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아버지가 매일같이 싸우던 집에서 자란 아이는 안다.
고요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방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터지던 고함 소리,
밥상 위로 흩어지던 분노,
잠들기 전까지 이어지던 전쟁 같은 공기.
그 속에서 나는 늘 긴장한 채로 숨을 쉬었다.
아이였지만 아이답게 편히 있어 본 적은 많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나는 도서관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래된 책 냄새가 먼저 나를 맞았다.
사람들은 각자의 책에 고개를 숙인 채 조용히 집중하고 있었다.
아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고,
아무도 누군가를 탓하지 않았다.
그 에너지 속에 앉아 있으면
나도 무엇이든 이룰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고요는 단순한 ‘조용함’이 아니라
나를 다시 숨 쉬게 하는 공기였다.
오늘도 깨끗이 씻고
향이 남은 몸으로 도서관에 나왔다.
아침에는 해가 떠서 기분이 좋았고,
막상 나오니 쨍하지는 않지만 푹한 날씨가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춥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고 왔다.
페달을 밟는 동안만큼은 생각이 단순해진다.
빠르게 도착할 수 있다는 것도 좋고,
바람을 가르며 가는 그 시간이 좋다.
도서관에 오면
대단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책을 읽고,
짧은 글을 쓰고,
그렇게 소소하게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 ‘아무 일 없음’이
집에서 할 일 없이 웅크리고 있는 하루보다
백배, 천배는 낫다.
곧 사이버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 책도 도착한다.
공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대학원을 가려면 영어공부도 해야 한다.
겁이 나지만, 해볼 생각이다.
한동안 집어삼키던 우울은
수면제가 바뀌어서인지,
계절이 지나서인지,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달라져서인지
조금은 옅어졌다.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아직,
움직일 에너지는 충분하지 않다.
무언가를 하려면 움직여야 하는데
그 첫 발을 떼는 힘이 모자라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못 자고,
잠을 못 자면 다시 무너진다.
나는 정말 평생 일을 할 수 없는 걸까.
상담이라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정신과 약을 먹으면
도파민을 차단해서
의욕까지 사라진다고들 말한다.
결국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된다고.
그럼 먹으라는 건지,
먹지 말라는 건지.
나는 약을 먹으며
조금은 나아졌고,
조금은 무뎌졌고,
조금은 살아냈다.
어느 쪽이 정답인지
아직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처럼 싸웠다.
그리고 나는 불안 속에서 자랐다.
결국 나는 정신질환을 앓게 되었고,
아이를 낳았고,
이혼을 했다.
이것이 대물림이 아니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는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기도도 했다.
상처를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도 인생은
내 뜻대로만 흘러가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아이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나왔다.
나는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공부를 계획하고,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완전히 무너지지 않았다.
혹시 대물림이 있다면
상처만이 아니라
이 고요도,
이 책 냄새도,
이 공부하려는 마음도
함께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전쟁 같은 집에서 자란 아이가
도서관의 고요를 알아차렸듯이.
오늘도 나는
고요 속에 앉아
조금씩 나를 다시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