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 조직 검사 전야

나의 멘탈 쿠션 쌉T남

by 쑥자람

“어어? 왜 웃지? 나는 지금 심각하단 말이야!”


나는 양손을 허리 위에 올리고 잔뜩 화가 난 사람처럼 문을 쏘아 보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문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른 채 의자 등받이게 쓰러지듯 기대 누워 껄껄 웃었다.


“너무 신기해! 큭큭! 어떻게 글만 읽고서 통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아파할 수가 있어?”


문과 나란히 모니터 앞에 앉아 유방 조직검사에 관해 찾아보는 중이었다. 조직 검사를 앞둔 주말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평온한 주말이었다. 다만 보이지 않는 영역, 그러니까 내 내면은 평소와 같을 수 없었다. 괜히 가슴 부위를 만져보게 되었고, 누워서 핸드폰을 하다가도 쉽게 멍해졌다. 조직 검사 자체에 대한 겁과 혹여나 검사 결과가 좋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앞선 염려 때문이었다.


집에 가기 전, 나는 문의 컴퓨터 앞에 앉아 검색을 시작했다.


#유방 조직검사 후기


검색어를 입력하자 친절하게도 유방 조직검사 후기를 꼼꼼하게 적어둔 포스팅이 여러 개 떴다. 제일 상단에 위치한 포스팅을 클릭했다. 그리고 스크롤을 내리며 꼼꼼히 읽어갔는데… 읽어갈수록 나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후기마다 등장하는 바늘, 지혈, 통증이라는 단어들이 내 몸에 바로 꽂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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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무섭다. 그중에서도 주사는 더더욱 무섭다. 웃기게도, 어린 시절엔 지금보다 훨씬 더 씩씩했다. 엉덩이에도, 팔뚝에도 울지 않고 주사를 맞았다. 병원 가는 일로 엄마 아빠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주사에 대한 공포감을 인지한 건 대학 시절이었다. 동아리 후배가 캠퍼스 내 헌혈 센터로 헌혈을 하러 간다기에 “나도 갈래!” 하며 따라 나섰다. 당시 헌혈 센터는 헌혈한 학생들에게 영화 티켓 또는 햄버거 교환권을 줬다. 가난한 대학생들에게 영화 티켓 한 장,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는 햄버거 교환권은 꽤 값어치가 있는 것이었고, 대부분 가볍게 헌혈을 하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따라 나선 것이다.


그게 나의 첫 헌혈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헌혈이었다. 헌혈 도중 잠시 의식을 잃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날 이후 ‘주사 바늘이 몸 안에 들어오는 느낌’에 대한 공포감을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후배와 나란히 베드에 누워 팔에 주사를 꽂았고, 고무관을 통해 빨간 피가 타고 빠져나가는 것을 봤다. 그런데 피가 빠져나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옅은 공포감과 함께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지만 그게 이상 증세라는 걸 알 리 없는 나는 ‘원래 이런 느낌인가?’ 하며, 이상하다는 걸 느끼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작은 소리로 “선생님, 선생님, 어지러워요”라고 웅얼웅얼 이야기했고, 그걸 들은 후배가 큰 소리로 선생님을 불러줬다. 정신을 차렸을 때 내 헌혈은 끝이 나 있었고, 나는 헌혈 센터 선생님의 부축을 받아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코로나 백신을 처음 맞았을 때도 나는 기절했다. 1차 백신을 맞는 날이었다. 모두가 처음으로 백신을 맞는 시기였고, 그래서 부작용에 대한 긴장도가 가장 높던 때였다. 몸에 주사 바늘이 들어오는 게 무섭기는 했지만 백신을 맞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대기하는 내내 스스로에게 ‘잘 참을 수 있어. 잘 넘어갈 수 있어.’라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내 순번이 되었을 때 용감하게 백신을 맞았다. 당시는 백신 투여 후 혹시 나타날 부작용을 대비해 15분 정도 대기 공간에서 휴식을 취한 후 귀가할 것을 권했다. 백신을 맞고 나서도 긴장감이 풀리지 않았는지 나는 15분 대기 공간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살짝 굳어 있었다. 길게 느껴지는 15분이 지나자 그제야 ‘휴. 드디어 끝이다! 다행히 아무 문제 없군!’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으로 가려는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정신을 차렸을 땐 휠체어에 실린 채 응급실로 옮겨지는 중이었고, 응급실 베드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아빠가 데릴러 와서 아빠 차를 타고 귀가를 했다.


