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현상으로 보는 연애의 발견

참지 않아도 되는 사이

by 쑥자람

만난 지 1개월 째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이 시간까지 문이 우리 집에 있을 거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자고 간다니…! 주(主)인 나도, 객(客)인 문도 생각하지 못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좁디좁은 원룸은 어색한 공기로 가득했다.


“오빠 먼저 잘 준비하고 나와요. 나는 오빠 이부자리 깔아 놓을게.”


문은 욕실로 걸어들어가는 듯 하더니 다시 문을 빼꼼 열고는 쭈뼛쭈뼛 말했다.


“화장실 좀 쓸게요.”


그렇지. 화장실을 공유한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지. 같은 ‘화장실’이어도 공공장소나 식당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과 가정집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느낌이 아주 다르다. 생활 공간 가장 깊숙한 곳을 들키는 기분이랄까? 그냥 사람 사는 공간의 일부분일 뿐인데 남의 집 화장실을 사용하는 건 어쩐지 민망하게 여겨지고 나도 모르게 정중하게 허락을 구하게 된다.

남의 집 화장실을 이용할 때 예의범절의 문제도 있겠지만 민망 이슈도 빼놓을 수 없다. 이를 테면 이런 것.


소리
안에 있는 사람은 혹시 소리가 새나갈까 봐 조마조마하다. 집처럼 편하게 일을 볼 수 없다. 밖에 있는 사람은 그런 불안을 알기에 괜히 큰소리로 음악을 틀어주기도 하고, 행여 소리가 들려도 본인보다 더 민망한 얼굴로 모른 척해줘야 한다.


냄새
냄새가 지독할 경우, 안에 있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모든 세제를 총동원해 긴급처방을 시도한다. 밖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강력한 냄새라도, 그런 티를 내선 안 된다. 자연스럽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참아줘야 한다. 이 중 가장 민망한 요소는 다름아닌 소리일 것이다. 6평 남짓한 우리 집 원룸이라면 더더욱이. 화장실과 방이 똑 붙어 있는 아담한 원룸에서는 화장실에서 오줌 누는 소리까지 문밖으로 새어나오기 때문이다.


문이 화장실에 들어간 후 나는 조용히 음악을 재생하고 이부자리를 깔았다. ‘화장실 좀 쓸게요.’라고 쭈뼛쭈뼛 동의를 구한 문이 귀엽다고 생각하면서. 나도 모르게 나의 온 신경이 문이 있는 화장실 쪽으로 향한 채로…. (이날 나는 세면대 물을 틀고 볼 일을 봤다. 우리 집인데….)



만난 지 2개월 째

문이 침대에 기대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야간 근무를 하는 날이면 퇴근하자마자 침대로 다이빙해야 하는 문이건만 퇴근하자마자 부리나케 우리 집으로 달려왔다. 그러고는 낮잠 한숨 자지 않고 나랑 놀아주었으니 꾸벅꾸벅 졸 만도….

이른 저녁으로 먹은 회 한 접시와 해물 라면이 트리거였을까? 집 앞 식당에서 밥을 먹고 오자마자 문은 헤롱헤롱, 두 눈에 잠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어린아이처럼 귀여워 특권을 선포했다.


“오빠 누워! 오늘은 옷 안 갈아입어도 침대 누울 수 있게 해줄게!”

“안 돼. 쑥이 침대에는 외출복으로 올라갈 수 없잖아.”

“오늘만 특별히 봐줄게. 눈에 잠이 가득해. 어서 누워어.”


나는 머리 하나 반쯤 더 있는 문의 몸뚱이를 끌어안듯 이끌고 침대로 옮겼다. 젖은 솜이불처럼 하루치 피로가 잔뜩 스며든 몸이 생각보다 훨씬 무거웠다. 문은 못 이기는냥 침대에 올라갔다. 그러고는 잠깐만 자고 일어나겠다며 등 뒤에 배게를 받쳐 기대 앉고서는 금세 코를 골았다.


드르렁드르렁-

푸슉푸슉-

흐르르릉-

코르르르르르-


미묘한 변주를 주며 코고는 소리를 배경 음악 삼아 책을 읽었다. 책 페이지를 보다가 코골이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면 문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책 페이지를 보다가 문을 바라보았다가 하며 독서를 하던 참이었다.


부르륵-


생각지 못한 변주였다. 이것은 다음 악장으로 넘어가는 게 아니라 작곡가가 바뀌는 수준, 아니 음악이라기 보다는 음악을 방해하는 다른 차원의 소리였다. 소리의 정체는 바로 문의 방귀 소리.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땐 혹여나 문 스스로가 놀라거나 민망해할까봐 곧바로 문을 돌아보지도 못했다.


