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이 된다.
이제 11살.
아이가 어릴 적 부터 책육아에 관심이 많아, 책을 곁에 두며 키웠다.
아주 어릴 적엔 간단한 그림책 부터,
커가면서 관심있는 소설이나 책은 빌려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내 욕심과는 다르게 아이는 학습만화 , 주로 WHO 인물 같은 만화를 좋아했다.
어쨌든, 글을 읽어 문해력이 길러지면 아이가 원할 때 공부를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다지 공부에 관심을 두진 않았다.
그리고 시작했던 책읽기 패드. 그 패드는 책만 볼 수 있는 패드였다.
이혼을 하지 않았던 시기엔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 패드를 줄곧 아이에게 쥐어주었다.
하지만 이혼을 하고 힘든일이 많이 생기면서, 어느순간 아이에게 그 패드를 쥐어주며 밖에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제 정말 끔찍한 장면을 보았다.
아이는 지능이 어느새 자라 북패드 비번을 풀고 패드로 음란물을 보고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방임된 시간속에 쥐어준 북패드가 아이의 음란물 시청 패드로 바뀌고 있었다니.
화가 치솟았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난 아이를 방치하고 있었다.
모든 책임은 나에게 있었다.
내가 아이가 책을 읽는지 어떤 것을 보고 있는지 체크했더라면,
집에서 아이를 돌봤더라면,
도서관을 갔을때 억지로라도 데려갔더라면,
끔찍한 음란물 시청까지는 안갔을 텐데.
한번 비번을 풀어서 혼냈 적이 있었는데, 또 풀어서 이번엔 더 끔찍한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는 코미디를 보고 있었는데, 이번엔 음란물이라니.
아이는 도서관은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무언가를 배우고 공부하는 습관을 아이가 들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방학 때 도서관을 데리고 다니고 싶었는데, 집에 있겠다고 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19만원짜리 북패드패키지가 무색해 지는 순간이었다.
방임된 시간 속에서 아이는 내가 의도한 것과 완전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육아서를 읽으며 아이교육에 관심 갖으려 많이 노력했다.
수급자가 되고, 아이와 살아가는 것이 희망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아이가 한사람의 성인으로 잘 자라주길 바랄 뿐이다.
그래서 오늘 나는 도서관에 와서 아이에게 사람들에게 공개된 pc시설에 앉혔다.
4학년, 희망이 있는 나이이다.
아이에게 도서관의 기쁨을 알게 해주고 배움의 기쁨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전쟁터 같던 나의 어린시절 속에서
유일하게 고요한 침묵이 흘러 나의 마음을 안정시켜 주었던,
배운다는 것은 희망이고, 기쁨이라는 걸.
학창시절 도서관이 이야기 하던 노랑빛과 베이지색 안정감을 아이에게도 알려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