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편지가 내 진심이에요.
사랑하는 당신, 지희 님.
둘만 있어도 좋은 순간이 있었고 그게 세상의 전부인 줄 알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키워낸 어른들은 남의 얘기 같았죠.
부모가 되어 가면서, 또는 배워가면서 그들도 우리랑 똑같이 덜 큰 어른 같았을 거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힘든 과정 없이 순탄하게 살게 하고픈 마음은 그때의 부모나 지금의 우리나 똑같지 않았을까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서로 부퉁 켜 안고 같이 자는 모습을 보면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내 뜻대로 된 적은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뜻보다 항상 더 잘 지내왔던 게 맞아요.
그럼에도 감사할 거리를 찾기보다는 더 바라는 것을 먼저 갈구했던 게 아닐까요.
이제서야 부모의 인생을 이해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그게 가족일지라도 우리는 다 개인의 육체와 삶이 있으니 모든 걸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15년의 시간이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돌이켜 보면 너무나도 이뤄진 것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혼자 할 수 없고 느끼지 못했을 행복들이 넘쳐나고 있었는데 다 놓치고 있었습니다.
성공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불만만으로 현재를 격하시키는 건 누가 아닌 스스로였던 게 아닐까 말입니다.
제가 선택한 길을 당신이 함께 해준 덕에 지금껏 지내왔는데 말이죠.
앞으로 5년 10년이 또 어떻게 될지, 걱정만 하기보다는 기대를 하고 싶어요.
제 인생의 기적의 순간은 내가 스물한 살이 되던 해에 미술을 한다고 무작정 덤빌 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기적 같은 성취의 순간들이 이후로도 여러번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기도를 들어주셨는지 한 번도 궁금해하지 않았죠.
그중 가장 큰 선물 같은 당신을 만나고 아이들은 만나서 제가 더 빛나는 인생을 선물처럼 살고 있는 거에 가장 감사했어야 함을 돌이켜봅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지만 그 일이 뭔지는 아직 잘 모릅니다. 하지만 늘 일에 진심이신 장인어른 보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요. 뭔가 이번생에 해야 할 사명 같은 것이 있다면, 그리고 그것이 세상을 더 아름답고 이롭게 하는 것이기를 바란다면 현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기도에 응답받은 축복받은 아들이니깐, 그만큼 더 최선을 다해서 살아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제가 본을 보여야 함에도 부족한 모습에 실망했을 모습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축복받은 가정으로 발전할 날들만 남아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늘 자유의지이지만 결국 어떤 이끌림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수긍하고 받아들여지는 것임을 인정합니다. 그 결과는 늘 행복이고 만족이 될 것이지만 우리가 그걸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당신, 그러니 이제는 웃고 행복하고 강해지자구요.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은 그 또한 축복이고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이겨낼 것이고 또한 즐거워할 것입니다. 이미 무뎌지고 퉁명해진 부리를 뽑아 새것으로 만드는 독수리처럼 남은 시간들을 위해 독한 결심을 가져봅니다. 옛 사진을 보면서 그리워하지 말기로 합시다. 그때보다 앞으로의 날들이 더 기대가 되게 삽시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내 사랑 지희 님.
Since 2006~2026 임본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