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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 Oct 07. 2021

정글에서 퓨마와 마주친다면

볼리비아 정글 속 퓨마와 보름 살기


2009년 3월생

암컷

이름 :  Sacha(사챠)

퓨마. 캐나다 서부에서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에 분포해 살고 있는 고양잇과 동물. 오늘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닌 동물이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야생동물 퓨마.





세계일주 특히 남미를 오랜 시간 동안 여행하며 정말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했지만 그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특이했던 경험을 꼽는다면 바로 볼리비아 루레나바케의 퓨마 보호소에서 2주간 자원봉사활동을 꼽을 수 있다.


볼리비아 수도 라파스에서 버스로 비포장도로인 데쓰 로드(Death road)를 20시간 정도 가면 도착하는 루레나바케. 그리고 그곳에서도 약 한 시간 가량 팜파스 지역 속으로 들어가야 나오는 한 야생 퓨마 보호단체가 있다. 주로 밀렵꾼에 의해 다치거나 부모를 잃고 남게 된 어린 퓨마들을 구조하여 돌보는 곳인데 이렇게 알음알음 여행자들이 찾아가 봉사활동을 할 수도 있는 곳이었다. 나 역시 우연히 멕시코에서 알게 된 한국인 동생이 볼리비아에 가면 꼭 가보라고 추천해줘서 방문하게 된 곳이었다.


내가 방문했을 당시, 사챠는 그곳에 있던 퓨마 중 가장 나이가 어린 퓨마였다. (내가 여행했을 때가 2010년이니 약 1살 정도 된 어린 퓨마였다.) 보통 2인 1조로 퓨마 한 마리를 돌봐주는데 주로 하는 일은 준비한 먹이를 케이지에 넣어주고 퓨마를 데리고 나와 산책 및 운동을 시키는 것이 주된 임무였다. 나는 보호소에서 꽤 오랫동안 있었다는 질(Gill)이라는 미국인 여자 친구와 함께 사챠를 돌봐주는 일을 하게 되었다.


사챠는 밀렵꾼에 의해 부모를 잃고 구조되었는데 아마도 밀렵꾼이 남자였고 그로 인해 남자를 무서워(혹은 싫어)한다고 해서 여자 봉사자들이 담당하는 퓨마였다.




아침 식사를 마친 우리는 정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신선한 아침이슬을 머금은 풀을 여러 개 뜯어 손에 들고 사챠에게로 향했다. 그냥 뭉텅이로 뎅강 자른 풀이 아니라 한가닥 한가닥 신선한 풀이어야 하는데 기다란 풀의 가장 여린 끄트머리 부분만 먹고 노랗거나 시든 풀은 먹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공주님 사챠의 애피타이저이기 때문이다. 사챠가 머물고 있는 케이지 근처에 다다를 무, 우리는 큰 소리로 사챠의 이름을 부르며 우리가 왔다 인사를 한다. 아무런 말 없이 인기척만 들리면 사챠가 매우 긴장하기 때문이었다.


케이지 근처에 도착하면 사챠는 우리를 반기며 철조망이 둘러싸인 케이지 쪽으로 다가와서 고양잇과 동물들 특유의 모터 소리(고양이 집사들이 골골 송이라 부르는 것)를 내며 우리가 건네주는 풀을 뜯어먹는다. 누가 고양잇과 동물 아니랄까 봐 저 골골 송은 아침마다 우리가 사챠의 기분을 나타내 주는 지표와 같은 것인데 다행히 내가 봉사활동을 하던 기간에는 매일 들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골골 송을 들으며 작은 철조망 사이를 비집고 손을 넣어 사챠를 만져줄 수 있었는데 유일하게 사챠를 만지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사챠도 나름 그 시간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았다. 항상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면 어김없이 우리가 오는 방향의 케이지 쪽으로 와서 우리가 잘 만져줄 수 있게 몸을 다가와주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애피타이저를 먹은 후 우리는 사챠 유인작전을 펼쳐야 했다. 아무리 순하디 순한 아이였지만 그래도 엄연히 야생성이 남아있는 동물이기 때문에 상당히 조심히 사챠에게 클립을 채우고 사챠의 앞뒤로 줄을 길게 늘어뜨려 앞뒤로 줄을 잡아당긴 상태에서 사챠와의 거리를 둔 채 산책로로 이동을 하는데 이 산책의 이동 결정권은 사실상 사챠에게 있었다. 앞뒤의 줄을 느슨하게 잡은 상태로 사챠가 걸으면 걷고 앉으면 일어설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Hey good girl~ come on!"


