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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델 Oct 22. 2021

소매치기 굴에 가도 정신만 차리면 된다

에콰도르 키토 올드타운의 소매치기

거의 두 달만에 콜롬비아를 빠져나와 에콰도르로 온건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스페인어를 배우느라 시간을 보낸 탓도 있었지만 여행하던 당시 에콰도르 대통령이 군부에 의해 대통령궁에 감금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에 에콰도르 국내 상황에 촉각을 세우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고심했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여행지고 할 것 없이 해당 국가의 정치적 혼란스러운 상황은 현지에 대해 잘 모르는 여행자에게는 충분히 위협적이기 때문에 반드시 여행자의 안전을 위해 충분히 고려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에콰도르의 상황은 우리의 염려가 무색하게 곧 안정화에 들어섰고 그 이후에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에콰도르 대통령이 군부와 짜고 친 고스톱이라는 말마저 돌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롬비아 - 에콰도르 간 국경을 통과하기 직전까지 나와 일행은 에콰도르 상황을 예의 주시하며 살펴보았고 다행히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는 판단하에 에콰도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에콰도르 국경을 지나 수도 키토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타발로를 거쳐 드디어 에콰도르의 수도 키토에 도착할 수 있었다. 다른 남미 여러 도시가 그러하지만 특히 키토는 치안이 썩 좋지 않고 소매치기도 많다는 악명이 높았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꼭 가봐야 할 도시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 혼자 여행하기보다는 든든한 일행과 함께 해서 조금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일행들과 올드타운을 둘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스페인 식민지 시기에 건설된 수많은 건물들이 훼손 없이 잘 보존된 곳이라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까지 될 정도로 그 가치는 매우 높지만 소매치기의 위험으로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이 올드타운이었다. 올드타운에 들어서 성아구스틴 성당을 지나 광장으로 향했다. 멕시코시티의 소깔로, 보고타 볼리바르 광장과 같이 대부분의 콜로니얼풍의 남미 도시의 특징은 광장을 중심으로 성당과 각종 관공서가 있었기 때문에 일단 메인 광장을 찾아 그곳을 중심으로 둘러보면 여행 동선을 정하기가 한결 수월해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광장에서 아무래도 촬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원래는 가방에 카메라를 넣어두고 번호 자물쇠로 가방을 채운 상태로 다녔지만 함께하는 일행 두 분이 모두 한 덩치 하시는 분들이고 해서 스트랩으로 팔에 칭칭 감아 꺼내놓고 다니기로 했다. 물론 분위기를 보고 느낌이 좋지 않으면 다시 가방 안에 넣어둘 작정이었다. 특히 얼마 전(2010년 10월 초) 대통령 억류사건이 벌어진 곳이라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하지만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한 현지 사람들의 모습에 잔뜩 긴장한 우리들이 되려 우습게 느껴졌다. 오히려 하나의 정치쇼로 보는 시각도 있었는데 이렇게 며칠 만에 진정국면으로 접어든 것으로 보아 그 말에도 일리가 있는 듯했다.




대통령궁과 대성당이 근처에 있었기에 수많은 여행자와 현지인들로 북적이는 광장 한편에 놓인 벤치에 앉아계신 어르신들의 모습에서 우리나라의 탑골공원이 겹쳐져 보였다. 광장을 가로질러 대통령궁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입구에 경비들이 서있어 못 들어가나 싶었는데 친절하게 문까지 열어주며 들어가라고 했다. 긴 복도 한가운데에는 근위병들이 입구 양쪽에 서서 미동도 없이 지키고 서 있었다. 그 주변을 사진 찍느라 우리 일행들이 왔다 갔다 해도 눈빛 하나 흔들리지 않는 철저한 직업정신의 근위병들이었다. 투어시간에 맞춰 왔다면 안쪽 내부까지 볼 수 있었는데 아쉬운 걸음을 옮겨야 했다.


