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과 기쁨이 눕는 자리

가만히 토닥이는 우리의 밤

by 쑥자람

“오빠, 왜 안 자고 있어?”


깊은 새벽. 웬일로 잠에서 깼다. 흐릿한 시야 너머, 문이 침대 구석에 엎드린 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한 번 잠들면 웬만해선 깨어나지 않는 문인데. 나는 졸린 눈으로 그의 어깻죽지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왜 안 자?”


문은 꼼짝 하나 하지 않은 채 투정부리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쑥이가 내 자리 다 뺏었어.”


그제야 뒤쪽이 썰렁하다는 걸 느꼈다. 어느새 침대 중앙선을 훌쩍 넘어 문의 공간을 차지한 채 자고 있었던 것이다. 잠귀신을 쫓아낸 건 귀신이 아니라 나였던 셈이다. 나는 엉거주춤 몸을 뒤로 빼며 우리 사이 틈을 손으로 쓱쓱 쓰다듬었다.


“오빠, 자리 생겼어. 어서 와서 자.”


그 말을 끝으로, 문이 잠들었는지도 모른 채 다시 깊은 잠에 취해버렸다. 아침에 기지개와 함께 개운하게 눈을 떴을 땐 웬일로 문이 깨 있었다.


“오빠, 어제 계속 못 잤어?”


그는 대답 대신 나를 조용히 바라봤다.


“설마 내가 또 오빠 자리 뺏은 건가?”


그러자 머리를 쓰다듬으며 문이 하는 말.


“우리 쑥이 어제 많이 피곤했어?”


문의 자리를 빼앗을 정도로 벌러덩 드러눕기도 하고, 데구르르 구르며 자다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 지난 밤을 떠올리며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아니 집에서 혼자 잘 때도 얌전히 자는 녀석이 무슨 일이야? 갑자기 잠버릇이 이렇게 생긴다고?’

‘설마 이불도 막 걷어 차고, 시끄럽게 코도 골고, 잠꼬대도 한 건 아니겠지?’


이부자리 하나 흐뜨러뜨리지 않던 나는 어디로 갔을까. 나도 모르게 문을 깨울 정도로 이리저리 굴러다녔다니…. 1년 전과는 너무 달라진 우리의 잠자리 풍경. 콩닥거리던 떨림, 간질거리던 설렘의 시기를 지나 함께하는 게 익숙해지면, 점점 이렇게 변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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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처음으로 나란히 누워 잠이 든 건 1년 전, 지하철도 광역버스도 끊긴 깊은 밤이었다. 우리 둘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에게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렇게 나란히 식탁에 앉아 있다가 시계를 보고야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차가 끊기는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외간 남자를 들여 재우다니, 그것도 공간 분리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비좁은 공간에서 같이 자는 것은 전혀 머릿속에 없었던 그림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당황해 하는데 문이 입을 열었다.


“괜찮아. 검색해보니까 오만원이면 택시로 금방 갈 수 있네!”


하지만 내가 괜찮지 않았다. 자정이 넘은 시각, 한 시간도 넘는 거리를, 그것도 고속도로를 달리는 택시에 태워 보내는 게 마음에 걸렸다.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위험하기도 하고, 문 역시 흔쾌히 택시 타고 가라고 하기 보다는 걱정하는 마음이 더 컸을 테니까.


“안 돼. 위험해… 자고 가요.”


내가 말했다.


“대신 오빠가 손님이니까 침대에서 자. 나는 바닥에서 잘게.”

“아니야. 쑥쑥이 내일 출근해야 하니까 쑥쑥이가 침대에서 자야지. 나는 원래 바닥에서 잘 자.”


세수를 하고, 이를 닦고, 옷을 갈아 입고 나오니 문이 바닥에 깔아둔 이부자리에 누워 빼꼼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계속 쳐다보고 싶었지만 나의 민낯과 후줄근한 옷차림이 어딘가 부끄러워 서둘러 불을 끄고 말했다.


