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발자취와 풍광에 매료되다
필자가 속한 기초자치구 주도의 한 단체에서 전라남도 순천시 방문 계획이 있어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니 선암사 탐방도 포함되어 있어 다른 일정을 던져버리고 참가하기로 했다. 주민참여 사업 일환의 행정청의 일정이라 관련된 지역이나 행사 참관이 주목적이고 주변 관광은 남은 시간에 잠깐 하는 것이라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건 뜻밖의 일정이다. 사실 순천은 선암사만이 아니라도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우선 세계적 명성을 가진 순천만 습지가 있고 우리나라 제1호 국가 정원이 있는가 하면, 선암사에 더해 남도 명찰로 유명세를 가지고 있는 송광사도 있는 곳이다. 그뿐인가 이곳은 인근의 풍부한 바다 산물로 먹거리도 풍부한 곳이라 기회를 만들어서라도 방문하고 싶었던 곳이다.
그런데 아쉬움을 만난다. 조류 인푸렌쟈 관계로 순천만 습지를 볼 수 없게 된 것이다. 사실 선암사와 함께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특히 갈대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는 가을 여행은 기대했던 터다. 그런 사정인데 일기조차 좋지 않아 국가 정원도 비닐로 가린 관람차 안에서 주마간산(走馬看山) 식 관람일 수밖에 없어 더욱 아쉬웠다. 이런 아쉬움이 있는 만큼 선암사의 방문은 필수다. 여전히 눈과 비가 다투듯이 내리는 고약한 일기의 연속이었지만 누구도 선암사 행을 주저하지 않으니 함께 한 일행들도 필자의 마음과 같은가 보다.
먼저 순천이라는 도시를 이해해 본다. 순천은 인근의 여수와 함께 우리 현대사에 아픈 역사의 기록을 가진 도시다. 이른바 여수·순천 10·19 사건의 주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해방정국의 소용돌이가 정점으로 달리던 1948년 9월 좌우익 간의 대립이 무력 충돌로 이어진 사건으로 대립하던 군인과 경찰은 물론 무고한 시민들 다수가 희생된 이 역사는 그 빌미가 된 제주 4·3과 함께 현재에 이르도록 그 비극적 여운이 가시지 않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을 숙연케 한다.
선암사는 소백산맥의 남쪽 마지막 봉우리인 풍광 좋은 조계산에 위치한다. 이 산은 서쪽에 남도의 명찰이라 일컫는 송광사가 있고 동쪽에는 역시 명찰인 선암사가 있으니 과연 명산인가보다. 선암사는 건물의 규모나 지명도에서 송광사와 비교가 된다고 하지만 사찰이 가진 품격은 송광사에 못지않은 명찰이다. 속인들이야 규모나 명성으로 평가를 두나 선인(仙人)들은 아마 그런 비교에 의미를 두지 않을게다. 사실 순천을 두고 사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먼저 송광사를 떠올리는데 이곳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찰의 규모를 제외하면 이곳 선암사가 자리한 공간과 그 접근로 등 탐방객이 감흥을 느끼게 하는 요소는 더 많은 곳이라 한다. 자화자찬식 해설을 늘어놓는 해설자를 편견을 가진다고 핀잔을 할 수가 없다. 뭐라 잘라 말하기는 어렵지만 믿음이 들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는 경로와 계속하여 만나게 되는 풍광들, 그것은 자연과 인공의 조화로운 구성에 계절이 가져다 놓은 현상이 어우러져 만들어진 경이로운 작품인 것은 이의가 없어 그의 설명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다. 단풍 시절도 지난 스산한 시간이지만 그 길은 그런 시간에서 가지는 그곳만의 색감과 분위기로 방문객들에게 감동을 준다. 해설사의 흥분 섞인 설명도 있지만 그럴 만큼 주변 경관과 그에 어울리듯 신비한 적막감조차 깃든 선암사 가는 길은 감상에 빠지기에 충분하다. 비가 오다가 진눈깨비가 되어 흩날리고 그러다가 잠깐잠깐 햇빛도 비치다가 다시 안개비로 바뀌는 심술궂은 일기는 오히려 신비감으로 다가와 또 다른 감상을 부추긴다. 먼 옛날 첫사랑과 함께 걸었던 그 소백산 산길이 불현듯이 떠오르는 것은 이 길이 그때 그 길과 분위기가 흡사하기도 하지만 현실이 주는 감상들로 자기도 모르게 옛날 그 시간으로 가버렸는가 보다.
사찰명이 선암사(仙巖寺)인데서 짐작은 되지만 ‘선(仙)’ 자를 사용하는 시설물들이 입구에서부터 보이고 그것은 산길을 걸으면서 감상에 젖은 방문객들의 심금을 두드린다. 첫 번째 홍교(虹橋)를 건너 두 번째 홍교인 승선교(昇仙橋)를 만나는 것이 그 첫 신호다. 단아한 모습으로 선암사 본전으로 가는 길과 연결된 이 다리는 누군가를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으로 묘한 감흥에 빠지게 한다. 곧바로 선암사 본전(本殿)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도 굳이 좌측의 계곡을 건너는 다리를 놓았고 이 다리를 건너면 본전 가는 길 방향과 나란히 달리는 길이 나온다. 100여 보를 지나 만나는 승선교를 건너게 하려는 것이다. 부처님 뵙기 전에 선인(仙人)을 만나라는 메시지인가? 그렇게 승선교를 지나니 선인 내려오심이 약속된 장소 곧 강선루(降仙樓)에 다다른다. 두 번째 신호다. 속세를 떠나 선계(仙界)로의 진입인가!
