가서 쉴 수 있는 장소가 있으니 주변의 정겹고 편안한 정원을 보면서 바람을 느끼며 쉬어가는 것이 좋겠다. 이후에도 계속 이곳저곳을 둘러보다 보면 거의 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이곳에는 음료와 간단한 먹거리가 있는 카페가 있다. 이 산 정상에 서면 맞은편에 팔공산이 넓게 펼쳐져 보여 시야가 크게 열린다.
비교적 아침 일찍 들어왔는데 벌써 늦은 오후가 되었고, 슬슬 내려갈 시간이다. 내려가는 길에도 한두 군데 둘러보았지만 이제 힘이 빠져 열심히 걸어 다닐 엄두가 안 난다. 사유원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은 ‘소대(巢臺)’라는 전망대와 같은 건물이다. 위로 높게 솟아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인데 올라가면서 전망대처럼 열려있는 구멍으로 각기 다른 경치를 만나게 되고, 사유원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 올라가다 보니 건물의 이름처럼 벌써 새들이 둥지를 짓고 자리 잡고 있었다. 꼭대기까지 올라가기 힘들어 중간쯤의 조망대에서 앉아 있자니 바람이 느껴진다. 그렇게 사유원의 약간 힘겹지만 고요한 긴 하루가 지나갔다. 예약제로 입장하게 되 있어 그런지 넓은 산을 다니면서 다른 사람과 마주칠 일이 별로 없다. 그러니 하루 온 종일 시간을 내서 각기 다른 장소에서 생각이 흐르는 대로 쉬며, 걸으며 즐겨보면 어떨까? 혼자 혹은 두 사람이 조용하게 하루를 지내다 보면 마음 속 복잡한 생각도 어느 덧 텅 빈 사유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홀가분해 질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