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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Nov 15. 2022

반성은 다른 누가 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반성하기를 기대할 수도 없을까?

  아침엔 날이 흐리고 안개가 자욱하다, 시간이 지나며 맑게 갰다.

  6학년 아이들과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아이들은 수업 전에 나를 만나면 늘 물어본다. 오늘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오늘은 누가 먼저 하는지, 팀은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증을 늘어놓는다. 대부분의 경우는 늘 하던대로 진행하지만 활동의 경우는 다르다. 나는 늘 같은 활동만 하곤 했던 나의 학창시절의 체육시간에 염증을 느끼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같은 활동만 계속해서 시키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따라서 활동은 2회 혹은 3회를 주기로 바뀐다. 활동은 내가 고안하기도 하고 이미 존재하는 스포츠를 변형시키기도 한다. 사실 아예 처음부터 고안하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어렵다. 나의 상상속에서는 재미있게 진행되는 활동이 현실에서는 꼭 예상치 못한 문제로 삐걱대곤 한다. 몇 차례 실망을 맛본 후, 나는 알았다. 놀이를 만든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따라서 나는 이미 있는 활동을 변형하는 방법을 즐긴다. 축구를 예로 들면 경기에 참여하는 인원, 사용하는 공, 골대의 위치, 골대의 종류, 골대의 갯수, 경기장의 모양, 경기 시간, 점수를 올리는 방식 등 변형할 수 있는 요소가 굉장히 많다. 이 중에 한 두개만 변형시켜도 꽤나 멋들어진 게임이 탄생한다. 이 게임을 한 두 차례 해보며 보완점을 계속 찾는 것이다. 한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보완점을 알 수 있다. 보완점을 보완하여 두 번째 해본다. 이렇게 서너 시간을 수업하다보면 그럭저럭 주어진 대로 완벽하다고 볼 수 있는 게임이 탄생하게 된다.

  서두가 길었다. 오늘은 진을 지키는 진놀이의 변형 게임을 하였다. 아이들은 진을 지키며 다른 편이 가지고 있는 고무 고깔을 안전하게 가져오면 된다. 아주 간단하고 재미있는 놀이로, 유튜브에서 여러 선생님들께서 올려놓으신 자료를 이 아이들에 맞게 변형한 놀이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컨디션이 말썽이다. 아이들은 오늘 가라앉아있다.

  다른 모든 직업이 그렇듯 교사라는 직업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적다. 교실에서는 아이들의 눈치를 살펴야 한다. 수업은 교사가 혼자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소프트 파워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이들이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한다는 생각까지는 심어줄 수 없더라도 아이들이 싫어하는 것을 교사가 혼자 원해서 억지로 끌고간다는 느낌을 주면 안된다. 따라서 아이들의 눈치를 살피고, 아이들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애쓴다. 오늘의 나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은 왠지 모를 이유로 짜증이 나있었고 예의가 없는 상태다. 쉽사리 짜증을 내고 같은 반 아이들끼리 서로 손가락질을 한다. 서로 잘잘못을 가리며 싸운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 중재했다. 아이들 사이에 섞여 중재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려 애썼다. (적어도 그런 인상을 주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아이들은 철이 없다.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숨기는 방법도, 필요성도 모른다. 그저 짜증이 나면 나는대로, 화가 나면 나는대로 표현하기 바쁘다. 같은 상황이 한 시간동안 계속되니 피로가 밀려온다. 아이들은 알 필요가 있다. 내가 호의를 베풀어 준다는 것을. 나는 너희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대할 권리가 없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런 것을 알기는 너무나 어리다.)

  너희 오늘 정말 형편없는거 아니?

  가라앉은 목소리로 설교를 시작한다. 이미 얼어있던 분위기가 더욱 얼어붙는다. 더이상은 상관 없다. 이 아이들은 배워야한다. 

  나 2학년도 수업 들어가는데, 너희보다 한참 어린 2학년도 이렇게는 행동하지 않는다.

  나는 아이들의 자존심을 긁는다. 아이들은 6학년이다. 초등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학년으로서 자존심이 상당하다. 하지만 학년이라는 것도 나이와 마찬가지다. 내가 그것을 얻기 위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이들은 자신이 무엇을 이뤄내거나 대단해서 6학년이 된 것이 아니다. 그저 운좋게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더 먼저 태어났을 뿐이다. 아이들은 이것을 모른다. 따라서 아이들은 더 부숴져야 한다. 더 부숴지고 깨져야 이런 아집에서 벗어날 것이다.

  서로 손가락질하고, 핑계대고 원망하고, 이런식으로는 안한다고.

  대답이 없다. 할 말이 없어서 대답을 못하는 것이길 바란다. 하지만 아니겠지. 표정에 벌써 원망이 드러난다.

  다음에 또 이런식으로 해라, 꼭. 일단 오늘은 잘가.

  나는 원래 아이들에게 인사를 열심히 한다. 그러나 오늘은 아이들도 알 필요가 있다.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자신들이 철없게 행동했다는 것을. 아이들을 못 본 채하며 휙 돌아선다. 아이들은 얼른 교실로 돌아간다. 반성하거나 느낀 것이 있을까? 아이들이 과연 반성이라는 것을 할까? 나도 저 나이 때는 반성을 하지 못했는데. 내 행동을 돌아보기보다 남을 손가락질하기 바빴는데. 과연 이 아이들이 나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오늘은 굉장히 기분이 나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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