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저는 맞벌이를 해왔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괜찮았습니다. 퇴근 후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이면 나란히 소파에 앉아 영화를 보았습니다. 하지만 아이 둘이 생기면서 우리의 일상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육아는 생각보다 훨씬 힘들었습니다. 양가 부모님 모두 각자의 사정으로 아이를 봐주실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돌보미 아주머니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월급은 경력이 아직 낮은 아내의 월급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지만,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늘 결핍 같은 것이 자리했습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너무 바빠서 아이들이 외로워하는 건 아닐까?” 그 불안은 늘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 시절의 우리는 늘 지쳐 있었습니다. 서로의 피로와 미안함이 쌓이다 보니 결국 싸움으로 터졌습니다. 저는 직업 특성상 6시에 새벽같이 출근해야 했습니다. 아내는 9시에 출근했지만, 아이들을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돌보미 아주머니에게 인수인계를 하는 일까지 도맡았습니다. 퇴근도 아내가 더 빨랐기에 저녁시간과 아이들 재우는 일까지 모두 아내의 몫이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젊었습니다. 아니, 철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힘들다고 말할 때마다 저는 “나도 힘들어”라는 말로 되받았습니다. 서로의 고생을 이해하기보다, 각자의 고단함만 내세웠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감정은 조금씩 멀어져 갔습니다.
그 시절에는 돈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습니다. 돌보미 아주머니의 월급, 아이들 교육비, 식비, 생활비… 숨만 쉬어도 돈이 모자랐습니다. 맞벌이를 하고 있었지만 통장은 늘 마이너스였습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리가 가장 잘못했던 점은 서로의 통장을 따로 관리했던 것이었습니다.
아내는 자신의 통장을, 저는 제 통장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상한 감정이 생겼습니다. 상대방이 돈을 쓰면 괜히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혼은 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여전히 결합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우리는 결심했습니다. “이제 통장을 합치자.”
그날 이후로 저축 통장은 제가 관리하고, 아내는 생활비를 맡았습니다. 정해진 금액 안에서 생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이번 달엔 왜 이렇게 많이 썼어?”, “당신은 왜 이렇게 쪼개서 써야 한다고 생각해?” 이야기는 늘 감정 싸움으로 이어졌습니다.
맞벌이라는 말은 겉으로 보면 여유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수입은 많지만 돈은 모이지 않고, 시간은 바쁘고 마음은 늘 지쳐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통장을 다시 나눠보기도 했고, 역할을 바꿔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자랐고, 우리 부부도 조금은 성숙해졌습니다.
이제 돌이켜보면, 그 모든 시간은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었습니다. 경제 관념이 우선 비슷해야 합니다. 서로 공통된 목표가 있어야 하고, 소비도 서로 이해 가능한 범위에서 되어야 합니다. 10년이라는 결혼 생활이 지나고 이제 조금 맞춰지고 소비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고 소비에 대한 관념이 비슷해지면서 이제 돈으로 싸우는 일은 많이 줄었습니다.
결혼은 사랑의 완성이 아니라 상대방에 대한 이해의 과정입니다. 그 시절의 싸움도, 눈물도, 결국 우리를 지금의 자리까지 데려다준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