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거닐다 09

: 자연이 응축된 선비의 정원, 소쇄원

by 수파인

조선시대 선비의 정원 중 가장 유명한 정원 중 하나는 소쇄원이다. 소쇄(瀟灑)는 ‘맑고 깨끗함’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학자였던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스승 조광조의 유배 이후 세속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와 조성한 정원이다.


다소 더운 여름날 담양에 있는 ‘소쇄원’에 가게 되었다. 소쇄원은 정원을 연구하는 학자들 사이에서 칭송되는 대표적인 한국 정원이라고 하는데, 방문해 보면 그 명성에 비해 규모는 아담하고 소박하다. 작은 하천이 흐르는 길을 따라 소쇄원에 들어서면 제월당, 광풍각, 대봉대 같은 작은 건물들이 있다. 제월당은 선비의 거처였고, 우리에게 익숙한 한옥 건물이다. 담장으로 대나무 숲이 있고, 소나무를 비롯한 크고 작은 나무들이 있는 것 말고는 얼핏 아름다움을 뽐내는 꽃이나 정원 조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낮은 담장과 키 큰 대나무가 바깥세상과 분리를 해주는 이 공간에서 낙향한 선비의 자연과 삶이 시작됨을 알려 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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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쇄원의 매력은 제월당 마루에 슬며시 앉아 주변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앞마당을 쳐다보면 마치 깊은 계곡에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작은 마당에 큰 산에서 만나는 계곡 전체가 들어와 있다. 계곡 사이로 물이 흐르고, 그 계곡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놓여 있다. 있는 그대로의 지형을 살려 우리 자연을 응축해 놓은 것이다. 특별히 연못을 조성하지 않아도 계곡에는 시원하게 돌 틈 사이로 물이 흐르고 있고, 물소리와 댓잎을 스치는 바람소리는 정신을 맑게 해 준다. 이곳에서 그 시절 선비는 정치의 중심에서 멀리 떨어져 바람소리, 물소리를 들으며 학문을 닦으며 맑은 사유를 했을 것이다. 또 낙향한 친구를 찾아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토론을 하거나 술 한잔 나누기도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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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배된 선비의 삶은 개인적으로 불행일지 모르지만, 한 발 떨어져 자신의 삶과 세상을 관조한 선비의 시간은 오히려 더 깊이 있는 문화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다. 다산 정약용,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는 그래서 지금까지도 우리가 방문하며 그 삶과 정신의 흔적으로 따라가는 공간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오래전에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을 방문했을 때이다. 꽤 높은 곳까지 올라가야 하니 쉽지 않은 길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헉헉거리며 올라오는 한 무리의 중학생들이 있었다. 한 학생이 말하길 ‘와~~ 아직 더 가야 하나?’ 하니, 상대편 학생이 ‘맞다~~ 다산은 미쳤나 보다. 왜 이렇게 높은데 살았을까?’라고 한다. 그 유배의 역사와 정신을 자세히 모르니 아마 힘들기만 했나 보다. 그렇지만 언젠가 더 커서 다산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을 때 그 힘겨운 걸음과 다산초당의 미덕을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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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소쇄원으로 돌아오면 이 정원은 얼핏 보면 인위적이거나 인공적인 흔적이 없다. 정원을 조성했다기보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계곡 어딘가에 선비의 거처와 손님을 맞이할 소박한 초가집을 옮겨놓은 것처럼 자연 그 자체인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흩뜨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소박하게 담아놓은 이 공간은 더 자세히 보면 돌 하나, 물길의 흐름까지도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신중하게 고려된 곳일지도 모른다.

자연과 공존하는 소박한 선비의 정신이 응축된 공간인 소쇄원은 그래서 마음을 담아 감상해야 하는 정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학문과 예술을 논하고 교류하던 선비의 정신과 깊은 곳에 은둔해서 시대를 걱정했던 선비의 목소리를 상기해 본다. 소쇄원은 작은 정원이지만 큰 자연을 담고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쇄원에서 나와 주차장을 가니 대형 버스가 한 대 들어온다. 버스에서는 6,70대로 보이는 백발이 성성한 그리고 지팡이에 의지한 서양 노인분들 한 무리가 천천히 내렸다. 버스에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대략 ‘한국 대표 정원과 문화 탐방 투어’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정원을 사랑하는 외국인들이 먼 곳에서 이곳 소쇄원까지 온 것 같다. 이 분들은 조선 선비의 정신을 만날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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