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니 소금사막 이야기가 나온 김에 에피소드 하나를 더하자면 흔히 우유니 소금 사막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물이 찰랑찰랑 차있는 곳에 하늘이 거울처럼 반사되어 마치 천국이라면 이런 풍경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멋진 곳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는 안타깝게도 우기가 막 시작되던 시기라 그런 천상의 절경을 볼 수는 없었다. 물론 굳이 맞춘다면 맞출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어차피 볼리비아의 체류비용은 그리 많이 들지 않는 편이고 이미 한 곳에 한 달 이상 머물며 느긋하게 다니는 습관이 되어 있던 사람이라 그 정도쯤은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그렇게 일정을 보내기엔 멕시코 포함 중남미에 머문 것도 벌써 5개월 차.
5개월이나 머문 남미에서 아직 남미의 반도 못 돌아봤다고 하면 혹자는 이런 말을 남길 지도 모른다.
도대체 지금까지 뭐하고 다녔어?"
실제로 우유니 소금 사막 투어가 끝나고 도착한 칠레 아타카마 사막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한국인 여행자는 페루 와라스에서 만났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와라스를 떠나던 날 그분은 와라스에 도착했고 약 한 달 반 만에 다시 만났는데 이미 칠레 -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까지 한 바퀴 돌고 왔다며 지금까지 뭐하느라 이제야 내려왔냐며 놀라워했다. 아... 지금 저 위쪽에 나보다 느린 두 분이 내려오고 있는데 말이다.
여하튼 그렇게 최선을 다해 천천히 내려왔지만 더 이상 남미에 머무는 건 좀 그렇다는 판단하에 대망의 우유니 소금사막 입성일을 한해의 마지막 날인 12월 31일로 잡았다. 뭔가 특별한 우유니 소금사막이니 그만큼 특별한 날을 그곳에서 기념하고 싶었달까. 아 물론 끼워 맞추기라는 것 인정한다.
페루 마추픽추에서부터 함께 동행한 한국인 동생과 함께 불편하고 추운 밤기차를 타고 도착한 우유니 소금사막으로 떠나는 투어 여행사가 있는 우유니 마을에서 우유니 사막 2박 3일 투어를 예약하고 그렇게 12월 31일 대망의 우유니로 출발할 수 있었다.
2박 3일 투어는 투어 가이드 포함 총 7명의 인원으로 한 팀이 꾸려졌다. 나와 한국인 동생 그리고 브라질 커플, 스위스인 커플이었다. 비록 서로 말이 잘 통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곧 멋진 곳으로 투어를 떠난다는 설렘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한 마음이 충만한 상태였기 때문에 조금 어색했지만 서로를 밝은 얼굴로 바라보며 눈인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지프차에 2박 3일 동안 함께할 일행들의 짐을 싣고 끝도 없이 펼쳐진 사막길로 나섰다. 너무나 황량하고 아무것도 없는 곳을 수시간씩 이동하며 그렇게 눈부시도록 하얗게 펼쳐진 소금사막의 중심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작 하늘의 몇 점 구름만이 내리쬐는 태양을 가려줄 뿐 가림막 하나 없이 하얀 사막에 내리쬐어 반사된 빛은 가만히 있어도 따가울 정도로 눈이 부셨다.
가이드는 이곳저곳 더 멋진 뷰포인트를 안내해주기 위해 동서남북조차 잘 구분이 안 되는 사막의 이곳저곳을 마치 익숙한 동네 길 찾듯 내비게이션도 없이 그렇게 운전하며 이동해주었고 중간중간 환상의 요리 솜씨를 발휘해 맛있는 음식을 제공해주었다. 그렇게 멋진 풍경을 카메라에 가득 담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새해를 맞이할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가이드는 샴페인과 함께 한해의 마지막을 기념하는 환상의 만찬을 준비해주었고 우리 투어팀 말고도 수많은 투어팀이 숙소에 마련되어있는 식당의 테이블을 가득 메우고 시끌벅적하게 저녁을 즐길 수 있었다.
