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가기 전 그곳을 거쳐온 여행자를 콜롬비아의 한국인 숙소(태양 여관)에서 만나 아프리카에 대해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친구는 아프리카에 가면 본인도 모르게 눈이 머리 뒤에도 생기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 호언장담을 했다.
여행을 할수록 신기하게도 우리가 한국에서 편하고 안전하게 살던 때*는 모르던 내 안의 원시적 본능이 살아나게 되는데 특히 위험한 지역을 가게 되었을 때 설령 정보가 많지 않은 곳이라 할지라도 본능적으로 이곳은 조금 느낌이 "쎄하다"고 느낀다면 역시나 그곳을 다닐 때는 조심해야 하는 곳이란 얘기를 뒤늦게라도 듣게 되기 마련이었다. 물론 그런 쎄한 곳을 지나치게 된다면 최대한 빠른 속도로 그곳을 빠져나오거나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다녀야 하는 것이 여행자들의 정설이었다.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한국만큼 안전하게 밤거리를 거닐 수 있은 나라는 없다. )
특히 남미의 많은 나라들의 도시 어딘가에서 분명 그런 "쎄함"을 느꼈는데 앞서 말한 먼저 아프리카에 다녀온 그 여행자 친구는 남미의 "쎄함"과는 다른 느낌으로 본능이 살아 숨 쉬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했다.
남아공에 도착하여 별 탈 없이 며칠을 보내고 남아공 케이프타운에서 잠비아 빅토리아 폭포까지 가는 아프리카 트럭킹 투어를 이용하여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하게 여행을 할 수 있었고 그들과 헤어졌을 때 비로소 혼자서 오로지 그 모든 상황을 감내하고 예측하며 다녀야 했다. 잠깐 동안 트럭킹의 멤버로 함께한 한국인 아저씨와 동행했지만 최후에는 혼자가 되었고 탄자니아 다이에스 살람의 대로변을 걸으며 나의 시야가 그렇게 뒤쪽까지 닿을 수 있다는 경험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아마도 다이에스 살람에서 이동을 위해 탄 작은 버스였을 것이다. 여전히 모든 짐을 내 몸 가까이 붙이며 최대한 주변 경계를 하며 태연한 척 팔찌 공장을 돌리고 있었다.
팔찌 공장이라 하면 남미를 여행하며 여행자들에게 끈으로 팔찌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이동하는 무료한 시간 동안 혹은 그냥 하릴없이 멍 때리는 시간에 그렇게 팔찌를 만들며 시간을 보냈는데 제법 만들게 된 팔찌 수도 많았고 오고 가며 관심을 갖는 여행자들에게 1불씩 받으며 판매도 하곤 했다. 나는 주로 주변 경계를 할 때 최대한 태연한 척 전혀 겁먹지 않은 척 보이려고 애를 썼는데 그럴 때 팔찌 공장을 돌리면 조금은 마음이 가라앉고 겉으로도 태연해 보였기 때문에 종종 이 방법을 쓰곤 했다.
당시 만들던 팔찌
내 옆에 앉아있던 남자가 팔찌들을 보더니 특유의 아프리카 영어 억양으로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Where r u from?"
"I'm from Korea."
"Korea?"
나는 어차피 이 사람들은 한국에 대해 잘 모를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에게 한국에 대해 질문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뜻밖의 질문이 돌아왔다.
"Do you know 지성팍?"
응?
지성팍?
내가 아는 그 지성팍?
내가 여행하던 시기는 2011년. 박지성 선수가 맨유에서 대활약을 하던 바로 그때였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 이후 축구에 큰 관심이 없던 나는 박지성 선수가 대단한 선수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는 잘 모르고 있었다. 게다가 내가 물어본 것도 아니고 외국인이 먼저 나에게 지성팍을 아냐고 물어보다니...
예상치도 못한 질문이라 바로 대답을 못한 내가 여자라 축구선수 지성팍을 모를 거라 생각했던 건지 나에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football player.He is from Korea, like you."
라고 한국인인 나에게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알지. 당연히 알지. 근데 너네들이 어떻게 지성팍을 알아?"
"나 완전 축구팬이거든."
그제야 내 눈에 들어온 붉은 악마티셔츠.
아마도 어떤 헌 옷 판매상을 통해 우리나라 붉은 악마티가 그곳 아프리카까지 건너온 것 같았다.
"그거 알아? 너네들이 입고 있는 그 빨간 티셔츠. 바로 한국 축구 응원단 옷이야."
지성팍은 알아도 그 옷의 출처는 몰랐나 보다.
"진짜?"
그 남자는 친구와 박장대소를 하며 이 옷이 한국 축구 응원단 옷이라고 재차 얘기를 나누었다.
비교적 한국에 프랜들리 한 감성을 느낄 수 있어서 대한민국 공식 응원 박수를 알려주었다.
"우리가 2002 월드컵 때, 아! 2002년에 한국에서 월드컵 한 거 알아? 그때 그 옷을 입고 이렇게 응원했어. "
"대~한민국 짝짝짝짝!짝!"
"어! 알아! 들어봤어"
라고 하더니 버스에서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눌한 발음으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어설픈 박수를 치는 게 아닌가!
심지어 난 살짝 민망해서 아주 작은 소리로 알려주었는데 큰 목소리로 아프리카 남자 사람이 외치는 대한민국을 듣게 되니 소위 말로 없던 국뽕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지금 이 순간 지구 반대편 누군가는 "두유노우 손흥민? BTS?"라고 한국인들에게 묻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