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뒤에 깨달은 것
나는 당장 눈앞의 것이 두려웠다. 가슴에 마취 주사를 찌르고, 도라이버 만한 바늘을 찌르는 당장의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불러다주는 영상들을 볼수록 두려움의 범주가 커졌다. <어느날 갑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같은 젊은 여성들 영상이 심심찮게 보였기 때문이다. 불안과 염려가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게 정말 그냥 ‘검사’로 끝날 수 있는 일일까?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큰 병원, 수술, 치료비, 직장 문제까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 생각을 밀어내려 했지만, 점점 더 불안의 입자는 촘촘해졌다.
“안돼. 조직검사가 마지막일 거야. 나 그 이상은 절대 못 해.”
애써 다짐처럼 내뱉은 말에 옆에서 로봇 같은 목소리가 툭 하고 박혔다.
“절대가 어디 있어? 치료가 필요하면 받아야지.”
그 한 마디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도, 무한 반복으로 돌아가던 생각도 멈췄다. 그 말엔 냉정함보다 현실을 꿰뚫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문득 ‘정말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슴을 콕 찔렀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 속에서 이미 나는 환자였고, 회사에 뭐라고 보고할지,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할지, 이사라도 가야 하는 건지까지 온갖 시나리오를 그렸다. 그러는 사이, 문은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마에, 뺨에, 눈가에 차례로 입을 맞추며 말 없이 나를 다독였다.
“우리 쑥이~ 괜찮아질 거야. 별일 없을 거야.”
“검사 받는 날, 내가 케어해주러 갈게. 퇴근하자마자 쑥이네로 쏠게. 집에서 조용히 요양하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뭉클하게 올라오는 감정에 눈시울이 따뜻해졌다. 문이 꼭 안아주었고, 나도 천천히 팔을 들어 문을 감싸 안았다. 그의 등에 손바닥을 붙이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 고마워. 무서운데,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그렇게 한참을 문을 끌어 안고 충전을 마친 뒤 씩씩하게 일어났다.
“가자! 오빠 나 다녀올게!”
문은 가방을 챙기는 내 옆에서 조용히 모자를 썼다. 그리고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걷자며. 짧은 거리를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걸었다.
문득 깨달았다. 무서움을 견디게 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손길이라는 걸. 버스 문이 열리고, 나는 그 손을 한 번 더 꼭 잡은 뒤 올라탔다.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문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무섭지만, 괜찮다.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을 거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도, 사랑이 그 안에서 길을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