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초보선생님 Dec 29. 2022

아유 무료해

정말 심심한 나날이다.

  할 일이 없다. 담임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날 때는 지금이 가장 바쁜 시기였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책임져야 할 아이들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 출근해도 할 일이 많지 않다. 선생님들이 바쁜 원인은 크게 세 가지인데, 수업 준비와 행정 업무, 민원 응대가 바로 그것이다. 나는 수업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수업을 준비할 것도 많지 않다. 무엇보다 하나의 수업을 준비해서 반의 개수만큼 수업을 하기에, 절대적인 준비량 자체도 적다. 원래 전담 교사들은 위에서 말한 대로 수업 준비에 대한 부담이 적기에 행정 업무가 과중하나, 나는 신규 교사로 발령받아 학교의 배려를 받아 업무도 많지 않다. 그마저도 다 끝났다. 담임교사가 아니기에 특별한 일이 아니면 민원 응대를 할 일도 없다. 따라서 나는 요즘 할 일이 없다.

  나는 할 일이 없으면 주로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것을 즐긴다. 전문가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나는 주로 경제나 정치, 사상이나 철학에 관심이 많다. 따라서 그런 분야의 책을 주로 읽는다. 몇십 년 동안 한 분야에서 종사한 전문가의 의견을 읽는 것은 굉장히 즐거운 일이다. 한 사람이 평생을 바쳐 이룬 업적을 단 몇 만 원에 읽을 수 있다니. 수십 년의 시간과 엄청난 노력, 비용을 들여 얻은 지식을 이렇게 쉽게 얻어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렇게 다양한 지식을 얻으면, 내 것으로 만들어 아이들에게 나누려 노력한다.

  그러나 오늘은 책을 읽을 태블릿을 가져오지 않았다. 출근길이 춥고 짐이 무거워 태블릿을 두고 나와야겠다 마음먹은 탓에 내 가방에는 태블릿이 빠져있다. 나는 종이책을 좋아하지만 책을 사다 보면 집이 사는 공간인지 물건을 보관하는 공간인지 모를 만큼 짐이 가득 차버리기에, 부피가 없는 전자책이 장기적으로 옳은 판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에 있던 수업이 체육관 행사 관계로 취소되어 시간이 갑자기 비어버렸다. 무엇을 할까. 할 일이 없다.

  오늘 뿐 아니라 요즘 할 일이 없다. 여자친구가 여행으로 해외로 떠나버렸기 때문도 크다. 여자친구는 여행을 좋아해서 학기 중에 계속 벼르는 말을 들었다. 방학하면 이 스트레스를 모두 여행으로 풀어버리겠다고 다짐하는 말도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하면 나도 불행하다. 여자친구가 행복한 쪽이 우리 모두에게 좋다. 여자친구에게 잘 다녀오라고 배웅하고, 며칠이 지났다. 늘 연락하던 사람도 여자친구, 놀던 사람도 여자친구, 같이 무얼 하는 사람이 여자친구였던 나는 홀로 남겨졌다. 원래 나는 친구가 많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라 한 명이면 족했다. 딱히 친구를 만나 사교 활동을 하고자 하는 욕구를 풀지 않아도 되는 축복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다. 혼자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취미 생활을 하기에는 시간도 여유도 부족하다. 무엇보다 나는 시골에 있기에 지리적 여건이 만만치 않다. 운동을 하려 해도 멀리 나가야 한다. 눈이 수북이 쌓인 길을 30분씩, 왕복 한 시간 걷는 것은 무리다. 내가 아무리 운동을 좋아해도, 이 추운 날 걸을 생각만 하면 운동생각이 싹 가신다. 혼자 살다 보니 먹는 것도 시원치 않아 안 그래도 불편한 속이 더 불편하다. 하루에 달리기 30분이면 건강이 훨씬 좋아지겠지만, 영하 10도가 넘는 추위에 뛰는 것은 건강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몸을 학대하는 것이다. (라고 생각한다.) 집에서 운동하는 소위 홈 트레이닝으로 연명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새로운 운동장소를 찾을까 하는 욕망이 스멀스멀 고개를 든다. 돈이 조금 들더라도 쾌적한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잡생각이 온 머리를 가득 채우게 된다. 혼자가 아니라면 대화를 통해 생각을 어느 정도 배설할 텐데, 그게 여의치 않으니 머리는 생각으로 가득 차버렸다. 생각이 가득 차버리니 원활히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재미가 없다. (요즘 이렇게 모든 일이 재미가 없는 데는 연말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겨울이 싫다. 겨울 냄새만 맡으면 시험에 떨어졌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즘 간헐적 단식을 시작한 탓도 있을 것이다. 나는 먹기 위해 사는 사람이었는데, 점점 장 건강이 좋지 않아 지는 것이 느껴져 건강을 위해 간헐적으로 굶고 있다. 먹는 것을 나처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단식은 고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무료한 와중에도 점점 단단해지는 마음을 느낀다. 지금까지 다양한 종류의 시련이 나를 찾아왔고, 나는 어찌 되었든 결과적으로 시련을 다 극복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시련을 느끼며 배운 것은, 어차피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무료함도 곧 지나갈 것이다. 곧 무료함보다 즐거움이 가득한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무료함 속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이전글 따돌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