정도로 보채기는 했지만 사챠를 일부러 잡아끌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사챠는 특히 물에 발이 닿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산책로 중간에 얕은 개울이 있는데 우리는 최대한 사챠가 물에 닿지 않게 하기 위해 긴 장화를 신고 개울물에 첨벙첨벙 발을 담그고 건너고 사챠는 개울 사이에 놓인 쓰러진 통나무 다리 위로 최대한 조심조심 물에 닿지 않게 걸어간다.


혹시나 실수로 사챠가 물에 발이 닿게 된다면 엄청난 신경질을 부리곤 했다. 이유는 공주님이니까.


보호소 근처에는 여러 개의 산책로가 있고 그 산책로의 끝에는 퓨마들을 위해 만들어진 넓은 운동장이 있는데 운동장에 도착해서도 사챠는 움직임이 많지 않았다. 한쪽 구석에 앉아 멍 때리기를 좋아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얌전하게 보내는 편이었다. 때로는 우리가 운동을 좀 시키겠다고 공도 던져주고 커다란 인형을 던져줘도 조금 같이 놀아주다 금방 싫증 내곤 혼자 앉아서 벌레 쫒기를 하곤 했다.


그런 사챠가 좋아하는 것 한 가지. 바로 .

오랫동안 사챠를 봐온 나의 파트너 질의 얘기에 따르면 이전 파트너인 클라라와 함께 할 때는 케이지에서조차 잘 나오려 하지 않고 버티는 시간이 길었는데 내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이후 매우 순조롭게 나온다는 것이었다.





사챠와 수많은 에피소드 중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이 한 가지 있었는데 평소처럼 농구공을 던져주고 놀아주던 중, 굴러온 농구공을 주으러 앞쪽으로 살짝 가까워진 찰나, 사챠가 나에게 점프를 하며 달려들었다. 그냥 작은 강아지나 고양이가 아니라 내 키보다도 더 큰 퓨마가 말이다.


너무 놀라서 본능적으로 뒤로 얼른 물러섰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사챠의 육중한 몸에 깔릴 뻔했던 것이었다. 나는 사챠가 절대 고의로 나를 해치기 위해 그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와 같이 놀던 중 흥분한 나머지 나에게 폴짝 다가와 안기려는 듯 달려들었던 것이었으니까. 아직 어린 사챠는 사람에게 얼마나 위협적일 수 있는지 잘 모르고 힘 조절이 안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 너무 놀랐던 나는 질이 달려와 괜찮은지 물어보고 나서야 바지와 상의가 찢어졌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후에는 나와 질 모두 더 긴장한 채 사챠와 산책을 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챠를 미워할 수 없는 건 그 짧은 기간 동안 사챠와 정이 들었고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교감하며 마음을 나누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챠와 함께 한 보름의 시간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이자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특별했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야생성을 가진 퓨마를 자연으로 보내지 않고 동물원의 동물처럼 가두고 키우는 게 안 좋은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나 역시 처음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연 어떤 것이 더 옳은(나은) 결정일까.


나도 보호소의 다른 분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서 물어보았고 그들의 생각은 나와 조금 달랐다. 사챠를 포함한 보호소 내의 퓨마들은 대부분 밀렵꾼에 의해 다치거나 가족을 잃은 경우가 많아 구조할 당시 보호소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특히 사챠와 같이 어린 퓨마의 경우 어릴 때부터 보호소에 들어오게 되면 기본적으로 야생에서 혼자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야생으로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도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환경에서 머물며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고.


무차별적으로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가두고 사람들에 의해 구경거리가 되는 것이 아닌 인간에 의해 상처 받은 동물들을 인간이 거두고 보호해주는 것. 그것이 이 보호소가 존재하는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름간의 활동은 어느새 끝이 나고 일행들과 나는 또 다른 여행지로 향했다. 여행이란 유명한 관광지를 돌아다니며 견문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일상에서 접해보지 못한 일을 하는 것도 여행의 일부분이라는 것. 이곳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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