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따라가는 시간표

by 지수



삶의 태도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운명을 개척하려는 정신이고,

다른 하나는 정해진 운명이 있다고 믿으며 그 흐름에 자신을 맡기는 마음이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마흔을 살다 보니 나름의 계획은 분명히 있었지만,

인생은 단 한 번도 내 뜻대로 흘러간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하는 삶을 꿈꿨다.

하지만 그 시기에 내게 찾아온 것은 성공이 아니라 정신질환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대학에 갔고, 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살아내긴 했지만 사회는 결코 쉽지 않았고, 결혼은 사랑이라기보다 도피처에 가까웠다.


요즘 능력 있는 여성들은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고들 한다.

그 말이 왜 나오는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원룸에서 남편과 삶을 시작했다.

이사가 지긋지긋해 집을 샀고, 집값은 올랐다.

하지만 지출은 더 커졌고, 결국 빚더미에 앉아 이혼을 했다.


이혼을 전후한 시기에는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들을 겪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의 선택들은

생각해보면 때론 '희망'이었고 때론‘시련’이었지만

지금은 시련이라는 터널을 건너고 있다.

그 터널 속에서 나는 정신과로부터 근로무능력 판정을 받았다.


어쩌면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지만 글도 쓸 수 있고,

사회에 나갈 수는 없지만 완전히 무너진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세상에 증명하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브런치에서 조회수와 공감을 많이 얻는 글들은

대개 개인적 고백을 넘어 누군가에게 깨달음이나 위로,

혹은 지식을 건네는 글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는 통찰과 축적된 지식도 어느정도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글쓰기는 개인적인 고백, 일기에 가까운 기록뿐이다.


세상 속으로 완전히 나아가지는 못했지만,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고 싶지도 않은 마음.

그 마음으로 쓰는 최소한의 소통이 바로 이 글들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주고, 때로는 깨달음과 지식을 전하는 글들을 볼 때면 솔직히 부럽지만.










마흔의 시간 속에서 때로는 기쁨과 슬픔을, 그리고 희망과 절망을 배워가고 있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니 어쩌면 사람에게는 ‘운명’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여전히 내 마음의 이정표를 따라 산다.

하고 싶은 것들을 따라 걷는다.

글을 쓰는 일 역시 그중 하나다.


운명이라는 거대한 시간표 안에서,

마음의 끌림을 따라 선택했던 순간들이 때로는 희망이었고,

때로는 절망이었듯

지금의 선택들이 다시 한 번 희망으로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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