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놈의 AI

억지로라도 해보고 나니

by 임성대

하루가 멀다 하고 AI기술의 소식을 접하는 요즘이다. 카고바이크를 통해 물류현장에 기여를 하고자 하는 에코브에게 AI는 제조업 입장에서 이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사례는 로봇을 통해 자동화를 하고자 하는 대규모 사업장에서는 가능할지 몰라도 중소기업들에게는 여전히 요원하다. 스마트공장을 운영하지도 않고 업무프로세스상에 마케팅이나 회계나 법률자문을 하는 것도 개념적으로 알고 있을 뿐 이에 대한 기초단계의 활용법은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는 것이 현실이다.

다만, 스타트업 입장에서 AI를 전문적으로 다룰 줄 알고 이를 활용한 비즈니스모델을 구축하는 회사의 경우라면 오히려 투자받는 입장에서는 유리할지도 모른다. 다만, 이를 활용해야 는 입장에서는 그 접근방법이 매우 어려울 뿐 아니라 이로 인해 파생된 새로운 중개인들을 거쳐야만 하는 번거로움이 생겨났다. AI는 일종의 돈되는 아이템이자 키워드일 것이리라 생각해 왔다.그래서 잊고 살기로 했다. 메타버스가 그랬고, 디지털 트윈등이 그랬다. 나에겐 'FAD' 였다.


2011년 제네바 모터쇼 당시 잠시 들렸던 '멘 드리시오'의 사장이 보여준 지역잡지의 이름이 'FAD' 여서 그 뜻을 몰라 물어봤더니 '곧 지나갈 멍청한 유행'이라고 설명하던 기억이 났다. 한때 등장했다가 여러 전문가들이 등장해 이러쿵저러쿵하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기사는 흥미롭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뭔가 과거의 그것과 이름만 바뀌었을 뿐 재탕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AI의 화두는 이미 50년도 더 된 주제이며 십수 년 전 이세돌과 알파고의 이벤트 등장 이후 그렇다 할 관심사는 아니었다. NVIDIA의 GPU와 병렬연산이라는 키워드를 접하게 된 최근 이들이 제작한 CUDA라는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등장으로 고성능 컴퓨팅이 가능해지고 이를 손 안에서 이루고자 했던 스티브잡스의 예상을 뛰어넘은 개인 컴퓨터가 아닌 데이터센터를 공유하게 되는 셈이라고 이해까지는 했다. 스타트업 대표라는 타이틀은 그래도 그런 기술적 트렌드에 대한 대화를 알아들을 수는 있어야 했기에 다분히 체면을 위한 수준의 교양학습이었다.


특정기업의 주가에 관심이 많은 이들 역시 나보다도 나은 이해도를 갖고 있는 것 같지만, 유독 왜 우리 개발 현장에서는 끼워볼 여력이 보이지 않던가 궁금하던 중 모교의 수업을 우연히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나는 자동차디자인을 주전공으로 했으나 마이크로 모빌리티분야에 더 관심이 많았고 운이 좋게도 학교 전공과 연관된 일을 졸업 후 20년 넘게 지속해 오고 있는 케이스였다. 그 덕에 교수님들과 많은 교류를 하면서 내연기관에서 시작한 자동차가 전동화, 소형화, 개인화로 바뀌는 격동의 시대를 경험하는 중이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자동차를 소유하지도 않거니와 내연기관에서 왜 전기차 시대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경험과 인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공감대가 없는 상태에서 전기차의 디자인은 이러이러해야 한다라고 설명하는 것은 내연기관 시대에 전성기를 구사했던 현직 교수님들 입장에서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최근 바뀐 전형방식에 따라 학생들은 입시미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기획력을 평가하는 방식이다. 4년이라는 대학시간 동안 자동차 디자인분야는 절대적인 노력이 필요한 분야가 있는데 바로 아이디어 스케치 능력이다. 보통 음악 쪽에서는 신동들이 많이 있지만, 응용미술분야인 디자인은 트렌드를 분석하고 이를 예측하기 위해 과거의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는 분야이다.


