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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Dec 08. 2022

성공했다!

앞으로 자신감이 더 늘 것 같다.


  날이 한결 포근하다. 입김이 신기할 정도로 많이 나온다.



  오늘은 아주 기쁘다. 두 반의 아이들을 한 번에 데리고 경기를 성공적으로 진행했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어 기쁘고, 아이들이 별 탈 없이 즐겁게 놀다 돌아가서 기쁘다. 걱정했던 것이 별것 아니어서 기쁘고, 나 스스로 의심했던 내 능력을 알게 되어 기쁘다. 나는 내 생각보다 더 능력이 있는 교사구나, 느꼈다.


  합동 수업을 하게 된 계기는 단순히 수업 시수 때문이었다. 사실 두 반을 함께 수업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30명이던 아이들이 60명이 되면 두 배로 힘든 것이 아니라, 서너 배로 힘들다. 아이들은 몇 배로 시끄러워지고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 들뜬다. 서로 친구를 만나면 이야기하기 바쁘고, 경쟁이라도 하게 되면 같은 학교 친구라는 것은 잊고 같은 반이라는 고리에 묶여 서로 헐뜯고 미워한다. 미워한다기보다 증오한다는 표현이 더 옳을 듯싶다. 상대를 증오하고, 상대를 부수고 이겨야 직성이 풀린다. 그런 증오가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움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함께할 수 있을까, 그것이 제일 큰 고민이었다.


  아이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체육을 두 시간 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니, 이기고 지는 것은 잊자고 말했다. 한 시간 하던 체육을 두 배나 늘린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행운이다. 준비하는 나는 머리가 다 빠지는 줄 알았다.) 아이들에게 행복을 강조했다. 이런 일이 늘 있는 것이 아니고,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서로 헐뜯고 미워하지 않게 다짐시켰다. 아이들은 알겠다고 했다. 걱정됐지만, 걱정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시간은 두 시간이지만 촉박하고, 아이들은 많았다. 아이들을 휘어잡지 못한다면 행사는 순식간에 망할 것이다. 정말 말 그대로 완전히 망해버릴 것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느낌을, 내가 모든 것을 조절하고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의 불안은 쉽게 전염된다.


  아이들을 모두 불러 모아 준비운동을 시킨다. 준비운동을 하고, 미리 전달받은 명단을 부른다. 정말 경기를 하는 것처럼 임하게 하려면 이런 절차도 필요하다. (국민의례나 선서와 같은 행사를 준비했지만 너무 오버하는 것 같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 경기에서 하는 것 같은 절차를 따라 하면 아이들은 진지하게 임한다.) 명단을 부르고, 얼굴을 확인한다. 이미 다 아는 얼굴이지만, 다른 사람처럼 대한다. 아이들을 정렬시키고, 규칙을 한 번 더 설명한다. 심판에게 항의하면 이 즐거움은 끝이라고 알려준다. 나는 최대한 공정하게 심판을 볼 것이고, 아이들은 불만을 넣어둘 줄도 알아야 한다. 아이들은 알겠다 하며 돌아간다. 나는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바로 노래였다. 나는 요즘 노래를 즐기지 않지만, 아이들은 노래를 좋아한다. 요즘 유행하는 노래 메들리를 유튜브로 찾아 틀어놓았다. 아이들은 아는 노래가 나오면 신나게 따라 부르고 춤을 추기도 한다. 경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아이들도 신나게 즐긴다. 됐다. 아이들을 신나게 만들어 놓았으니, 이제 아이들이 알아서 하도록 빠져주면 된다. 경기를 진행시키고, 심판을 본다. 아이들은 알아서 재미있게 참여한다. 이미 재미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고, 아이들은 점점 흥분하며 경기에 몰입한다. 


  흥분하지만, 과하게 몰입하거나 선을 넘지 않는다. 아이들은 나를 안다. 나는 평소에는 굉장히 관대하지만 선을 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눈물을 쏙 빼놓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알아야 한다. 교사의 권위를 알아야 하고, 내가 친구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도 알아야 하고, 나는 항상 공정하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다행히도, 아이들은 알고 있다. 아이들은 항의하지 않는다. 내 판정에 항의하거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고, 양심을 지키며 게임에 참여한다.


  2시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르게 지나버렸다. 어느새 끝날 시간이 되었다. 결과는 2반의 일방적인 승리였지만, 1반 아이들도 만족했다. 체육을 두 시간이나 했으니까. 나는 아이들을 모아 박수를 쳐 주었다. 아이들은 모두 즐겼고, 모두 고생했다. 최대한 많은 아이가 경기에 참여하도록 게임을 설계했고, 아이들은 모두 게임에 참여했다. 자신의 반을 위해 노력했고, 성취했다. 졌어도, 이겼어도. 


  이 수업을 준비하며 걱정하는 말을 들었다. 아이들이 싸웠다더라, 엉망이 되었다더라. 하지만 나는 해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걱정했지만, 걱정을 즐거움으로 바꿨다. 나는 능력 있는 교사구나, 생각했다. 다음 주에 같은 행사를 한 번 더 해야 한다. 자신감이 조금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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