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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 Oct 12. 2021

호주 영어는 영어가 아니라고??

영국인 아줌마의 슈퍼 파월!


세계일주를 떠나기 전 본 어느 책에서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많은 방법 중 트럭을 타고 아프리카를 여행할 수 있는 투어가 있다는 것을 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여러 여행자들과도 교류할 수 있고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말에 나의 아프리카 여행은 트럭킹으로 일찌감치 점찍어두고 있었다. 장기 여행자이자 한정된 예산으로 여행을 하는 배낭여행자로서는 조금은 부담스러운 금액이었지만 조금은 위험한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안전하고 편하게 여행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큰 고민 없이 아프리카 트럭 투어를 선택하게 된 것이었다.



총 16명의 여행자와 2명의 가이드. 나를 포함한 한국인 2명, 미국인 2명, 캐나다인 2명, 독일인 2명 그리고 영국인 8명. 이렇게 다국적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사실 처음 투어 일행을 봤을 때는 적지않이 당황했었다. 내가 생각했던 아프리카 여행은 비교적 오지를 여행하는 곳이고 모험심이 넘치는 젊은 사람들의 여행지라고 생각했는데 캐나다인 분은 정말 연세 지극하신 노부부이셨고 영국인 분 역시 약 50대(로 추정되는) 부부였기 때문이다. 또 심지어 딸과 함께 여행 온 부녀지간도 있었다. 정말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구성의 트럭킹 투어팀이었다.


첫날은 서로 잘 알지 못했기에 많이 어색했지만 매일 밤 다 같이 텐트 앞에 모여 앉아 가벼운 술을 곁들이며 수많은 얘기들나누었기 때문에 생각보다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다국적 투어팀답게 모든 대화는 영어로 진행되었고 썩 잘하지는 못했지만 나 역시 호주에서 11개월 동안 갈고닦은 덕에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중에서 영국인 헤더 아주머니는 우리 팀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수다쟁이 아주머니셨다. 유쾌하고 쾌활한 성격 덕에 항상 이야깃거리를 대량 생산해내는 분이셨다. 좋은 말만 하시는 건 아니셨고 말씀이 많은 만큼 불평불만도 즉석에서 툭툭 내뱉으셨지만 이상하게도 헤더 아주머니의 불평이 이어지는 수다는 듣기에 거북한 것이 아니라 뭔가 납득이 가면서 들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 또한 아주머니의 능력인 듯했다.


하루는 나와 헤더 아주머니 그리고 독일인 커플인 미리암 핸드릭 그리고 미국인 로렌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로렌이 나에게 영어를 어디서 배웠는지 물어보았다. 우리나라에서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긴 했지만 사실상 호주에서 11개월 지내면서 영어를 배우게 되었다고 얘기하니 어쩐지 호주 억양이 많이 들리는 것 같다며 이어 덧붙인 말은 꽤나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미국인 특유의 "air quotes(손가락을 들어 올려 허공에 까딱까딱하며 따옴표 그리는 동작)"을 하며 자기 생각에


"Australian English"는 "English"가 아니라 "Australian"


이라는 것 아닌가. 나는 호주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런 황당한 발언에 당황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어버어버거리고 있을 때쯤 우리의 헤더 아주머니 등판.


"그럼 로렌, American English도 사실은 "English"가 아니지. "American"이잖아. 진정한 "English"는 UK만 쓰는 거라고.."


나 대신 그대로 한방 먹여주는 헤더 아주머니. 처음 말을 꺼낸 로렌은 더이상 할 말을 잃고 그대로 K.O패. 로렌이 어떤 의미로 나에게 그런 식으로 말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속에는 백인 미국인 특유의 우월주의도 있었던 것 같고 나의 어설픈 호주식 발음과 영어에 대해 조금은 깔보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이라 생각해서 사실 매우 기분이 언짢았다. 어차피 같은 팀으로 여행하는 사이이고 며칠이 지난 후에는 다시 만날 사이도 아니었기에 더 얼굴 붉히는 이날의 얘기는 그쯤에서 마무리되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물론 지금이야 한류가 전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고 대한민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져 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동양인으로서 받는 차별적 대우나 무시당하는 일은 여전히 남아있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나는 너무나 당황한 채 제대로 된 반박조차 못하고 헤더 아주머니의 사이다 발언에 도움을 받아 그 상황을 넘길 수 있었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난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 그 순간에 저런 임기응변을 발휘하여 반박할 수 있었을까? 무엇보다 내가 당당하게 대처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나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게 우선시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분명 나는 여전히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헤더 아주머니가 그런 나에게 해준 말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전해주고 싶다.


"아델, 너는 지금 충분히 잘해나가고 있어. 너 스스로에 대해 자신감을 가져. 너는 영어도 할 수 있고 너의 모국어인 한국어도 잘할 수 있잖아. 하지만 우리를 봐. 우리는 고작 우리 모국어인 영어만 할 수 있다고. 그에 비하면 넌 정말 열심히 외국어를 공부한 것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야. 너 스스로를 낮추지 않았으면 좋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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