대통령 궁 옆에는 "Centro Cultural Metropolitano"라고 불리는 메트로폴리타노 문화센터에 들어갔다. 마침 입구에 흥미를 유발하는 전시 입간판이 있었는데 정말 재미있는 조형물도 많았고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던 중 일행과 잠시 떨어져 혼자 화장실을 가게 되면서 일은 벌어졌다. 문화센터 내부 화장실에서 손을 닦고 있는데 한 여자가 나에게 다가와서 나를 툭툭 치며 스페인어로 뭐라고 얘기하길래 처음엔 그냥 "No se(몰라요}"하고 무시했는데 계속 말을 걸며 내 옷을 가리키는 것 아닌가. 거울을 통해 보니 노란색의 뭔가가 묻어 있었다. 순간 욱! 하는 마음이 밀려왔다. 콜롬비아에서 키토까지 오면서 제대로 빨래할 곳을 찾지 못해 오랫동안 미루다가 전날 거금을 들여 무려 건조기까지 돌리고 뽀송뽀송하게 처음으로 개시한 옷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카디건을 벗으려 하니 그 여자와 또 다른 할머니가 가방이랑 카메라를 내려놓고 닦으라는 것 아닌가.

'아니 이봐 아줌마 너무 티 나잖아.'

키토에 오기 전, 워낙 악명 높은 곳이라 항상 덜렁거리는 내가 미더운 일행 두 분들로부터 주의해야 한다는 얘기를 귀가 닳도록 듣던 중, 남미 도심에서 성행한다는 일명 "머스터드 소매치기'에 대해 들은 기억이 있다. 몸에 머스터드나 오물, 침을 묻히고 닦아주는 척 도와주는 척하며 여행자가 당황해 카메라나 가방을 내려놓는 순간 그것을 재빨리 가져가 버린다는 수법의 소매치기단 이야기였다. 아니 근데 내가 진짜 키토 올드타운 한가운데에서 대놓고 당하나니. 물론 그 수법을 알고 있었던 이유도 있었지만 당황하기보단 거금의 빨래를 망쳤다는 생각에 화가 밀려와 그 자리를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떠오르지도 않고 일단 이걸 빨리 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이 아줌마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카메라를 내려놓으라고 자기가 들어주겠다 말했지만 단호히 "노!!"를 외치며 한 손에 든 카메라를 스트랩으로 뱅뱅 감아 꼭 쥐고 가방은 한쪽 어깨에 걸쳐 앞으로 맨 후 카디건을 벗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옆에서 치근덕 거리길래


"아줌마 됐다고 아줌마가 한 거 다 알아!! 저리로 가라고!!! Go! Okay? No!!!" 하며 사자후를 내뱉듯 소리 지르고 카디건을 빨았다. 처음엔 한쪽에만 머스터드가 묻어 있었는데 나에게 말을 걸며 순순히 카메라를 내주지 않자 가방을 앞으로 멘 이후 다시 또 더 묻힌 것 같았다. 카디건의 등 쪽은 이미 머스터드 범벅이 되어 있었고 그에 더 열 받아 화가 머리끝까지 난 상태의 성난 아우라를 풍기며 한국어로 계속 중얼거리며 욕을 쏟아부었다. 내 행동을 보던 소매치기단은 만만치 않다 판단했는지 사라져 있었다. 여행하며 항상 혹시나 하는 상황에 대비해 가방 지퍼에 번호 자물쇠를 채워놓아 함부로 열 수 없게 하고 카메라도 스트랩으로 팔에 칭칭 감아 빠지지 않게 한 덕인 것 같다. 물로 씻어냈지만 이미 온몸에서 머스터드 냄새가 진동했고 카디건은 축축하게 젖어서 기분이 너무나 좋지 않았다.




