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뒤에 깨달은 것
병원이 무섭다. 그중에서도 주사는 더더욱 무섭다. 웃기게도,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더 씩씩했다. 엉덩이에도, 팔뚝에도 울지 않고 주사를 맞았다. 병원 가는 일로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주사에 대한 공포감을 인지한 건 대학 시절이었다. 동아리 후배가 캠퍼스 내 헌혈 센터로 헌혈을 하러 간다기에 “나도 갈래!” 하며 따라 나섰다. 당시 헌혈 센터는 헌혈한 학생들에게 영화 티켓 또는 햄버거 교환권을 줬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영화 티켓 한 장,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 교환권은 꽤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고, 대부분 가볍게 헌혈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따라 나선 것이다.
그게 나의 첫 헌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헌혈이었다. 헌혈 도중 잠시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주사 바늘이 몸 안에 들어오는 느낌’에 대한 공포감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후배와 나란히 베드에 누워 팔에 주사를 꽂았고, 고무관을 통해 빨간 피가 타고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데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옅은 공포감과 함께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게 이상 증세라는 걸 알 리 없는 나는 ‘원래 이런 느낌인가?’ 하며, 이상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작은 소리로 “선생님, 선생님, 어지러워요”라고 웅얼웅얼 이야기했고, 그걸 들은 후배가 큰 소리로 선생님을 불러줬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헌혈은 끝이 나 있었고, 나는 헌혈 센터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을 처음 맞았을 때도 나는 기절했다. 1차 백신을 맞는 날이었다. 모두가 처음으로 백신을 맞는 시기였고, 그래서 부작용에 대한 긴장도가 가장 높던 때였다. 몸에 주사 바늘이 들어오는 게 무섭기는 했지만 백신을 맞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대기하는 내내 스스로에게 ‘잘 참을 수 있어. 잘 넘어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 순번이 되었을 때 용감하게 백신을 맞았다.
당시는 백신 투여 후 혹시 나타날 부작용을 대비해 15분 정도 대기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 후 귀가할 것을 권했다. 백신을 맞고 나서도 긴장감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는 15분 대기 공간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살짝 굳어 있었다. 길게 느껴지는 15분이 지나자 그제야 ‘휴. 드디어 끝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군!’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려는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휠체어에 실린 채 응급실로 옮겨지는 중이었고, 응급실 베드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아빠가 데릴러 와서 아빠 차를 타고 귀가를 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런 증상을 부르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주 신경성 실신’ : 극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긴장으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느려져 혈압이 낮아지는 현상으로, 급격히 낮아진 혈압 때문에 뇌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현상.
증상에 명확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건강 검진에서 피를 뽑거나 진료 시 주사를 맞아야 할 때마다 꼭 말씀을 드린다.
“제가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미주 신경성 실신을 겪어서요.”
간호사 선생님들께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만으로 긴장감이 덜어지는 효과가 있었고, 이전처럼 정신이 희미해지는 정도가 점차 나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