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밝음을 좋아한다.
아마도 인생이 본래 어두운 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마흔 즈음 살아보니,
저 사람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오늘 정신과를 다녀왔다.
열아홉에 처음 두 알로 시작한 약은
스무 해가 흐른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는 서른아홉,
약의 개수는 그때보다 훨씬 많아졌다.
조울증이 있어서 우울증 약은 조심해야 한다고 배워왔는데
오늘은 항우울제를 처방받았다.
약 봉투를 들고 나오며
현대의학이 과연 내 병을 어디까지 데려다 줄 수 있을지
잠시 생각했다.
병원 대기실에는
냄새가 나는 사람들도, 아이들도 있었다.
우리 아이도 ADHD 검사를 권유받았지만
나는 아직 그 정도는 아니라고 믿고 싶다.
내 아이는 밝고 영특하다.
다만 가난이,
아이들의 어깨 위에까지
보이지 않는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아 마음이 아팠다.
스마트폰을 꼭 쥐고
조금은 허름한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며
세상이 아이들에게까지
너무 일찍 현실을 가르치는 건 아닐까 생각했다.
어제는 이런 말을 들었다.
가난하면 여자로서의 삶도 포기해야 한다고.
여자로 산다는 것은
머리를 하고, 옷을 사고,
스스로를 가꾸는 일이라고들 한다.
젊은 날의 나는
통장 잔고가 0이 될 때까지 꾸미고 살았다.
그땐 당찼고, 밝았고,
내가 세상의 중심인 줄 알았다.
하지만 마흔의 나는
그러기엔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렸다.
그래도 분명한 건,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는 생각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는 너무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나를 다시 삶 쪽으로 밀어낸다.
건강하게 살아낸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지혜와 인내를 요구한다.
나는 아이와 근근이 하루를 산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기력이 없어 병원에 가고,
조심스럽게 하루를 아껴 쓴다.
오늘 받은 항우울제는 초록색이다.
내가 키우는 식물도 초록색이다.
나는 그 초록을 믿어보고 싶다.
자라나는 색, 살아 있는 색.
내가 가진 노랑빛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완전히 밝지는 않지만
분명 따뜻한 색.
가난하면 여자다움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이
가슴을 후벼 파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은,
아주 조금은 여자답게 살고 싶다.
비싼 옷이 아니어도,
완벽한 외모가 아니어도,
내 안의 빛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살다 보면
또 좋은 날이 올지도 모른다.
희망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
초록색 약 한 알,
작은 화분 하나,
아이의 웃음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그 초록을 삼키며
하루를 살아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