하늘이 높은 것은 알지만
그곳에 오를 수 있는
누구의 마중이 기대되어
우리는 선암사에 간다.
선암사는 천태종단 소속 사찰이라고 한다. 조계종단 측은 사찰의 유래를 따지면서 자기 종단에 속한다고 연고를 주장하고 있으나 그것은 ‘그들의 주장’일 뿐이라며 천태종단 측은 그들의 뿌리로서 선암사는 상징성을 가진다며 해설사는 침을 튀긴다. 사찰과 이해관계가 없는 우리로서는 어느 종단에 속하는가는 관심이 없으나 공간의 형성 시초에서 현재에 이르도록 지켜온 측이 그곳을 자존(自存)의 터로 삼는 것은 상정(常情)이니 방문객이야 현재를 지키는 측을 존중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 우리는 공감의 표시로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로 든다. 그런데 입구에 불교사찰이면 의례 설치되어있는 사천왕(四天王)문이 없다. 그러니까 외부로부터 사찰의 신성(神性)을 지킨다는 상징이 없는 것이다. 해설사는 그 이유를 선암사 본전 넘어 우뚝 선 산봉우리를 ‘장군봉’이라 일러주면서 그 힘찬 기세가 사찰을 지키고 보호하므로 따로 사천왕문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연유야 어떻든 우리는 장군봉을 바라보는 것으로 다시 옷깃을 여민다.
선암사는 그 유명세에 비하면 사찰의 규모도 적고 소재한 건물들도 다른 사찰에 비교될만한 할 특징을 찾기가 어렵다. 그러함에도 인상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여러 영역으로 나누어진 건물들이 마치 시골 마을과 같은 풍경을 연상케 한다. 건물들의 사이 공간은 마치 시골 동네 골목길 같고 그 골목을 들어가니 다시 안길과 같은 좁은 골목들이 나온다. 아기자기하기도 하고 그래서 다정한 구성은 어릴 때 추억이 서린 마을에 온 듯 착각조차 들게 한다. 불교사찰에서 중요한 것은 건물의 규모나 화려함이 아니고 사찰이라는 성격에 얼마나 가까운 구조인가로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선암사는 부족함이 없다. 채움보다는 비움이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닌가! 그런데 참 아쉬운 현상을 본다. 사찰 여기저기에 매장 안내 등 상업적 표지들이 보이고 심지어는 본전 가까이서도 보인다. 분명 목적이 있고 그럴만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사찰이라는 공간인 점에서 공감을 하기기 어렵다. 사찰도 경제가 요구되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래도 좀 심한 것 같다. 도움이 될 만한 어떤 일도 해 줄 수 없는 주제에 별 간섭을 한다고 하면 할 말은 없지만,
선암사의 건립 연원(淵源)을 두고 이견이 있다는 안내를 듣는다. 신라의 산물이라는 주장이 있는데 그러나 이곳은 분명한 백제 영토이고 그 창건역사도 원삼국시대인 만큼 백제의 사찰이라는 주장이 강하고 해설사도 그런 취지로 안내를 한다. 그런데 기록을 보면 신라 진흥왕 3년(542년) 신라사람 아도(阿道)가 비로암(毘盧庵)을 창건하였고, 통일신라 때인 헌강왕 5년(87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신암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선암사의 시초는 비로암이고 후일 확장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그런 한편 다른 기록도 있다.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세운 비로암을 통일신라 경왕 원년(861년) 도선(道詵)이 재건한 것이라 되어 있다. 그렇다면 아도화상이 누군가를 알 필요가 있는데, 기록을 보면 신라인으로 어머니가 고구려라는 설과 서축(西竺, 인도) 또는 오(吳)나라 사람이라는 설도 있다. 즉 백제 사람이라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백제와는 연관이 없다는 주장이 아니고 역사의 기록이 그렇다는 것이다. 다만 선암사와 관련하여 확실한 것은 고려 선종 때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에 의해 중창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영정과 또한 그의 것이라는 대각암 부도(浮圖)가 선암사에 전해 오고 있는 것으로 증명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기록이나 설은 오늘의 우리에게 별 의미가 없다. 선암사는 현재의 있는 그대로도 우리에게 선조들의 얼이 어린 불교 사찰이자 중요한 사적이다.
선암사 관련 다른 글을 보니 이곳은 철 따라 피고 지는 꽃들의 향연을 볼 수 있는 명소라고 한다. 겨울 추위도 겁내지 않고 피는 동백꽃, 봄이 시작되기도 전에 피는 매화를 필두로 철쭉, 산수유에다 수국과 물푸레나무꽃 등이 계절을 이어 꽃동산을 이룬다고 하는데 그 광경을 볼 수 없는 시간에 온 게 여간 아쉽지 않다. 특히 이른 봄이 되면 본전 우측에서 뒷산으로 이어지는 공간을 화려한 빛으로 수놓는다는 청 매회는 보는 이를 환상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고 한다. 그 신비로운 아름다움은 시인 묵객에 더해 화가 그리고 사진작가 등 자연의 심미를 그리려는 모든 이에게 소재를 제공한다니 글쓰기가 취미인 필자를 더욱 유감에 빠지게 한다. 내년 봄소식이 전해질 무렵 방문하리라는 불완전 하지만 약속을 두는 것으로 안타까움을 달랜다. 그 약속 꼭 지켜야지, 순천만 습지도 보아야 하니까!(♣2017.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