부르륵-

뽁-

푸르릉-


코골이 연주에 이따금 방귀 합주가 곁들여졌다. 그제야 나는 문이 세상 모르게 깊은 잠에 빠졌다는 걸 알았고, 방귀 소리가 들릴 때마다 맘놓고 문을 돌아볼 수 있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볼록한 배 위에 올려두고 골똘히 생각에 빠진 것처럼 얌전히 기대 앉아 있었지만 실상은 얌전하지 못한 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문을 바라보고 있으니, 문도 모르는 나만 아는 비밀이 생긴 것 같았다. 마음 한 켠이 이상하게 간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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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6개월 째

회사와 집이 생활반경 전부인 INTP 집돌이와 안전한 집이 제일인 INFP 집순이의 데이트는 열 번 중 아홉 번이 집 데이트다. 문이 넓은 집으로 이사를 간 후로는 주로 그의 집에서 만났는데, 밤이든 낮이든 우리는 마블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팝콘을 먹다 밥을 해먹고, 또 팝콘을 먹다 잠깐 눈을 붙이고, 다시 배달음식을 시켜 먹고….


한 번 집에 발을 들이면 주말이 끝날 때까지 나가는 법이 거의 없었다. 찐-집돌이와 찐-집순이에게는 완벽한 데이트였다. 단 한 가지, 똥을 빼면. 방귀야 상대방이 없을 때 괄약근 힘을 조절하면서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만 큰일은 그렇지 않다. 냄새며 소리며 모든 것이 위험요소다.


나는 데이트할 때면 최대한 대장이 문제를 일으키지 못 하도록 자극적이거나 차가운 음식은 먹지 않았다. 그리고 화장실에 갈 때면 문 몰래 구입한 토일렛 퍼퓸을 변기에 칙칙 뿌리고는 볼 일을 봤다. 하지만 문은 달랐다. 배에서 조금이라도 신호가 오면 신경을 곧추 세우고 긴장을 하는 나와 달리 문은 평소와 다를 것 없어 보였다.


“엇 나 화장실 좀”

“화장실 다녀올게요”


문은 언제나 예의 바르게 고지와 함께 화장실에 갔다. 그러면 가끔 요란한 소리가 났다.


푹-

푸슉-

부루룩-


하지만 소리보다 더 의아했던 건 시간이었다. 문은 한 번 화장실에 가면 도통 나올 줄을 몰랐다. 열 번에 여덟 번 정도가 그랬다. 10분짜리 영상을 다 보고, 하나를 더 틀며 기다렸는데도 화장실에선 인기척이 없었다. 처음엔 문의 변비를 의심하기도 했고, 문의 장 건강을 염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화장실에 자주 가는 걸 보면 변비는 아니었고, 화장실 문을 닫고 나오는 얼굴이 세상 누구보다 상쾌한 걸 보면 장 건강에도 큰 문제가 없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깨달았다. 도리어 문이 화장실 갔을 때가 기회라는 걸. 그러니까 어떤 기회냐 하면, 내 장에 쌓인 독소를 마음껏 방출할 수 있는 해방의 시간. 나는 안심하고 방귀를 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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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난 지 10개월 째

봉긋하게 솟은 문의 배. 그 위로 내 발가락 열 개가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슥슥슥-

발바닥으로 동근 배를 부드럽게 스치다가


통통통-

살짝 튕기듯 리듬감 있게 배를 두드리다가


꼼지락꼼지락-

느릿하게 건반을 두드리듯 발가락을 움직였다가


말캉말캉-

부드러운 뱃살을 살짜쿵 꼬집었다가….


문의 배 위에 발을 얹고 있는 이 자세. 어느새 내 몸이 기억할 만큼 익숙해졌는데, 그날따라 괜히 새삼스러웠다.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곤 한다. 문이 내 옆에 있다는 게, 내 남자친구라는 게, 너무 좋아서 믿기지 않는 순간.


“오빠, 너무 신기해!”

“뭐가? 뭐가 또 신기할까?”

“1년 전 양식 집에서 처음 만난 오빠랑 내가 이렇게 같이 있다는 게 아직도 신기해!”

“그때 그 사람은 이제 없어요. 나 살쪘어…”

“(무시) 이것 봐! 오빠 배에 발을 얹는 사이라니! 우리 주말도 맨날 같이 보내고, 요리도 해 먹고, 발 마사지도 해주고,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잠도 재워주고… 엄청 편해졌잖아!”

“그럼 그럼!”


문과 내가 가까워졌다는 걸 알 수 있는 게 또 뭐가 있을까 생각을 하다가 쿡쿡 웃음이 터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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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해. 왜 웃지~?”

