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은 나에게 작별을 연습하게 한 해였다. 무언가를 잃고 난 뒤 뒤늦게 건네는 인사가 아니라 아직 손에 남아 있는 것들과 미리 거리를 두는 연습에 가까웠다. 끝내야 해서가 아니라 언젠가는 흘려보내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 일찍 받아들이는 시간이었다.
나는 2025년의 시작을 수술로 맞이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절이 몇 번 바뀌는 동안 계속 병원에 다녔다. 병원은 생각보다 빠르게 일상이 되었다. 어느새 동선이 익숙해졌고, 접수창구 앞에서 기다리는 시간도 특별하지 않게 느껴졌다. 몸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그 낯섦마저 생활의 일부가 되었다. 병의 이름은 복잡하고 길다. 설명하려 들수록 말은 자주 막혔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그 이름을 오래 붙들지 않으려 한다. 다만 분명한 것은 나는 2025년을 ‘아픈 사람’으로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 전부가 되지는 않았지만 하루를 구성하는 중요한 조건이 되었다.
체력에는 자신이 있었다. 건강할 때의 나는 웬만한 피로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는 편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또한 견뎌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항암은 내가 알고 있던 ‘버팀’과는 다른 종류의 일이었다. 체력은 숫자처럼 줄어들었고 마음은 설명 없이 가라앉았다. 어떤 날들은 이유 없이 우울했고 어떤 날들은 괜히 모든 것이 멀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결코 들지 않았다.
아직 나에게 맞는 항암제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나를 움직이게 했다. 찾지 못했다는 것은 실패라기보다 과정일 수도 있으니까. 나는 계속해서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고 새로운 선택지를 상상했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거창한 의지가 아니라 오늘 할 수 있는 다음 한 가지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아파보니 모든 것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야 한다면 내가 그 자리에 있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생각은 스스로를 대단하게 느끼게 하지도 슬프게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그 판단은 나를 조금 덜 흔들리게 했고 감정을 과장하지 않게 만들어주었다.
나는 다시 믿음에 가까워졌다. 건강할 때는 자주 미뤄두었던 종교가 아프고 나서야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기도는 무언가를 바꾸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 하루를 정리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오늘이 무사히 지나가기를 그리고 내일을 너무 앞당겨 살지 않게 해달라고. 그 정도의 바람이면 충분했다.
몸이 느려지자 시선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의미 없이 지나쳤던 장면들이 오래 머물렀다. 병실 창으로 들어오는 오후의 빛 보호자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물 컵, 아무 말 없이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의 존재... 아프지 않았다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순간들이었다. 그제야 삶은 늘 크고 분명한 사건들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25년과 작별하며 나는 웃는 연습을 한다. 괜찮아서 웃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괜찮지 않아도 하루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는 연습이다. 이 해에 모든 것이 끝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완전히 새로 시작된 것도 아니다. 다만 나는 이 시간을 통과하며 이전과는 조금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2026년이 다가오고 있다.
그 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나는 여전히 방법을 찾고 있을 것이고, 여전히 하루씩 시간을 건너고 있을 것이다. 웃으며 작별하는 법을 배웠다는 사실은 다음 시간을 맞이하는 데 조용한 힘이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별은 끝이 아니라 조금 늦은 속도로 다음 장으로 이동하는 일에 더 가까운 것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