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사이에는
외로움이라는 틈이 있다.
나에게도 그 틈이 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틈을 메우며 살아간다.
사랑으로, 일로, 돈으로, 취미로.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아무나 만날 수 없고,
아무나 만나고 싶지도 않다.
연결된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마흔이 되어서야 실감한다.
누군가를 다시 만나
새로 시작할 수 있을까.
오늘은 도서관에 와서
아이와 살 집을 LH에 신청했다.
새로운 곳으로 가면
또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즘은 거울 보는 일이 싫다.
칙칙해진 피부, 넓게 번진 기미.
한숨이 먼저 나온다.
일을 하지 않으니
사람을 만날 일도 줄고,
객관적으로 나를 비춰볼 기회도 줄었다.
집에만 있으면
우울이 깊어져
오늘도 도서관으로 나왔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하루를 붙잡아 본다.
젊은 날의 나는
남자를 만나며 세상과 소통했다.
먼저 다가갔고,
당당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왜 그렇게 할 수 없을까.
가난 때문일까.
노화 때문일까.
아니면 너무 많아진 생각 때문일까.
아이 때문일까.
차라리 아무 생각 없이
나사 하나쯤 빠진 사람처럼
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요즘의 나는
그저 책을 읽고
주어진 과업을 해내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3월이면 상담심리학 새 학기가 시작된다.
나는 잘 해낼 수 있을까.
상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일을 하며
끝까지 잘 마무리한 기억이 많지 않다.
그래서 더 두렵다.
그래도 기도해 본다.
이번에는 끝까지 가보기를.
무언가를 해내는 사람이 되기를.
오늘도 병에 걸릴까 걱정했고,
앞으로 내야 할 민사 재판 벌금과
이사 비용을 계산해 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를 했고,
도서관에 왔고,
글을 썼다.
오늘 읽은 책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적어도
내 앞가림은 하고 있지 않은가.
언젠가 병에 걸려 죽을지라도
지금은 두 발로 걷고,
밥을 지어 먹고,
책을 읽고,
상담 일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따뜻한 봄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
그래,
나는 아직 희망이 있는 사람이다.
희망을 가진 사람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현실이 조금 아플지라도
견디다 보면
어느 날 기쁜 날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듯
인생의 시련도
결국은 지나가는 계절일 테니까.
마흔이라는 나이만큼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주어진 운명의 시간표대로
나는 나만의 봄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
이렇게 살다 보면
조금 좋은 날도
찾아오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