“오빠 잘 자.”

“쑥쑥이도 잘 자.”


하지만 잠이 올 리가 없었다. 밤은 더욱 깊어만 가고, 출근 시간은 가까워져만 가는데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침대 끝에 매달리듯 누워 손을 아래로 뻗었다. 그리고 배꼽 위에 정갈하게 놓인 문의 손을 괜스레 간질였다.


“자라.”


두 눈을 감은 채, 마치 아빠처럼 대답하는 문.


“오빠, 바닥 안 불편해?”

“하나도 안 불편해. 어서 자라.”

“오빠, 침대에서 같이 자면 나 괴롭힐꺼야?”

“안 올라가는 데는 다 이유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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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칙하게도 문이 내 옆에 눕길 바랐는지 나는 약간의 아쉬움을 느끼며 말없이 그의 손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침묵을 깨고 문이 말했다.


“쑥이 옆에 얌전히 누워서 잘까?”


나는 최대한 침대 반대쪽 끝으로 몸을 빼고 누워 문이 누울 자리를 마련하고는 문을 이불 속에 들였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본 채 누워 서로의 손을 쓰다듬었다.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있었는데 침묵을 깨는 문의 한 마디.


“쑥이랑 더 가까이 있고 싶어.”


그 말에, 숨이 콱 막혔다. 한참이나 어둠 속에서 얼굴이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조심조심 그의 품으로 다가갔다. 문은 팔로 조심스럽게 나를 감쌌다. ‘이거 잘 수야 있을까?’ 싶던 밤, 짧지만 아주 깊은 잠을 잤다.


떨림과 설렘이 공존하던 침대는 점차 아늑한 공간이 되어갔다. 잠들기 전 문과 나란히 누워 있는 시간은 하루의 긴장을 풀어 가는 안온한 시간이었다.


“슈웅 우주선 발사!”

허공에 마임하듯 손을 휘적이며 우주선을 발사하기도 하고


“비상 비상, 로켓이 추락하고 있다. 로켓이 추락하고 있다!”

허공을 가로지른 손을 문의 배로 추락시키기도 하고,


아우우-

늑대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고


훨훨-

나비 그림자를 만들기도 하고,


두두두두-

문의 기다란 팔을 기관총 삼아 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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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살 때 이런 장난을 쳤었는지 이제는 기억나지도 않지만 문 옆에 누워 있으면 가끔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걱정도, 책임도, 어른스러움도 모두 내려놓고 여섯 살 어린아이가 되었다. 가만히 누워 잠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문의 머리 맡으로 가서 피부관리사가 되기도 했다.


“고객님, 오늘 무슨 관리 받으러 오셨죠?”

토너 패드로 그의 얼굴을 결을 따라 닦아 주고, 아이크림을 듬뿍 듬뿍 얼굴 전체에 바르며


“고객님, 이 크림이 원래는 굉장히 고가의 크림이어서 저희가 VIP 고객님들께만 소량으로 찔끔 찔끔 발라드리는 크림인데요. 고객님이 너무 미남이셔서 오늘 특별히 고객님에게만 얼굴 전체에 듬뿍 도포해드리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방문할게요.”


착한 문은 상황극마다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러면 나는 더욱이 신이 나서 그의 얼굴에 크림을 듬뿍 듬뿍 얹었고, 턱부터 광대를 따라 올라오며 그의 얼굴 근육을 풀어주면 문은 상황극을 잊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와 진짜 피부과에 온 것 같아. 쑥이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그러면 칭찬 한 마디에 더욱 신이 나버린 나는 열과 성을 다해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이따금 마사지샵 관리사가 되기도 했다.


“오빠 엎드려봐 내가 마사지해줄게!”


그럼 문은 샤워하기 싫은 강아지처럼, 또는 주사맞기 싫은 어린이처럼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가도 이내 침대에 벌렁 엎드렸다. 두 손바닥으로 꾹꾹 누르며 그의 허리춤부터 승모근을 풀어 주었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척추 라인을 풀어 주었다. 작은 손으로 목 뒷쪽도 조물조물 풀어주었고, 열 손가락 끝으로 두피 마사지도 해줬다.


