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과잉 연애 보고서

과유불급! 우리는 지금 균형을 잡아가는 중

by 쑥자람

“단백질 부족! 영양 불균형!!”

밤마다 스마트폰 너머로 들려오는 문의 잔소리.


문은 퇴근길이면 꼭 전화를 걸어 왔다.

“오늘 저녁은 뭐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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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각한 영양 불균형이었다. 혼자 끼니를 해결할 땐 생라면, 빵, 크래커 같은 걸 집어 먹으며 허기를 달랬다. 그러다 며칠은 굶은 사람처럼 폭식하는 날이 있었는데, 그때는 다름 아닌 생리 직전이었다.


한 달에 한 번 생리가 가까워지면 나는 같은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음식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었다. 주로 빵과 과자를 먹었는데 그게 어느 정도였냐 하면은, 식빵 한 줄을 한번에 다 먹을 정도였다. 식탐 괴물이 된 것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워야 겨우 허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새 모이 마냥 깨작이며 먹든, 며칠을 굶은 사람처럼 거나하게 먹든, 어느 쪽이든 영양 불균형인 건 매한가지였다. 오로지 탄수화물로 구성된 메가 탄.탄.탄 식단. 지겹지도 않은지 문은 매일 저녁마다 같은 질문을 했고, 나는 같은 대답으로 화답하며 매일같이 잔소리를 주고받았다.


문의 잔소리에도 꿈쩍 않던 식단이 바뀐 건 병원을 다녀온 후였다. 세 달 연속 2주 마다 생리가 쏟아졌다. 짧아진 생리 주기 원인을 찾기 위해 병원에 방문했는데 원인은 찾지 못하고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아들었다.


난소 낭종. 오른쪽 난소에서 혹이 발견되었다. 다행히 혹은 수술할 정도로 크지는 않았지만 꼼짝없이 호르몬 약을 복용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그게 계기였다. 건강 관리를 지금이라도 시작해보자고 마음먹고는 약 복용과 함께 운동과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먼저 집 근처 헬스장을 등록했다. 하지만 헬스장은 난생 처음이었기 때문에 기구도 뭐 하나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개인 PT 수강권도 끊었다. PT 수업이 있는 날이든 없는 날이든 퇴근하자마자 무조건 헬스장으로 가 운동을 했다.


오랜만에 하는 운동에 신이 났다. 운동을 할 때면 머릿속이 말끔하게 비워지고, 몸을 썼을 때 주어지는 성취감이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게다가 “은숙님, 개인 운동 되게 열심히 하시던데요?” “은숙님, 자세가 많이 좋아졌어요!” 같은 트레이너 선생님의 칭찬이 더해지니 갈수록 운동을 향한 흥이 더해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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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습관도 조금씩 바꿔갔다. 열심히 운동한 게 아까워서라도 영양소를 균형있게 고루 챙겨먹게 되었다. 운동 효과가 도루묵 되는 걸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빵, 과자, 라면을 처분하고 닭가슴살, 계란, 두유를 상시 먹거리로 구비해두었고, 운동을 마치면 집에 돌아와 꼬박꼬박 단백질을 포함한 저녁 식사를 했다.


이런 나의 변화를 가장 반겨준 건 다름아닌 문이었다. 문은 어린 딸래미를 대하듯 “오구 잘했네!” “훌륭해!” “이제 쑥쑥이 완전 건강해지겠다!” 하며 넘치는 칭찬을 쏟아 부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문은 데이트 때마다 내게 조공하듯 단백질을 챙겨줬다.


문은 우리 집에 올 때면 백팩에 단백질 셰이크를 한가득 챙겨 와서는 냉장고 가득 채워 넣는다거나, 닭가슴살을 식소다에 재워 부드럽게 구워준다거나, 닭가슴살이 통으로 들어간 바질 페스토 샌드위치를 만들었고, 소고기를 듬뿍 넣은 토마토 스튜에 참치 폭탄 주먹밥까지… 마치 나를 위한 전용 셰프처럼 정성껏 나를 먹였다.


약을 복용한 지 3개월이 지나 다시 병원에 방문했다. 혹을 관찰하기 위한 정기 검진이었다. 다행히 혹은 1cm가량 줄어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잘 관리하셨어요. 이 정도면 다음 검진은 6개월 뒤로 미뤄도 괜찮겠네요"라며 웃으셨다. 좋은 변화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체지방은 2kg 줄었고, 근육량은 그만큼 늘어 있었다. 호르몬 약을 먹으면 체중이 오르기 쉽다는 말이 있었는데 정반대의 결과를 받아든 셈이었다.


그 순간, 깊은 안도감과 함께 아주 오랜만에 마음 깊숙이 차오르는 성취감을 느꼈다. 내가 나를 돌본 시간들이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결과로 돌아오다니. 달라진 변화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확인하니 마음가짐도 달라졌다. 더 나아지고 싶은 마음, 이대로 흐트러지기 싫은 마음이 하루하루 건강 관리를 이어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주었다.


그날밤 문에게 소식을 알렸다.


“나 혹 작아졌대! 그리고 체지방 빠지고 근육량은 늘었어!”

“오구구 대견해! 우리 쑥쑥이 완전 건강해지고 있네. 이러다 몸짱 되겠어!”


변화를 위한 과정을 가장 가까이서, 누구보다 물심양면으로 지원하며 응원해준 문의 축하가 뭉클했다. 사실 난소에 혹이 발견 되었을 때 겁이 났었다. 다행히 수술은 피해갔으나 호르몬 약을 복용하는 것 조차 겁이 났었다. 어쩌면 매일같이 무슨 운동을 했는지, 밥은 잘 챙겨 먹었는지 물어봐주는 문이 없었다면 운동을 하는 과정이 외로웠을지도 모르겠다. 꾸준히 습관을 들이는 것도, 변화와 성취를 맛보는 것도 어려웠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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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3개월 후, 문과 나는 종합 건강 검진을 받았다. 겨울이 되면 검진자가 몰릴 게 뻔하니 날이 따뜻할 때 미리 검진을 받기로 한 것이다. 건강 관리에 자신감이 차오른 채 당당히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뜻밖의 결과를 받았다. 그것은 바로 단백뇨 검출! 즉 요단백 증상 의심이라는 결과를 받아든 것. 우리 둘 다 요단백 증상 의심이라는 결과를 받아야 했다.


과유불급이라고 했던가? 건강하려다 도리어 건강 경고를 받은 셈이다. 다행히 단백뇨는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우리는 단백질 섭취를 조금 줄이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날 이후 단백질 섭취량을 조절하고 있다. 운동량도 조금 줄였다. 무리하게 몰아치는 것보다 지속가능성과 함께 휴식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달았기 때문이다. 식단 조절도, 운동도 ‘더 열심히’, ‘더 많이’가 답인 줄 알았는데 이제는 지금은 ‘너무 무리하지도, 너무 과하지도 않게’가 중요하다는 걸 안다.

건강을 지키는 일에도 균형이 필요하듯 사랑을 지켜가는 일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사랑을 과하게 탐하지 않는 것, 과하게 쏟아붓지 않는 것. 각자의 방식을 존중하며 지속가능한 신뢰를 오래 유지하는 것. 문과 함께하는 삶에서 균형 잡는 법을 배워하고 있다. 조금 더 건강하게, 조금 더 다정하게, 조금 더 균형 있게. 우리는 오늘도 그렇게 사랑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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