다시 일행들에게 돌아가 이야기를 해주니 이만하길 다행이라며 거기서 씻고 있으면 어떻게 하냐며 다음부터는 그 자리를 먼저 피하는 게 우선이라고 신신당부를 잊지 않으셨다. 콜롬비아 보고타에서 알게 되어 산힐 여행을 같이 하고 메데진을 시작으로 키토까지 함께 여행한 두 분은 진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여행의 고수들이라 매사 어리바리 덜렁거리는 내가 도움도 많이 받고 여러 가지로 의지도 많이 하는 분들이었는데 이 두 분이 먼저 그 얘기를 해주지 않으셨다면 어쩌면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진짜 이런 일을 당할 줄 몰랐지만 사전에 철저히 예방하고 주의를 기울인 덕분에 큰일을 모면할 수 있었는데 이렇게 알고 있었어도 정말 당황한다면 눈뜨고 소매치기를 당할 수도 있는 상황임에 분명했다. 훗날 페루에서 만나 일행이 된 한국인 동생 역시 이 키토에서 그 소매치기단에게 좋은 카메라와 가방을 소매치기당했다고 들었는데 더 역겨운 일은 난 애교스럽게 '머스터드'였다면 이 동생에게는 진짜 '변'을 묻혔다고 했다.  


여행을 하며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가방과 같은 소지품을 잃어버렸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나 역시 중국 여행을 하며 카메라를 도둑맞아 중국 공안에 신고한 적도 있고 호주에서는 같은 방에 머물던 한국인에게 현금을 털린 적도 있었으며 (심증만 있을 뿐 물증이 없었다) 유럽 여행 당시에는 소매치기가 나에게 접근했다고 친절한 현지인이 알려주었던 일도 있었다. 유럽 여행 당시 가지고 다니던 가방의 형태가 내 등 안쪽에 지퍼가 달려 있어서 겉에서는 가방을 열 수 없는 형태라 소매치기가 접근만 했다가 포기하고 그냥 가버린 사건이었는데 여행의 고수는 아니지만 나름 장기 여행을 하며 깨닫게 된 사실은 모든 일은 진짜 '찰나의 방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지난번 연재했던 우유니 소금사막에서 화상을 입게 된 일도 '찰나의 방심'에서 생긴 일이지만 소매치기나 가방을 도둑맞는 일 모두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치안이 너무나 잘 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여간해서 물건을 도둑맞았다는 얘기를 들어보지 못하기 때문에 화장실에 갈 때도 너무 쉽게 노트북을 내려놓고 화장실을 간다던지 그렇게 하지만 외국 특히 남미에서는 식사를 할 때도 가방을 옆에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앉고 있는 의자의 다리나 내 다리로 가방을 걸어놓아 쉽게 다른 사람이 가져가지 못하게끔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키토에서 내 가방에 그러했듯 가방 지퍼에 번호 자물쇠를 달아놓는 것 또한 누군가는 의미 없는 일이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자물쇠란 존재는 보안의 의미도 있지만 일종의 상징성과도 같은 거라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함께 다녔던 일행분 중 한 분이 얘기해준 건데 가방이나 숙소 사물함에 자물쇠를 달아놓는 것은

'힘들게 내 것 가져가지 말고 꺼지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앞서 이야기한 머스터드 사건에서 그 자리에 머물지 말고 신속히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옳았던 이유는 바로 그들은 다수였고 나는 한 명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나에게 달려들어 빼앗아 간다면 힘으로 절대 그들을 이길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그 부분까지 생각하지 못한 건지 아니면 잔뜩 화가 난 나의 아우라가 만만치 않아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행은 일상보다 좀 더 예측 불가능하고 불확실한 상황에 더 많이 놓이게 된다.


앞서 말했듯 에콰도르에 입성 전, 에콰도르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수일 동안 상황을 지켜봐야 했다. 다행히 금방 해결이 된 상황이었지만 여행하는 내내 나는 국제정세와 여행하고자 하는 국가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그런 상황은 곧바로 나의 안전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좀 더 긴장하고 좀 더 민첩하게 상황을 대응해야 한다는 점을 이 자리를 빌려 앞으로 장기여행을 준비하는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 여행은 그 모든 것들을 나 스스로 지켜내야 하며,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고 이루어야 하는 과정이며 선행되어야 할 필수 조건은 스스로 본인의 안전에 대한 끊임없는 자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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