“고객님, 오늘 특별히 다리 마사지도 해드릴게요.”

“안돼. 쑥쑥이 힘들어~~”


말은 나를 걱정하고 있지만 이미 노곤노곤해진 문은 몸을 일으킬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럼 나는 통통통통 그의 다리를 한쪽씩 두드리고 주물렀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드는 사이, 불쑥 진심이 흘러 나오는 밤도 있었다. 눈을 마주 보면 꺼내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어둠 속에선 오히려 쉽게 입 밖으로 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조금씩 더 알아갔다.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저녁, 문과 나란히 앉아 <호빗: 스마우그의 폐허>를 보던 중이었다. 서울에 다녀와 피곤한 탓인지 영화를 보는 중간중간 자꾸만 눈이 감겼다. 흘긋흘긋 내 상태를 체크하던 문이 푸흐흐 웃으며 영화를 중단했다.


“쑥이 한숨 잘까?”

“오빠 나 10분만 자고 일어날게. 오빠 놀고 있어.”

“나도 쑥이 옆에서 10분만 자야겠다.”


문은 팔베개를 해준 채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포근한 손길을 느끼며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니 자연스레 입밖으로 말이 흘러 나왔다.


“오빠, 오늘 엄마 기일이야. 아까 서울 가는 버스에서 엄마 사진을 들여다보다가 몇 장 가족방에 공유했는데, 금방 도착하더라? 근데 그동안 그렇게 결혼식을 많이 다니면서 한번도 생각 해본 적 없었는데, 오늘 곱게 한복 입고 입장하시는 양가 어머니들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 우리 엄마도 한복 입으면 되게 고울 텐데… 서울 가는 내내 엄마 사진을 들여다 봐서 그런지 자꾸만 엄마가 한복 입고 입장하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거야. 아까 프리지아도 그래서 사온 거고, 오빠한테 가래떡 꺼내달라고 한 것도 그래서 그랬어. 엄마가 좋아하던 것들이거든. 근데 저녁을 너무 많이 먹어서 떡을 못 먹었네.”


조용히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문이 내 말이 끝나자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서 아버지들을 같이 입장하게 해야 하나 생각했었어.”


진중하게 꺼내놓는 엉뚱한 생각에 와하하 웃음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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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에게 엄마 이야기를 들려줬다. 17년간 몇 번이나 회상하고 글로 적기를 반복해서 이제는 슬프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오빠에게 엄마의 장례식 얘기를 하니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문은 나의 미세한 떨림을 알아챘는지 말없이 나를 품에 묻었다. 나는 조용히 눈물로 오빠의 옷을 적셨다. 그러다 민망해져서 몸을 일으켜려 했다.


“안돼! 10분 지났겠다. 영화봐야지!”

“영화보다 쑥쑥이가 중요해!”


문은 나를 잡아 당기더니 다시 품에 묻고는 토닥였다. 우리는 침대에 누운 채 서로가 기억하는 엄마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문의 눈가가 축축했다. 문의 눈물이 조용히 흘렀다. 나는 “우리 오빠 더운가?”하며 땀을 닦듯 스윽 그의 눈물을 닦아줬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훔쳐주고 서로를 토닥이고, 볼을 쓰다듬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엄마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에게 침대는 잠자는 공간 이상이었다. 서로에게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고, 상처를 꺼내 보이기도 하고 깊은 위로를 주고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침대의 본 목적은 수면. 하루의 끝에서 우리는 침대로 다이빙한다.


“쑥쑥이 넓게 자. 쑥쑥이 편안한 숙면을 위해 내가 희생할게.”

“으잇 또 놀린다! 일로 와. 내가 팔베개 해줄게.”


좁은 침대 위에서 우리는 밤마다 서로의 베개가 되어간다. 작은 침대 사이, 우리 사이의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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