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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Dec 28. 2022

따돌림

아이들이 내 말을 들을까?

  악은 무관심을 먹고 자란다. 아이들도 사람들이기에 아이들 사이에도 악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들은 때로는 '선량한'어른들이 보기에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곤 한다. 꼭 저녁 뉴스에 보도될 만큼 큰일이 아니더라도, 사소한 악행은 나를 놀라게 한다. 어떤 아이들은 악을 저지르고, 악을 저지르는 상황과 피해를 당한 아이의 고통을 즐거워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악을 저지르는 어른들과는 또 다른 형태를 보인다. 그저 동물과 같은 순수한 지배욕, 파괴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악행을 저지른다.

  따돌림이 가장 대표적인 악행일 것이다. 인간은 자신과 다른 것을 참지 못한다. 비단 아이들의 일은 아닐 것이다. 옷차림이나 음식을 먹는 방법, 머리 스타일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이 어른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적 취향 같은 유전적 정보에 의해 정해지는 요소들조차 남들과 같지 않으면 정신 질환 취급하는 것이 어른들이다.) 남들과 다른 것이 곧 잘못이고, 죄악인 사회에 살고 있어서일까. 다름이야말로 인간을 이렇게 발전시킨 원동력이라는 것을 왜 모를까. 다양성이 인간의 힘인 것을.

  아이들은 그런 어른들에게서 다른 것을 배척하는 방법을 배웠다. 다른 것을 배척하는 행위의 당위성을 배웠다.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 이 아이는 따돌려도 괜찮다. 우리보다 약하니까, 말이 어눌하니까. 대화하는 방식이 조금 매력적이지 않으니까, 행동이 굼뜨고 느리니까.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도 이 아이를 따돌리며 즐거워하니까. 잘못된 행동이 아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른들은 그러면 안 된다. 따돌림을 본 순간 바로잡아야 한다. 이것이 왜 잘못된 것인지 때로는 교사의 권위와 공포심을 이용해서라도 알려주어야 한다. 자신과 다르다고 해서 놀리고 따돌리는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5학년 모 반에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들이 두 명이나 있다. 두 아이는 인간적으로 매력이 없는 아이들이다.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아니다. 그렇지만 놀리고 괴롭히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누구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을 고통에 처하게 할 권리는 없다. 명백히 잘못이다. 그러나 이 아이들을 본 어른들은 눈을 감았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아이들은 고통받고 있었다.

  술래잡기 피구 시간이었다. 아이 둘을 술래로 만들고 조롱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운동을 못한다. 잘 맞추지 못하고, 잘 던지지 못한다. 달리기는 더더욱 못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이겨내길 바랐다. 아이들 틈새에서 살아남으려면 스스로 인식을 바꾸는 방법밖에는 없다. 괴롭힘이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개입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아이를 보는 마음이 찢어졌지만 어쩔 수 없다. 친구가 되어주지 않는 것이 죄는 아니니까.

  한 아이가 와서 말한다. 누가 저를 놀렸어요. 좋아, 명분이 생겼다. 아이들을 불러 모은다.

  남자들 다 이리 와.

  아이들은 분위기를 읽었다. 쭈뼛대며 다가온다. 그래, 지금까지는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었겠지. 잘못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었겠지. 그렇지만 너희는 알고 있다.

  얘한테 한마디라도 한 사람 다 이리 나와.

  아무도 없다. 예상했다. 순순히 나올 리 없지.

  아무도 없다고? 그럼 얘한테 물어봐서 나오면 죽는다. 순순히 나와.

  이제야 아이 몇몇이 급히 물어본다. 다 얘기한 내용인데, 자신이 몰라서 못 나왔다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몰라서 못 나왔으면 죄가 없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욕한 게 아니라 그냥 말한 건데 나와요?

  내가 욕한 사람만 나오라고 했어?

  네 명이 나왔다. 

  더 없어?

  아이들을 훑어본다.

  지금 안 나왔는데 얘가 말하면 죽는다. 정말.

  아무도 없다.

  또 없어?

  OO이도 그랬어요.

  아이가 말한다.

  OO가 누구야.

  한 아이가 나온다. 눈에 당혹스러움과 공포가 가득하다. 아이가 했을까 안 했을까. 나도 확신이 없다.

  너 왜 안 나왔어.

  정말 기억이 안 나요.

  네가 했는지 안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

  네. 진짜 기억이 안 나요.

  아이는 평소에 착실한 아이다. 과연 아이가 나를 속인 것일까? 선생님에게는 모범적인 모습만 보이다가, 자신보다 약한 아이에게 손가락질했을까? 나를 속이려는 것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얘가 뭐라고 했어?

  아까 못 맞추지~ 하면서 놀렸어요.

  서있던 다른 아이들이 말한다.

  제가 했어요, 얘는 안 했어요.

  저희 둘이 한 거고 얘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그래, 안 했구나. 안 한 것 같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확실하지 않은 일로 혼낼 수는 없다. 내가 사법기구는 아니지만, 어쨌든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지 않은가.

  확실히 안 했어?

  네.

  그럼 들어가.

  아이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들어갔다.

  너희, 너희는 왜 그런 거야. 내가 얘네 처음 봤니? 나도 한  학기 동안 봐서 다 알아. 얘네가 남들보다 운동도 잘 못하고, 조금 느리지. 그렇다고 너희가 놀려도 되는 거야?

  아니요.

  아이들은 대답한다. 아이들이 알았을까? 정말?

  너희 몇 살이야?

  12살이요.

  12살인데 내가 친구 놀리지 말라는 것도 알려줘야 하는 거야? 친구 괴롭히지 말라는 것도 알려줘야 하는 거냐고.

  아니요.

  그럼 이제 어떡해야 할까.

  사과해야 해요.

  사과하는 방법 알아?

  잘못한 행동을 말하고 마음을 말해야 해요.

  약간 놀랐다. 아는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다니.

  그래, 사과해 봐.

  아이들은 사과했다. 나는 사과를 받는 아이에게 사과를 들을 때마다 물었다. 받아줄 거야? 아이는 네 한다. 

  너희 다 이리 와.

  반 아이들 전체가 두 줄로 섰다.

  앞으로 얘네 괴롭히는 사람 보이면 죽는다. 진심이야. 알겠니.

  네.

  그리고 너희. 너희는 누가 괴롭히면 나한테 바로 와. 나 어디 있는지 알지?

  네.

  가.

  아이들을 보냈다. 아이들은 모두 돌아갔다. 아이들이 알았을까? 다 같이 나를 욕하고 잊어버릴까? 자신의 잘못을, 자신이 오늘 했던 사과를, 나에게 들었던 말을. 다 잊어버릴까? 아니면 마음속에 조금이나마 변화가 일어났을까? 아이들이 과연 배웠을까.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 안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누구도 서로 괴롭게 만들 권한이 없다는 단순한 사실을.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정말 단순하고도 단순한 진리를. 아이들이 과연 깨달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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