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라면 1년에 한번 씩 건강검진을 받는다. 반드시 받아야 하는 검사이긴 하지만 아침 일찍 시간 맞춰 병원에 가는 일은 매우 귀찮은 일이기도 하다. 필수 검사와 추가 검사 등을 둘러보며 가장 단출하게 받을 수 있는 항목으로 예약을 했다. 올해는 부인과 검사를 예약했다. 개인적으로 가는 산부인과의 의사 선생님께서 정년퇴직을 하셔서 난감한 상황이 된지 1년 3개월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찾은 날, 나는 인생의 다른 챕터로 들어가는 문 앞에 서게 되었다. 산부인과 검사실 의자는 언제나 앉기 싫은 모양새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보며 잠시 말을 멈췄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이건… 큰 병원에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말은 공손했고, 표정은 과장되지 않았지만, 그 한 문장은 생각보다 묵직했다. 큰 병원. 그 말은 곧 ‘여기서는 감당이 안 된다’는 뜻처럼 들렸고, 동시에 ‘당신의 일상이 여기서 멈출 수도 있다’는 예고처럼 느껴졌다.
병원을 나와 걷는데, 길은 그대로였고 사람들도 그대로였는데 나만 약간 다른 차원으로 밀려난 기분이 들었다. 세상은 여전히 점심 메뉴를 고민하고, 택배는 도착하고, 신호등은 바뀌는데, 내 머릿속에는 갑자기 ‘만약에’라는 단어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이상한 건 그 와중에도 배는 고팠고, 웃긴 영상에는 웃음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인생은 이렇게 무심하게 병과 공존한다.
상급병원 예약은 생각보다 빨리 잡혔다. 그 빠름이 오히려 불안했다.
“아무래도 악성종양 가능성이 있습니다.”
의사의 말은 차분했고,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는데도 그 순간 머릿속은 하얘졌다. 악성이라는 단어는 너무 많은 이미지를 동시에 불러왔다. 뉴스에서 보던 장면들, 영화 속 병실, 누군가의 투병기. 그런데 그 모든 서사의 주어가 갑자기 ‘나’로 바뀌었다.
수술 이야기가 나왔고, 일정이 오갔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했지만, 사실 그날의 나는 회의실에 앉아 있는 사람처럼 현실감이 없었다.
‘아, 내가 지금 암 환자가 되는 절차를 밟고 있구나.’
이상하게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죽음이 아니라 ‘계획’이었다. 예정되어 있던 일들, 미뤄야 할 약속들, 혹은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된 것들. 암은 삶을 멈추게 하기보다, 삶을 재 정렬하게 만들었다.
병원을 나오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길은 분명 안개 속이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막힌 길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적어도 나는 지금, 그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는... 이 투병기는 비극의 기록이기보다는, 방향을 잃은 채로도 계속 걷고 있는 한 사람의 관찰기다.
웃음이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지만, 웃음이 나오는 날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절망은 컸지만, 동시에 이상하리만치 또렷해진 것들도 있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붙잡고 싶은지, 그리고 생각보다 나는 꽤 오래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
암이라는 단어 한가운데에서 나는 여전히 모색 중이다. 암중모색.
어둠 속에서도 길을 찾으려는, 꽤 인간적인 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