강의실의 풍경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주로 디지털 툴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학생마다 할당된 벽면에 대개는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출력해 게시를 해 놓아야 한다. 교수님을 비롯한 누군가가 와서 신랄하게 지적을 하고 가야 맘이 편하다. 보여주지 못하는 걸작을 만드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일찌감치 감정의 상처를 경험하고 이를 극복하는 마인드를 키워야 하는 분야 중의 하나이다.


요즘 학생들이 과거의 선배시절처럼 데생이나 물감을 신들린 듯 휘두르는 교육훈련을 받지 못한 상태로 일부 디지털 툴로 머릿속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한다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이 있어왔다. 그런데 실제 벽면에 붙여놓은 스케치와 렌더링을 보고선 얼어붙고 말았다. 현직 프로가 그린 그림처럼 모든 구도와 색감과 디자인의 표현이 완벽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교수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요새 학생들은 AI로 디자인해"


두 가지 에서 놀랐다. 하나는 디자인은 그래도 창의적인 분야인데, AI를 대놓고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진 것인가 하는 것과, 둘째는 이러한 툴로 짧은 시간에 자신의 스케치능력을 보완하여 창의력에만 집중한다면 나는 왜 이걸 여태 모르고 있었는가 하는 것이었다.


영상과 이미지분야에서 SNS를 통해 재미 위주의 콘텐츠를 만드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게다나 난 SNS를 잘하지도 않고 특별하게 다른 이들의 게시물에도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뿌리와도 같은 디자인교육 현장에 이미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 프로세스에 대해 새로운 갈망이 생겨났다.


몇달 지나 방학특강에 참관할 기회를 얻어 에코브 디자인팀과 함께 방문하여 학생들에게 직접 물어보기로 했다. 한번 조사를 시작한 디자인 AI툴의 세계는 너무나도 방대했다. 이중의 최고 강자이자 나에게 꼭 맞는 툴을 찾아낼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도 없었지만, 최종적으로 OPTIC과 VIZCOM으로 추려졌다. 미드저니와 트윈모션은 짧은 영상을 제작하기 위한 툴이라 일단 걸러내기로 했다.


결국 숙고 끝에 나의 최종선택은 VIZCOM이었다. 무료로 제공이 되기도 하지만 느린 속도를 빼고서는 유튜브 튜토리얼을 보고 며칠만에 모든 기능을 익히는 것에 무리가 없다. 또한 그래픽카드가 형편없는 나의 사무용 노트북에서도 충분히 돌아간다. AI는 세상의 모든 이미지를 동시다발적으로 분석하여 나에게 맞는 조합을 제공해 주기에 무료버전에서 감내해야 하는 잠깐의 로딩시간조차도 즐거웠다.


가장 놀라웠던 기능은 style을 맞춰주는 기능이다. 자연어 기반에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프롬프트 작업을 잘만 해주면 발가락으로 그린 그림도 세련된 라인으로 정리를 해준다. 구도 색감도 언어로 소통하는 방식이다. 현역디자이너 시절 옆에서 잔소리만 하는 선임을 '구찌('입'의 일본어) 디자이너'라고 놀렸다. 입으로 디자인하는 시대가 와버린 셈이라 이젠 입을 잘 터는 디자이너가 미련하게 손만 바쁜 디자이너보다는 낫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할지도 모른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한 스푼 넣어주면 내가 그린 스케치가 말 그대로 그 스타일을 구현해 낸다. 강아지 그림을 그려놓고 옆에 호박이미지로 만들어 달라고 해도 어찌어찌 만들어내는 AI는 인간과는 확연히 다르게 불평불만이 없다.