식사 후 늦은 저녁 배정된 방에서 짐을 풀고 있을 때쯤 밖에서 왁자지껄 들리는 소리에 혹시나 싶어 우유니 시내에서 샀던 맥주를 들고 식당으로 나가보았다. 열명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식탁에 둘러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에 앉은 사람에게 나도 여기 앉아도 되냐고 물어보니 흔쾌히 앉으라며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그냥 허전하게 이렇게 마무리하나 싶어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잘됐다 싶었다.
그곳에 모인 여행자들은 마침 카드놀이를 하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룰은 간단했다. 트럼프 2~10, J, Q, K, A 카드마다 룰을 정해놓고 돌아가며 카드를 뽑으면 그 룰대로 해야 하는 방식이었다. 예를 들어 숫자 5를 뽑았는데 숫자 5에 해당하는 룰이 맥주 한 모금 마시기라면 파도타기로 맥주 마신다거나 숫자 8을 뽑았는데 그 룰이 어떤 단어를 지정하면 한 바퀴 돌면서 그 단어를 얘기하다거나.. Q를 뽑았을 때 여자만 마시는 등… 그런 류의 게임이었다. 아무래도 국적도 다양하고 문화도 다양한 곳인 데다 사람도 많아서 그런지 단순한 게임인데도 매우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술을 마시는 벌칙이 걸려도 강제로 다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주량껏 마시는 것이기 때문에 부담되지도 않고 서로 즐기면서 할 수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은 지속되었다.
한쪽에선 계속해서 누군가 틀어놓은 음악이 울려 퍼지고 우리는 게임에 빠져들어서 놀고 있다 보니 어느새 12시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때 내 옆에 앉아 있던 영국 친구가 모두에게 이제 12시가 다 되었다며 준비해야 한다고 소리쳤다. 모두들 어디서 준비해왔는지 샴페인을 터트릴 준비를 하고 12시를 향하는 카운트 다운에 돌입했다. 당연히 남미니까 스페인어로.
미리 준비한 것인지 샴페인을 잔뜩 흔들어 터트리고 서로를 끌어안으며 우유니에서 맞이하는 새해를 기념했다.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울컥하고 터져 나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렇게 정신줄 놓은 듯 요란한 새해를 맞이하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이제는 게임을 하는 대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주위에 앉은 사람들에게 우리나라 나이에 대해 알려주었다.
"오늘 모든 한국인들은 한 살을 먹었어. 생일날 한 살을 먹는 게 아니라 한국인들은 새해 1월 1일 날 나이를 한 살씩 더 먹는 거야"
우리에겐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이들은 아주 난리가 났다. 옆 테이블까지 소환해서 한국인들은 매년 1월 1일 나이를 먹는다는 얘기를 하며 놀라워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온갖 질문도 쏟아졌다.
그럼 정부에서 매년 그렇게 발표하는 거야? 한국인들은 그럼 생일엔 뭐해? 생일날 초는 몇 개를 꼽는 거야? 등등.... 아니 이런 게 궁금할 일이야?
이어서 우리나라는 엄마 배속에 있을 때부터 개월 수를 세서 태어나자마자 1살이라는 말에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한국인들은 옛날부터 배속의 태아도 한 생명이라고 쳤기 때문에 그때부터 나이를 세어서 태어나자마자 1살이라고 해"
"그럼 만약에 12월 31일에 태어났어. 그럼 아까 1월 1일이 되면 한 살씩 먹는다고 했으니 그 아이는 1월 1일이 되면 2살이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하니 또 난리가 났다. 한 살을 느낄 새도 없이 두 살이 되었다며 그럼 너무 불쌍하다고 난리가 났다.
마지막 3 연타.
방금 나는 30살이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3 연타로 충격받은 얼굴. 한국인들이 좀 동안이긴 하지. 여행을 다니며 종종 20대 초반으로 다들 알아보는 경향이 있어서 이런 반응은 조금 예상하긴 했었다.
여행을 다니며 많은 외국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국인의 나이에 대해 말해주면 열이면 열 백이면 백 깜짝 놀라 하기 마련이다. 일단 너무 동안이라 놀라고 새해에 한 살을 먹는다는 것에 놀라고 태어나자마자 1살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 요즘 들어 만 나이에 대해 전 세계 추세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긴 하고 있는 듯하다. 무엇이 더 좋은 결정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면 머지않아 외국인들과 한국인들의 나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