시간이 지나고서야 이런 증상을 부르는 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주 신경성 실신: 극심한 신체적 또는 정신적 긴장으로 인해 혈관이 확장되고 심장 박동이 느려져 혈압이 낮아지는 현상으로, 급격히 낮아진 혈압 때문에 뇌로 가는 혈류량이 감소하여 일시적으로 의식을 잃는 현상.


증상에 명확한 이름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건강 검진에서 피를 뽑거나 진료 시 주사를 맞아야 할 때마다 꼭 말씀을 드린다.


“제가 주사 바늘이 들어갈 때마다 미주 신경성 실신을 겪어서요.”


간호사 선생님들께 이렇게 말씀 드리는 것만으로 긴장감이 덜어지는 효과가 있었고, 이전처럼 정신이 희미해지는 정도가 점차 나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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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조직검사라면 말이 달랐다. 유방 조직검사 후기를 한 줄 한 줄, 하나 하나 읽어갈수록 나는 다리를 두 다리를 달달달 떨었다.


“가슴에 마취 주사를 놓는다고?”

“마취 해도 소리가 워낙 커서 조직 채취하는 게 다 느껴진다는데??”

“헉 주사 바늘 직경이 3mm라고???”


내가 해야 하는 유방 조직검사는 ‘총조직검사’, 줄여서 ‘총생검’이라고도 불린다. 초음파로 혹의 위치를 확인하며 해당 부위에 주사 바늘을 찌른 후, 버튼을 누르면 ‘탕’ 소리와 함께 조직이 주사에 딸려 나오는 방식이다. ‘탕’ 하는 소리가 꼭 총소리 같다고 해서 ‘총조직검사’로 불린다고 하고, 다섯 번 정도 조직을 채취한다고 한다.


국소 마취 후 검사를 실시하기 때문에 통증은 없지만 ‘탕’ 소리가 워낙 커서 오히려 소리에 놀랐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아무리 마취를 했어도 ‘탕’ 소리와 함께 조직이 떼내지는 느낌이 들었다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 블로그 후기를 세 개 정도 읽으니 그 다음부터는 다들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더 찾아 읽을 필요가 없었는데도 계속해서 후기를 읽어 내려갔다. 오른손으로는 스크롤을 내리고, 왼쪽 손톱을 잘근잘근 씹은 채, 다리를 달달달 떨며 문을 부른 채.


“오빠 ㅠㅠ 오빠아 ㅠㅠ 나 못 해 ㅠㅠ”


눈물만 안 났을 뿐이지 내 얼굴은 완전히 울상이었다. 정말이지 울상이었다. 그런데도 문은 나를 달래주거나 안심시켜주기는커녕 큭큭 거리며 웃기만 했다.


“쑥쑥이 이미 검사하고 있는 것 같아! 읽는 것만으로도 통증이 느껴져?”

“상상이 되잖아. 오빠는 이거 읽으면 상상이 안 돼?”

“응! 나는 그냥 ‘그렇군.’ 하면서 정보를 저장하는데?”


계속해서 유방 조직검사에 관한 정보를 탐색하다보니 알고리즘이 유방 조직검사 시연 영상을 가져다줬다. 그리고 겁없이 영상을 클릭한 나는 엄청난 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꺅!오빠!!! 이거 바늘이 완전 도라이버 급인데? 나 이거 못해. 절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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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에 질린 채 소리를 지르며 경악을 하는데도 문은 킬킬 웃으며 말했다.


“쑥이 도라이버 몰라요?”


그렇다. 잠시 잊고 있었다. 내 남자친구 문이 로봇이라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예전에 문의 병원 방문 썰을 듣고 경악한 적이 있었다.