“크크크 오빠 방귀 소리도 듣고… 나 오빠 방귀 소리 너무 좋아!”


그간 문이 내 앞에서 방귀를 낄 때 마다 못 들은 척, 모르는 척 넘어갔다. 한 번도 방귀 소리를 들은 채 하거나 놀린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문이 당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꼭 말하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순간이니 말이다. 그런데 문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했다.


“흥! 나도 쑥쑥이 방귀 소리 들었지롱!”

“...!?”


장난스럽게 문을 놀리려고 했던 나는 도리어 당황해버렸다. 대체 언제? 문이 화장실 갔을 때 괄약근에 힘 조절해가면서 작게 꼈는데? 화장실 문 너머로 소리가 새어 나갔을 리가 없는데? 가끔, 아주 가끔 문이 잠들었다고 생각하고 뀌긴 했는데…. 그때조차 굉장히 조심조심 배출해서 들렸을 리 없는걸? ‘얼음!’한 상태로 굳은 채 눈을 위로 굴리며 생각했다.


하지만 당황은 잠깐이었고, 이내 이유 모를 해방감이 느껴졌다. 뭔가 오래 품고 있던 비밀을 들킨 기분인데 이상하게도 부끄럽기보다 편안했다. 몰래 숨겨 두었던 비밀을 들켰는데 그걸 웃으며 안아준 사람을 만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후로도 방귀를 내 집처럼 뿡뿡 낄 수는 없었다!)


1주년

1주년 기념 데이트도 평소와 다를 것 없었다. 역시나 외출 금지 집 데이트. ‘나가볼까?’ 싶어도 37도 땡볕 한 가운데로 걸어나갈 용기 같은 건 우리 둘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덕목이었다. 아침으로 간장 계란 파스타를 만들어 먹고, 점심으로 갈빗살 구이와 비빔면을 만들어 먹고, 제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밀린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 브라더후드>를 보는 평온한 1주년 데이트.


이 평온함을 슬금슬금 깨는 요소가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내 위장. 아침, 점심 내리 차가운 면을 먹은 탓인지, 아니면 제로 아이스크림이 장을 자극했는지 꾸르륵꾸르륵 배에서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어쩌지? 이 흐름을 어떻게 깨고 조용히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지?’


눈치껏 타이밍을 재던 나는 애니메이션 한 화가 끝나자마자 스페이스바를 눌러 영상을멈췄다.


“자! 쉬는 시간!”

“쑥이 벌써 졸려?”

“오빠 혼자 놀고 있어!”

“엥 쑥이 어디 가?”

“… 화장실 나 다녀올게 혼자 놀고 있어!”


쭈뼛쭈뼛 말을 하고는 화장실로 향하는 데 등뒤에서 들려오는 소리.


“쑥이 화이팅!”


‘화이팅’ 이라는 말도, 그렇게나 큰 소리도 예상하지 못한 터라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 보니 눈에 들어온 풍경은 더욱이 생각지도 못한 풍경. 문은 양손을 머리 위로 번쩍 올린 채 말똥말똥한 눈빛으로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순간 떠올랐다. 얼마 전 만난 대학 선배가 말하길, 자기는 화장실에 잘 못 가는 편인데, 남자친구가 그럴 때마다 “이번엔 꼭 성공해!” 하고 화이팅을 외쳐준다고 했었다. 그때는 웃고 넘겼는데, 지금 보니 문도 그 부류였다. 나는 화장실을 가다 말고 문에게 발걸음을 돌려 이 이야기를 전해줬다. 그러고는 다시 오빠 화장실로 향하는데 문이 졸졸 뒤따라 왔다.


“나도 응원 해 줄래! 쑥쑥이 화이팅 해 줄래!”


정말이지 문은 화장실 문 앞까지 따라와


“쑥쑥이 잘 싸고 있어?”

“쑥쑥이 조금만 더 힘내!”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민망함 따위는 아랑곳없이 내게 ‘화이팅’을 외쳐주는 사람이라니. 웃기고 사랑스럽지만 절대 그럴 수는 없기 때문에 문의 커다란 몸을 질질 끌어 침대로 옮겨 놓고는 볼일을 보러 갔다.


“쑥쑥이 성공했어?”


일을 마치고 나온 나를 반겨 주는 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 보는 문. 나는 수줍게 그리고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방귀 하나, 코골이 하나에 웃고 안심하며, 우리는 그렇게 가까워졌다. 덜 민망해졌고, 그만큼 더 다정해졌다. 그러니까 이제는 안다. 사랑은 참지 않아도 되는 사이가 되는 일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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