' 앞에는 이번 모터쇼에 나온 아우디 느낌으로 해보고, 전체 프로파일은 포르셰... 그분이 포르셰를 좋아하시지, 센타장이 C 필러 쪽은 BMW처럼 하는 걸 전에 얘기했었고, 리어램프는 법규 때문에 좀 줄이는 데 퓨쳐리스틱하게 해 봐'라는 오더는 실제 현장에서 쓰였던 언어였을지 아닐지는 노코멘트하겠다. 인간 디자이너에게 저런 지시를 하게 되면 우선 경험의 정도에 따라 해석차가 달라진다. 그리고 이해했다고 그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이해한 사람과 그리는 사람은 또 구분된다. 그 결과가 산고 끝에 나온다 한 들 여러 사람의 취향이 뒤섞인 결과물 하나를 모두 만족시키기에는 더더욱 어려운 것이 자동차 디자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제품디자인쪽도 요소들이 심플해지기는 했지만, 가장 어려운 아이템이 평면 TV라는 말이 있듯 더 이상 장식적인 요소를 표현할 수 없는 디자인 아이템일수록 디자인을 대하는 관점과 태도는 다양해진다. 이제는 그 지시와 결과를 불과 5분도 안돼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한 짧은 경험이나마 그것이 얼마나 치열한 과정이었는지를 아는 입장에서는 거의 디자인센터하나를 통째로 삼켜먹은 듯 한 느낌이 들었다.


에코브의 디자인 영역에서는 사실 스타일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도 않았거니와 설계초기 협업단계를 지나고 나면 대게는 엔지니어들의 아이템이므로 디자인적으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쉬운 점은 보고서에 삽입될 렌더링 이미지 등이 기본칼라에 기본 바탕정도이기에 구현하고 싶은 다양한 시나리오를 수준 높게 보여주는 작업을 해오지 못했던 점이었다. 디자인 전문회사 자격이기는 하나 그러한 퀄리티를 만들어 내고자 하는 의지조차도 없이 사실상 포기하고 있었던 것이라 보인다.


프리핸드 스케치를 통해 시도해 본 적은 있었으나 전시등에서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맞추기 위해서는 동일한 느낌과 화풍의 무드를 가져가야 하는데 그걸 여러 사람이 나눠 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VIZCOM은 생각하는 장면과 렌더링의 퀄리티를 정신없이 뽑아내 준다. 아무 대가 없이 너무 해주는 바람에 조만간 구독을 해줄까 생각 중이다.


앞서 학생들이 해 놓은 결과물을 보고 들었던 첫 번째 질문으로 돌아가서, 디자인이라는 창작활동에 AI가 개입되는 것이 맞는가?

이미지를 통해 짧은 영상을 제작하는 여러 툴들조차도 가장 어려운 부분은 동일성과 반복성, 즉 인물이나 사물이 일회성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대상을 여러 가지의 응용산출물로 도출해 낸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어려운 점이다. 그 부분에서 VIZCOM의 경우 특정 수준의 아이덴티티를 기반으로 반복되는 애플리케이션의 다양함을 추구하기가 수월하다. 즉, 없는 아이디어를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었기에 적당한 수준에서의 창의력을 갖고 시도한다면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후반의 렌더링과 같은 퀄리티 작업을 날로 먹을 수가 있는 점에서 모든 디자이너들이 동의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박서보 화백의 작품처럼 칠하고 긁고 지우고 메꾸고를 수천번 반복해서 나타나는 과정상의 스토리텔링이 중요하지도 않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직업이다. 디자인은 고행이 아니고 고행이어서도 안된다는 것이 지론이다. 게다가 스킬을 다루는 수준의 차이로 아이디어자체가 꽃피우지 못하는 경우는 그 회사 디자인역량의 하향평준화로 향한 잘못된 매니지먼트 방식이다.

역삼륜 카고바이크 디자인과 스타일 이미지
탑뷰와 스타일 이미지



물론 단점이 없어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AI를 디자인영역에서 활용한다는 것을 거부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또는 가장 큰 이유인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 자체를 귀찮아하는 디자이너들이 여전히 많다.


미래는 나이, 성별, 지역, 재산 등의 전통적인 차별요소로 갈등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구분될 것이라고 한다. 장인어른에게 제발 스마트폰 무료교육을 받으시라고 아무리 권해도 시간이 없기도 하고 귀찮아서 못하신다는 말이 결코 나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AI툴은 점점 더 보편화되고 간편해진다. 보급을 많이 하기 위해 작정하고 만든 기술인데 회사에서 적용하고 안 하고 가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 이미 공기처럼 스며들어 있고 내가 그것을 깨닫는 과정만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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