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란 일상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경험을 하기 위해 내가 주로 살고 있는 곳이 아닌 또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는 행위이다. 쉽게 접하기 힘든 경험이란 멋지고 아름다운 그런 경험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매우 위험하고 곤란한 상황을 맞이하기도 한다. 특히 여행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그 빈도는 증가하기 마련이다.
나 역시 한국을 떠나 588일 동안 낯선 공간에서 살아오면서 수많은 일을 경험했지만 가장 위험하고 아찔할 뻔한 순간이 있었다. 바로 우유니 소금사막을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아마도 세계일주를 꿈꾸는 혹은 남미 여행을 꿈꾸는 대부분의 사람이 반드시 가봐야 할 여행지 1순위로 뽑는 우유니 소금사막. 인류가 생겨나기도 전 수많은 지각활동으로 바다였던 곳이 안데스 산맥을 이루고 바닷물이 증발하고 남은 하얀 결정체 소금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장관을 만들어 내는 곳이다. 해발고도 2,700미터의 백두산과 해발 1,900미터의 한라산이 무색하도록 해발 3,600미터의 고산지대인 우유니 소금사막은 정말 수많은 볼거리가 있기도 하지만 그냥 하얗게 펼쳐져 원근법 자체를 부정하는 사진을 다수 생산해내는 곳이기도 하다.
12월 31일 그해의 마지막과 새해의 첫날을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보내기 위해 투어에 나섰다. 수많은 여행자들이 모인 소금 호텔에서 떠들썩하게 새해 카운트다운을 마치고 경이로운 새해 일출을 맞이하고 난 투어의 마지막 날이었다.
투어의 최종 목적지는 바로 칠레 아타카마 사막과 맞닿아 있는 국경지역이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도중에 수많은 간헐천들을 목전에서 볼 수 있는 곳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여러 개의 간헐천들이 수증기를 뿜어내는 곳에서 잠깐 내려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을 때였다. 사고는 항상 찰나의 방심에서 비롯된다.
진흙이 보글보글 끊고 있고 조금 떨어져 있는 단단한 땅으로 한 발 한 발 내딛으면 촬영을 하고 있었던 순간 나의 다리가 땅속으로 꺼지는 것을 느끼며 순식간에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고통을 맛보게 되었다. 진흙이라 빠져나오려 해도 계속해서 들어가려는 다리를 기어가며 겨우 땅 위로 올렸지만 이미 다리는 진흙범벅이었고 타오르는 것 같은 고통이 밀려왔다.
수증기가 뿜어 나오는 곳에서도 조금 떨어진 곳을 걸었는데 단단한 땅인 줄 알고 내디뎠던 땅이 겉으로만 그렇고 안쪽은 진흙처럼 굳어지지 않은 땅이었던 것이었다.
가이드를 포함한 투어 일행들이 다가왔고 부랴부랴 생수로 씻어냈지만 황량한 사막 한가운데 화장실이 있을 리가. 서둘러 가이드는 화장실이 있는 다음 목적지 노상 온천을 향해 차를 돌렸다.
우유니 소금사막은 3,600미터의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사막과는 달리 패딩을 입어야 할 정도로 매우 추운 곳이었지만 다리에 남아있는 열기에 젖어있는 수건이 금세 뜨근해짐을 느껴야 했다.
한참을 달려서 겨우 도착하게 된 노상 온천. 그리고 그곳에서 진흙을 마저 씻어내고 따뜻한 온천 속에서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온천 속에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한 외국인 여성이 나에게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 물어보았다. 다친 다리를 보여주며 아까 간헐천에서 화상을 입었다고 알려주니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잠시 기다려보란다. 그러더니 자신의 일행들에게 돌아가 심각한 표정으로 얘기를 하더니 그 여성의 일행인 한 남성이 나에게 다가와 이렇게 얘기를 꺼냈다.
내가 의사인데 혹시 내가 도움을 줄 것이 있을까?"
라고 얘기하며 화상연고가 있는데 잠시 후 자신을 찾아오면 화상연고를 꺼내서 주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끓고 있는 진흙에 화상을 입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지만 그렇게 사막에서 화상을 입고 우연히 의사를 만나게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그야말로 기가 막힌 인연이자 나로서는 행운에 가까운 천사가 나타난 느낌이 들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사한 마음을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하고 그저 고맙다는 인사로 대신하고 그 남성은 다시 일행에게 돌아가 온천을 즐겼고 그로부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수많은 관광객들 사이에서 그 의사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기에 나 역시 투어차량을 타고 마지막 종착지 볼리비아와 칠레의 국경으로 향했다.
그렇게 우유니 소금사막 투어는 끝이 났고 황당하게도 끔찍한 고통의 화상 상처만 남긴 채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칠레는 육로 국경이동 간 짐 검사가 비교적 철저하게 이루어지는 편인데 아마도 수많은 여행자들이 오고 가는 곳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X-ray 검사를 위해 짐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있을 때 나의 일행이 나에게 화상연고와 거즈를 건네주며 아까 노상 온천에서 만난 그 의사가 나에게 전해주라며 가져다주었다고 하는 것이다.
우유니 사막 투어 차량의 모습. 저렇게 차위에 일행들의 짐을 다 올려서 패킹을 해놓는다.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울컥한 마음이 찌릿하고 전달되었다. 생전 모르는 어떤 외국인 여성을 위해 일부러 일행을 찾아와 전달해주었다는 그 마음이 느껴졌다. 무엇보다 일행들의 모든 짐들을 투어 차량 위에 올려놓는데 일부러 그 짐 중에서 본인의 짐을 찾아 내리고 차곡차곡 쌓은 배낭 속 짐들을 뒤져 찾아내었을 그 작은 수고가 생각보다 만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의사는 수년이 흐른 지금 그 일을 다 잊어버렸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감사한 마음에 울컥하며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화상 사건 이후 며칠이 지나고 나의 모습
여행을 다니면서 정말 수많은 일을 겪었지만 사막 한가운데에서 기적처럼 나타난 의사분에 대한 기억은 영원히 잊기 힘든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