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을 거닐다 15

: 구름 위의 시간, 발왕산 천년주목 숲

by 수파인


이제 매해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더위가 더해질 것이라고 한다. 기후 위기가 실감되는 요즈음 멍해지는 정신과 물먹은 듯 무거워지는 몸으로 선뜻 어디 나서기 두려워진다. 그런데 얼마 전에 갔던 발왕산 천년주목 숲은 이 더운 여름 청량함을 느낄 수 있었던 멋진 장소였다.


여름이 되면 대관령 음악 축제가 열리는데, 시간이 되면 한 두 프로그램 정도 즐겨보곤 한다. 아무래도 다른 곳보다 시원한 곳이라 기분이 좋아진다. 클래식을 잘 몰라도 정교하고 세심한 연주가들의 몸짓과 표정 그리고 아름다운 소리를 듣는 시간이 주는 여유가 좋다. 그리고는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을 찾아보게 되는데, 이번에는 발왕산 케이블카를 타고 정상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KakaoTalk_20250730_213333679_13.jpg



발왕산 정상에 천년주목 군락지가 있다고 하는데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케이블카에 올랐다. 생각보다 엄청나게 긴 케이블카였다. 거의 20분 이상을 탑승한 것 같은데, 높이 올라갈수록 느껴지는 공기의 온도가 달랐다. 해발 1,458m라고 하는데 올라가니 생각보다 더 시원했다. 케이블카가 도착한 곳에 하늘 전망대가 투명한 유리 재질로 만들어져 있는데, 그 자체로 아찔하기도 하고 구름 위에 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KakaoTalk_20250730_211404471_11.jpg
KakaoTalk_20250730_211557889_14.jpg


그리고 천년 주목 숲을 거닐기 시작했는데, 모든 산책길은 나무 데크로 잘 조성되어 있고, 주목을 테마별로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었다. 주목(朱木)은 수백 년 또는 천 년의 세월을 살아낸다고 하는데, 이 높은 산 꼭대기에 이토록 다양한 형상과 이야기를 담은 주목이 있을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일주목에서 시작하여 나무의 형상에 따라 테마별 이름을 붙여놓아 더 자세하게 살펴볼 수 있도록 해 놓아서 새삼 주목의 매력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철학의 나무라고 이름 붙인 참선주목, 나뭇가지가 8자 모양으로 꼬여 있는 8 자 주목은 행운의 기운을 가져다주는 주목이라고 한다.


KakaoTalk_20250730_211503289_02.jpg



KakaoTalk_20250730_211557889_09.jpg

가장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주목 중의 하나는 어머니 왕주목으로 천년 가깝게 살아온 발왕산의 어머니 같은 품을 갖고 있는 주목이고, 계속 가다 보면 우리나라 문화를 보여주는 명문대학 합격을 기원하는 주목도 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주목의 종류나 형태 이름을 관찰하는 것은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이 더운 여름 시원하게 울창한 숲길을 천천히 걷는 것 만으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리고 이름을 달고 있지 않은 수많은 주목들이 만들어내는 이색적인 풍광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더 귀하게 느껴진다. 천년주목 숲은 대략 3km 정도 되는 길이였는데, 서둘지 말고 천천히 걷는 것이 좋을 것 같다.



KakaoTalk_20250730_211503289_08 (1).jpg


케이블카를 탑승하는 장소에는 쉬어갈 수 있는 카페와 먹거리들도 있었다. 시원한 곳을 벗어나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예약해 놓은 음악제 일정이 있어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구름 아래로 내려왔다.


다음 날은 시간이 별로 없어 근처 월정사 부근에 잠시 갔는데 <국립조선왕조실록 박물관>이 드디어 전면 개관을 하였다. 오대산에는 조선왕조실록과 기록을 보관하던 오대산사고가 있었는데,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과 보물의궤를 잘 관리하고 전시할 수 있는 박물관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항상 나도 모르게 우리 선조들의 기록 문화에 대해 뿌듯한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데, 시원하고 멋진 박물관에서 다시 세세하게 관찰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조선시대 기록 문화가 멋지게 꽃핀 문자의 정원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이 기록물을 보고 관찰하며 자부심을 느껴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정원을 거닐다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