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 속, 빛

by 지수


층간소음으로 잠을 이루지 못한 주말이었다.
새벽에 정신과 약을 세 알 털어 넣었다.
잠을 자기 위해서였다. 진정제와 수면제, 이름이 다른 약들이지만 목적은 하나였다. 잠.


그리고 오늘, 정오가 되어서야 눈을 떴다.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힘들다는 느낌은 없었다.


요즘 아이가 너무 마르는 것이 눈에 밟혀 병원에 갔다.
혈액검사와 몇 가지 검사를 받기 위해서였다.
병원으로 가는 길, 기운이 없었다.
걸어가는 것조차 버거웠고, 아이의 검사를 위해 움직이는 일조차 힘이 들었다.

오늘의 계획은 병원 다음에 아이와 도서관에 가는 것이었지만,
나는 결국 방 한켠에 드러누운 채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이 집에 있는 것이 두렵다.
예사롭지 않은 층간소음,
그리고 이 집 사람들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

오늘도 화장실까지 가는 동선에 있는 네 개의 방에 모두 불을 켜두고
조용히 앉아 글을 쓴다.


나는 왜 이렇게 이사를 자주 다니는 걸까.
왜 매번 누군가와 싸우고,
이번에는 왜 이런 층간소음을 견뎌야 하는 걸까.


수급자가 되어 아이 학교 근처 빌라로 이사 왔을 뿐인데,
나는 범죄자들로 이루어진 것 같은 이 빌라에서
숨을 죽이고 살아가고 있다.

이곳은 나름 깨끗해 보였고,
치안도 나쁘지 않다고 판단해 선택한 집이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다.


나는 2월 말까지 나가겠다고 말했다.
아직 방은 계약되지 않았다.
그런데 2월 말까지 나가지 못하면
옥탑에 사는 주인 할아버지가 사람을 써서
나를 가만두지 않을 것 같다는
막연하지만 사라지지 않는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는 이미 사람들을 고용해

이 건물을 운영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할아버지는 돈이 많고 시간이 많다. 이곳의 사람들은 외모와 행동 모두 예사롭지 않다.


3층 사람들과 싸운 뒤, 그들은 12월 초에 나갔다.
4층에 새 사람들이 들어오는 날,
3층 사람들이 이사 갈 때 사용했던
이름 없는 허름한 5톤 트럭이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부터 시작된 층간소음.


쇠를 떨어뜨리는 소리,
톱으로 자르는 소리,
그릇이 깨지는 소리.

내가 세탁기를 돌리면
윗집에서는 물을 트는 소리가 난다.
겹치듯 반복되는 소음들은
여러 차례 나를 신경 쓰이게 만든다.


나는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어쩌면 안전 불감증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아이와 도서관에 가려고 했지만,
어제 먹은 정신과 약 때문인지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는다.


기운은 없는데,
감정은 이상할 만큼 고요하다.

그래서 움직이지 못하지만, 그동안 핸드폰으로 해야할 일을 하고 있다.


아이 문제집을 주문하고, 아이가 읽고 싶은 책을 사고, 인터넷으로 장도 봤다.


잠을 못 자면 기운은 나는 것 같지만 예민해지고,
잠을 많이 자면 기운은 없지만 감정은 잔잔해진다.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걸까.


정신과 약과 함께 산다는 건
평생에 걸친 조절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또 약을 타러 가야 한다.
수면제가 다 떨어졌다.
우울증 약을 처방받고 말이 조금 빨라졌더니
의사는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했다.


매일 버스를 타고 병원에 가야 한다.

정말, 산다는 건 무엇일까.

정신과 약과 함께한 20년.
정신질환과 함께 숨어버린 나의 사회생활.


50살, 60살의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기도한다.
세상 물정은 잘 몰라도
내 아이만큼은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감사하며
아이와 함께 병 없이 살아가고 싶다고.


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사회로 돌아가
“이런 나도 살았으니, 당신도 살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남길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정신질환과 함께 조금은 다르게 고착된 사회에 대한 인식.

나는 내가 힘들어도 사회에서 버틸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나는 근로 무능력자다.
그렇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각자에게 주어진 과업이
서로 다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나는 사회로 복귀하고 싶다.
나는 과연, 다시 사회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내 아이는 잘 자라줄 수 있을까.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오늘,
기운은 없었지만 감정은 고요했다.


이 고요 속에서 나는 바란다.
아이는 잘 자라고,
나 역시 건강한 어른으로
다시 사회에 나갈 수 있기를.


그리고 나의 이 힘듦이
언젠가 누군가에게는
작은 힘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도 이렇게 살아간다.



지금 어두운 터널은 걷고 있다면,

우리 같이 힘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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