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랑빛에서 잿빛인생으로. 그리고 희망.

by 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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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마흔이다.
요즘은 스트레스가 너무 심하다.

딱히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랑이 사라진 남편과 함께 살아가는 일은 버겁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를 양육하는 일은 더 버겁다.
게다가 나는 조울증을 앓고 있다.


남편의 사랑이 있었을 때는
아이를 키우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병도 지금처럼 깊지 않았다.


하지만 10년의 시간이 흐르고,
빚을 안은 채 이혼을 하게 되었고
그는 밑바닥을 드러냈다.
함께 쌓아온 정마저
하나둘 떨어져 나갔다.


젊었을 때의 나는
이렇게까지 기분의 파도가 크지 않았던 것 같다.
스트레스도 지금처럼 심하지 않았고,
밝고 명랑했다.

돌이켜보면
그 시절의 나는 젊었고,
어떤 형태로든 사랑이 있었다.
그래서 밝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젊음은
이끌림과 목표만으로도
삶을 견디게 해주었다.


하지만 마흔이라는 나이는
나를 염세적으로 만들었다.

자본주의라는 세계 안에서
가장 아래의 계단과
가장 위의 계단을 모두 오르내리고 나니
그 끝은 결국
냉소에 가까운 지점이 되었다.


어떤 종류의 사랑도
더는 수혈받고 싶지 않고,
수혈할 힘도 없는 사람.


가족들은 내 처지를 알고
가끔 안부를 묻는다.
그 연락은 고맙다.
사회복지사의 연락도 고맙다.


그럼에도 마흔이 된 지금,
가슴 어딘가에 난 구멍은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여자로서 산다고 행복할까.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이 허기가 채워질까.

누구를 만나도
뚫린 가슴은 그대로일 것 같고,
또 다른 갈등이 생기겠지.


여러 생각 끝에
나는 무엇도 선택하지 못한 채
노랑이던 마음이
조금씩 회색으로 변해간다.

아이를 키우는 일은
사랑이 있을 땐 어렵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젊었고,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짜증과 스트레스는 쌓이고
해소되지 않는 이 감정을
어디에 내려놓아야 할지
점점 알 수 없어진다.


오늘 도서관에는
노인 일자리 사업으로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었다.

늙어서도 일을 해야 하는 현실.
나는 돈을 버는 일이
늘 어려웠다.
정확히 말하면
일 자체보다 사람과의 관계가
나를 지치게 한다.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회.
이 고통이 끝까지 이어진다면
차라리 선택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극단적인 생각도 스친다.


삶은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끝내고 싶은 고통일 수도 있다.

탄생도, 죽음도, 선택할 수 없는 사회.


그래서인지
나는 죽음에 대해
점점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호수 속에서
내가 받는 복지는
작은 돌멩이 하나처럼 느껴진다.


그럼에도
나는 살아야 했다.
아이와 함께 살아야 했다.


정신병이 없었다면
조금은 더 활기찬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
젊은 날의 나는 낙관주의자였지만
지금의 나는
현실에 찌든 염세주의자가 되어 있다.


요즘 청년들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는 이유를
이제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세상 물정 모르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나는
운이 좋아 10년을 버텼지만,
수급자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지금의 삶은
그들의 선택을 이해하게 만들었다.


정신병을 앓으면서도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
하지만 이 많은 스트레스 속에서
혹시 내가 아이를
불행하게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두려워진다.


밝고 순한 아이.
조금 고집은 있지만
여전히 노랑빛인 마음을 가진 아이.

그 아이의 마음이
내 회색빛에 물들지 않기를
오늘도 기도한다.


죽을 수는 없다.
이 잔인한 세상에서
수급자가 되어 아이를 키운다는 건
나에게도 잔인하지만,
그 아이에게는 더 잔인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아주 작은 것들에 감사하며
하루를 살아본다.

아직 건강한 몸,
돌아갈 집,
적은 돈이지만 들어오는 양육비,
천 원만 내고 약을 받을 수 있는 제도,
그리고 아이의 웃음.


이사를 가면
병을 더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싶다.
산에 오르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가능하다면 사람들과
조심스럽게 다시 연결되고 싶다.


사람에게서 상처받았지만
결국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 존재라는 걸
나는 아직 믿고 싶다.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버텼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고.

이런 나도 살았으니
당신도 살아보라고.


정신병을 앓으며

아이도 낳고

결국 기초생활 수급자가 되었지만,


노랑색이던 나의 세상이

잿빛 세상이 되었지만

결국 인생의 색깔은 늘 노랑색 일 수 없고

때론 잿빛인생을 버티고 살다보면

다시 노랑색이 될 수 있다고.


그렇게 희망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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