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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선생님 Jan 02. 2023

해와 바람 이야기

무심코 넘길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솝 우화를 보면 해와 바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지나가는 나그네를 본 해와 달이 나그네의 외투를 누가 벗길 것인지 내기를 하는 내용이다. 결과는 다들 알다시피 강력한 바람보다 포근한 해의 온기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게 된다. 어린 시절 무심코 지나쳤던 이 이야기가, 지금 다시 떠올리니 감회가 새롭다. 아이들이 바로 이 나그네와 같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외투로 마음을 여미고 있다. 마음을 더 많이 여민 아이는 그만큼 바람을 많이 맞은 것이다. 본인의 집에서, 친구들에게, 다른 어른들에게 바람을 많이 맞은 아이는 외투를 열기보다 더 여민다. 춥기 때문이다. 외투를 여민 아이는 쉽게 속내를 드러내놓지 않는다. 그저 외투를 여민 채로 거북이처럼 눈만 뻐끔거릴 뿐이다. 

  보통 이런 아이들이 학교에서는 가장 골치가 아픈 아이들이다. 아이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킨다. 옆에 있는 다른 친구를 건드리거나, 수업 시간이고 뭐고 없이 돌아다니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떠들기도 한다. 이 정도면 양반일 텐데, 다른 아이를 때리거나 욕을 하기도 한다.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화를 내기도 한다. 자신만의 외투에 깊이 싸여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늘도 그런 아이가 있었다. 오늘은 기분이 묘한 날이었다. 방학 전 마지막 안전한 생활 수업이었기에 기쁘고 홀가분한 마음이 드는 한편, 아이들과 헤어진다는 이별의 섭섭함도 들었다. 아이들의 이름도 다 모르지만 그새 정이 많이 들었나 싶었다. 이렇게 붕 뜨는 날이었다. 마지막이 좋으면 모두 좋다는 단순한 사실을 아이들은 모른다. 아이들은 꼭 마지막에도 한결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 (생각해 보면 그게 더 솔직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늘 솔직하다는 가면을 쓰고 아무렇게나 행동한다면 모두 기분이 상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마지막 수업, 마지막 반에서 일이 터졌다. 수업이 다 끝나가는 시간 5분여를 남겼을까? 아이가 계속 눈에 걸린다.

  아이는 계속 옆으로 돌아앉아 옆 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수업 시간 내내 주의를 주어도 계속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어차피 아이들은 계속 같은 행동을 하기에 주의만 주고 말았지만 이러다가는 옆 친구도, 자신도 수업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한마디 해야겠다 싶어 아이를 불렀다. 아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내가 왜 불렀을 것 같아? 아이의 대답이 가관이다.

  몰라요.

  모르는 척하는 아이다. 보통은 이럴 때 몇 번 더 물으면 대답이 나올 법도 한데, 아이는 계속 '몰라요'다. 정말 모르진 않을 텐데, 눈을 피하며 거짓말을 친다.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나는 아이가 점점 미워진다. 쉬운 일을 힘들게 만드는 아이가 밉다. 잘못한 일을 인정하고 앞으로 안 그러겠다고 하면 그냥 들여보내줄 일이었는데, 아이는 자꾸 감정을 개입시키려 한다.

  그럼 고민해 봐, 알 때까지.

  아이를 세워두고, 화면을 띄워준다. 다른 아이들에게는 화면에 있는 내용을 읽으라고 했다. 아이들은 곧잘 읽었다. 나는 다시 아이에게 묻는다.

  알아?

  몰라요.

  그럼 더 고민해 봐.

  수업이 끝났다.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하고 아이를 복도로 불렀다. 5분여의 대치 동안 격앙되었던 나의 감정도 많이 가라앉았다. 나는 더 차분하게 아이에게 물었다.

  너 오늘 하루 종일 뭐 했어?

  떠들었어요.

  그리고?

  엎드려 있었어요.

  그런데 왜 거짓말 쳐?

  아이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아까 내가 왜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거짓말했잖아.

  아이는 표정이 없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겹다는 생각? 얼른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 짜증 난다는 생각? 단 하나 분명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쉽게 끝날 수 있는 일을 왜 어렵게 만들어. 

  아이는 대답이 없다.

  거짓말한 거 맞지?

  응.

  다시 대답해 봐.

  응.

  다시.

  네.

  아이는 몇 차례 실랑이를 한 후에야 입을 벌리고 대답을 한다. 왜 입을 다무는 것일까? 무서워서? 짜증 나서?

  앞으로 그러지 마. 세상에 잘못 안 하는 사람 있어?

  아니요.

  그래 없어. 누구나 잘못을 한다. 대신 세상에는 두 가지 사람이 있어. 잘못했을 때,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사람. 잘못한 것을 숨기려고 애쓰는 사람.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빨리 사과하는 사람이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할지 이야기해 봐.

  앞으로는 잘할게요.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진다.

  울지 마. 왜 울어.

  아이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이에게 차가운 말보다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내가 강하게 말할 때보다 쉽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를 들여보내고 오는 길에 많은 생각이 든다. 아이가 잘못하려고 잘못한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러지 않았을까. 자신도 집중하고 싶은데 집중력이 덜 발달해서 그런 것 아닐까. 자신도 당당하게 잘못을 이야기하고 사과하고 싶은데 그런 용기가 발달하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지 않아서 그런 것 아닐까.

  태양이 바람을 이겼듯, 어쨌든 교사가 아이에게 이기는 방법은 단 하나다. 아이의 마음을 열어 아이 스스로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가르침을 퍼부어도 아이는 외투를 더 여밀 뿐이다. 오늘 아이에게 또 한 가지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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