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친모를 알아보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공기가 점점 차게 느껴진다.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낮부터는 맑다.
어제는 아이들과 농구를 하게 되어, 농구 골대에 슛을 던져 넣었다. 잘 들어가지 않아 조바심이 난다. 당장 오늘도 수업이 있는데, 아이들에게 연습할 요령을 알려주려면 내가 직접 체험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슛을 던지고, 또 던졌다. 어떨 때는 들어가고, 다른 때는 들어가지 않는다. 느낌을 알았다고 생각한 순간이 지나면 들어가지 않는다. 나는 계속 던졌다. 계속 던지다 보니 조금씩 많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니. 무릇 모든 자식은 부모를 닮게 되어있다. 자식은 필연적으로 부모를 닮는다. 부모가 아니라면 조부모라도 닮게 되어있다. (물론 입양 가정에서는 생김새 같은 생체적 특징은 비슷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생체적으로 섞여있지 않은 이런 가정에서도 생활습관이나 말버릇, 행동은 필연적으로 닮는다.)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면, 성공은 실패의 자식이다. 성공은 자신의 부모인 실패와 닮아있어야 한다.
나는 많은 실패를 겪어보지는 못했다. 아이들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어른이기는 하나, 같은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어린 축에 속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 나이를 많이 먹지는 않았다. 내가 맺고 있는 인간관계들도 주로 형들과의 관계가 많다. 동생들이 아직 많이 없다는 이야기는 내가 무작위 집단에서 나이가 어린 쪽에 속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나에게도 실패의 기억은 쓰라리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축구를 할 때 골을 넣지 못했던 것처럼 사소한 실패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교사 임용고시에 떨어졌던 큰 실패까지. 나는 다른 많은 사람이 그랬듯 크고 작은 실패를 해 보았다. 내 실패는 나의 성공의 어머니였을까.
내 실패는 성공을 잉태하지는 못했다. 나는 골을 넣지 못한 뒤 공만 잡으면 가슴이 뛰었다. 친구들이 나에게 공을 패스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나는 공을 피했고, 공이 올 수 없는 곳으로만 움직였다. 나는 곧 친구들과 축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축구 경기에 나서는 것이 두렵다. 축구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것만큼 두렵다. 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게 되어버렸다.
왜 내 실패는 성공을 낳지 못했을까?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내 실패는 성공한 사람들의 실패와 무엇이 다른가. 나는 실패를 많이 하지 않았다. 나는 실패를 한 번만 했다. 혹은 한두 번만 했다. 같은 일에 가장 여러 번 실패한 경험이라고는 시험에 세 차례 떨어진 기억뿐이다. 나는 실패를 한 번 넘게 하지 않는다. 이 말은 한 번 이상 시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패를 많이 한 사람은 결국 시도를 많이 하게 된다. 나는 농구공을 백 번도 넘게 던졌다. 그중 70번은 실패했을 것이다. (세어보지는 못했지만) 70번 실패하면서 70번만큼 더 배웠다. 이렇게 하면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70여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니 공이 더 잘 들어간다.
나도 드디어 성공을 잉태했다. 내 실패도 드디어 성공의 어머니가 되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그러나 생략된 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여러 차례 계속된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다. 나는 실패를 조금은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