축구를 하다 넘어져서 무릎에 상처가 났는데, 초동 대응을 잘 못해서 며칠 후 상처가 크게 곪아 있었다고 했다. 육안으로 보기에도 그렇고, 냄새도 확실히 이상해서 병원에 방문을 했고, 병원에서는 곪은 부분을 다 긁어내는 수밖에 없다며 꽤 면적이 넓은 상처를 모두 긁어냈다고 했다. 상처에 소독약만 발라도 쓰라림이 느껴질진대 모조리 긁어내다니, 나였다면 의사 선생님의 치료에 방해가 될 정도로 울고불며 다리를 움직였을 것이다. 하지만 문은 달랐다. 저절로 다리가 덜덜 떨릴 정도로 통증이 있었지만 그는 꾹 참을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 아픈 건 내가 아니다. 지금 아픔을 느끼는 건 내 다리일 뿐이다.’라고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그 이야기를 듣고는 ‘정말 독한 사람이군’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문에게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면서 지레 겁먹은 내 모습이 얼마나 다른 세상 사람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당장 눈앞의 것이 두려웠다. 가슴에 마취 주사를 찌르고, 도라이버 만한 바늘을 찌르는 당장의 것이 두려웠다. 그런데 알고리즘이 불러다주는 영상들을 볼수록 두려움의 범주가 커졌다. <어느날 갑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같은 젊은 여성들 영상이 심심찮게 보였기 때문이다. 불안과 염려가 머릿속에서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다. 이게 정말 그냥 ‘검사’로 끝날 수 있는 일일까? 혹시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그다음은 어떻게 되는 걸까? 큰 병원, 수술, 치료비, 직장 문제까지…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그 생각을 밀어내려 했지만, 점점 더 불안의 입자는 촘촘해졌다.


“안돼. 조직검사가 마지막일 거야. 나 그 이상은 절대 못 해.”


애써 다짐처럼 내뱉은 말에 옆에서 로봇 같은 목소리가 툭 하고 박혔다.


“절대가 어디 있어? 치료가 필요하면 받아야지.”


그 한 마디에,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도, 무한 반복으로 돌아가던 생각도 멈췄다. 그 말엔 냉정함보다 현실을 꿰뚫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 문득 ‘정말로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가슴을 콕 찔렀다.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생각 속에서 이미 나는 환자였고, 회사에 뭐라고 보고할지, 치료비는 어떻게 감당할지, 이사라도 가야 하는 건지까지 온갖 시나리오를 그렸다. 그러는 사이, 문은 아무 말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마에, 뺨에, 눈가에 차례로 입을 맞추며 말 없이 나를 다독였다.


“우리 쑥이~ 괜찮아질 거야. 별일 없을 거야.”

“검사 받는 날, 내가 케어해주러 갈게. 퇴근하자마자 쑥이네로 쏠게. 집에서 조용히 요양하고 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뭉클하게 올라오는 감정에 눈시울이 따뜻해졌다. 문이 꼭 안아주었고, 나도 천천히 팔을 들어 문을 감싸 안았다. 그의 등에 손바닥을 붙이며 조용히 말했다.


“오빠 고마워. 무서운데,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마워.”


그렇게 한참을 문을 끌어 안고 충전을 마친 뒤 씩씩하게 일어났다.


“가자! 오빠 나 다녀올게!”


문은 가방을 챙기는 내 옆에서 조용히 모자를 썼다. 그리고 먼저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걷자며. 짧은 거리를 함께 걷는 동안 우리는 별말을 하지 않았다. 나란히 서서 천천히 걸었다.


문득 깨달았다. 무서움을 견디게 하는 건, 용기가 아니라 함께 있어주는 손길이라는 걸. 버스 문이 열리고, 나는 그 손을 한 번 더 꼭 잡은 뒤 올라탔다. 창밖으로 점점 멀어지는 문이 손을 흔들었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손을 흔들어 답했다. 무섭지만, 괜찮다. 혼자가 아니니까, 괜찮을 거다. 두려움이 사라지지 않아도, 사랑이 그 안에서 길을 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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