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글, 나의 집이 되다.

머물고 싶은 마음이 모여 집이 되다

by 김현정

나는 오랫동안 집을 찾았다.

누군가는 주소가 적힌 공간을 집이라 부르지만, 내게 집은 늘 불안정했다. 떠나는 발걸음마다, 새로운 풍경마다, 집의 모양은 달라졌다. 머물렀던 자리마다 흔적은 남았지만, 그곳은 끝내 내 집이 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종이 위에 흘려 쓴 문장이 나를 붙잡아 주고, 흩어진 마음을 한 곳에 모아 준다는 사실을. 단어 하나가 벽이 되고, 문장 하나가 기둥이 되어, 나는 글 속에서 나만의 집을 짓고 있었다.


글은 나를 기억하게 했다. 사랑했던 순간도, 이별했던 순간도, 허무했던 날과 기적 같았던 날도 글 속에 머물며 빛을 잃지 않았다. 글은 나의 시간을 기록하며,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해 주었다.


글은 또 나를 연결했다. 내가 던진 한 줄의 고백을 읽고 울어 준 사람, 내 서툰 표현에 고개를 끄덕여 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마음이 내 문장에 닿는 순간,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글은 내게 집이자 다리였다.


나는 아직 작가라 불리기엔 서툴다. 하지만 글을 쓰는 동안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다. 이 문장이 나의 지붕이 되고, 이 단어들이 나의 창이 되어 바람을 불러온다는 것을. 글을 쓰는 일은 곧 집을 짓는 일이고, 그 집은 내가 세상에 남길 가장 따뜻한 흔적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집을 짓는다. 비가 오는 날에는 비를 막아 주고, 햇살 좋은 날에는 빛을 담아낼 수 있는 집. 누군가 이 집에 들러 잠시 숨을 고르고, 자기 마음의 창을 열어볼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은 나의 집이고, 나는 그 집의 평생 거주자다.

그리고 언젠가, 이 집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창이 되고 빛이 되기를 꿈꾼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남자와 여자로 만나, 부부가 되어 가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