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느린 시간과 기다림, 생각하는 정원 (Spirited Garden)
한 사람의 시간과 집념과 사랑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자연의 작품들. 생각하는 정원이 내게 보여주고 느끼게 해 준 것이다. 생각하는 정원은 많은 매체에서 소개된 바 있고, 특히 해외의 정원이나 관광 가이드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 중 하나로 소개되거나 찬사를 받는 분재 정원이다.
사실 분재에 대한 조예나 안목이 별로 없는 나로서는 이 정원의 아름다움과 놀라움을 충분하게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었지만, 제주에 간 김에 방문해 보기로 했다.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별로 차량이 없고, 방문객도 없어 한산한 편이었다. 티켓을 구입하고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왼쪽 편 정원에서 제주 갈옷을 입고 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를 다듬고 계시는 노인이 계셨다. 살펴보니 언론에서 본 생각하는 정원의 설립자 성범영 선생님이셨다. 가볍게 목례를 드리고 정원에 들어가려고 했더니 다가오시면서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으시더니 명함을 한 장 주셨다. 인사를 나누고 함께 사진도 찍으며 존경과 즐거운 마음을 안고 정원 탐방을 시작했다.
먼저 눈에 띈 것은 나무보다도 제주의 돌로 거대한 성벽처럼 쌓아 올린 건축물들이었다. 그런데 소개글을 보니 모두 오랜 시간 하나하나씩 쌓아 올린 것이란다. 놀라움을 한 편으로 정원의 분재를 보게 되었는데, 그동안 화분에 정성스럽게 관리되어 있는 분재와는 다른 것들이었다. 나무 하나하나의 생김새와 규모 그리고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는 모양새가 하나하나 작품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생각하는 정원의 분재는 그냥 보기에도 오랜 시간의 정성과 노력이 담겨있었다. 정원에는 성범영 선생이 정원을 조성하며 느낀 경구들이 여기저기 돌이나 나무에 새겨져 있는데, “정원은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다”라는 말도 그중 하나이다. 내 부족한 언어로 표현하기보다는 작품을 느끼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생각하는 정원은 성범영선생이 1960년대 제주에 우연하게 방문하게 되면서 제주에 감명을 받아 제주로 이주하여 1968년부터 조성되었다고 한다.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전기와 수도도 없는 척박한 땅의 돌무더기와 가시덤불을 헤치며 개간하기 시작했고, 주위에서는 ‘미친 사람’이라는 욕설을 듣기도 했다고 한다. 사람이 무언가에 갑작스럽게 빠져들게 되는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그 빠져든 순간의 마음을 평생 지키며 살아가는 삶의 결은 어떤 것일까? 제주에 있는 생각하는 정원(Spirited Garden)은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깊이 있는 시간과 집념과 노력과 사유의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같은 이야기들은 생각하는 정원 곳곳에 많은 안내문과 정원 개척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기념관을 살펴보면 더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이곳에는 누가 방문했는지에 대한 소개도 자세하게 되어 있는데, 장쩌민, 후진타오 시진핑 등 중국의 전·현직 국가주석과 일본 총리, 베트남, 몽골의 대통령 그리고 유럽의 왕족 등 국빈급 정상들 그리고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모엔과 이건희 삼성 회장 등 문화계·기업계 인물들이 여러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교과서에도 소개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했는데, 코로나 이후 경제적 타격을 받아 어려움에 처해있다고 한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요즈음은 조금 더 화려한 정원의 매력에 끌리는 사람들이 많고, 아름다운 국가· 민간 정원이 많이 생겨나니 이렇게 차분하게 생각하며 느끼며 거니는 정원에는 방문객이 뜸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생각하는 정원에서 ‘규화목’을 볼 수 있었는데, 규화목이란 나무의 조직에 오랜 시간 규소 성분이 침투하여 나무가 돌처럼 굳어진 것을 말한다고 한다. 나무가 돌이 되는 시간이라니!
생각하는 정원은 우리나라에 정원 문화가 확산되기 전부터 오랫동안 만들고, 돌보며 가꾸어온 정원이다. 모든 것이 빠르게만 돌아가는 요즈음 생각하는 정원의 분재를 보며 느리고 오래된 시간의 깊이와 편안함을 느껴보면 어떨까? 생각하는 정원은 관람 순서를 정해 놓아 길을 따라가며 보게 되어 있다. 한 바퀴 돌았는데 조금 미진한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바퀴를 돌아 나오려는데 다시 성범영선생을 만났다. 아직도 안 갔느냐 하면서 미소를 지으셨다. 나오려는데 외국인 청년 서너 명이 들어서고 있었다. 어디서 왔느냐 물으시면서 또 명함을 나누고 계셨다. 돌과 분재와 사람의 정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