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자친구는 짜파게티 요리사

나의 진짜 피로회복제

by 쑥자람

2박 3일의 초등부 여름성경캠프가 드디어 끝났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절로 번지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웠다. 분명 아이들이나 어른들이나 같은 인간이라는 종족인데 아이들과 있을 때면 어떤 긴장감 없이, 경직 될 필요 없이 나로 존재할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가슴 한 군데를 꽉 막고 있던 돌덩이가 뻥 뚫린 것마냥 시원했고 자유로웠다.


그런데… 그런데… 왜 이렇게 피곤한거지? 마르지 않는 샘처럼 퐁퐁 솟아나는 에너지를 주체 못하는 아이들은 언제나 걸음이 빠르고 뛰어다닌다. 말 또한 나긋나긋 하는 법이 거의 없고 하이톤과 고함이 기본값이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이 흥분 상태라는 말이다. 게다가 질문이 얼마나 많은지… 아이들과 함께하는 2박 3일 동안 내 영혼은 자유를 찾았다. 그리고 내 육체는… 녹초가 되었다. 모든 일정을 끝내고 아이들을 돌려보내자마자 속으로 외쳤다.


“끝! 해방 해방! 다음 여름까지 더이상의 캠프는 없다!”


번개처럼 짐을 챙기고는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들께 인사를 한 뒤 교사 중 제일 먼저 집으로 향했다. 발걸음은 가벼웠고, 마음은 날아갈 듯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남자친구 문네 집으로 향했다. 사실 문을 만나러 가기에 꼴이 말이 아니긴 했다. 뜨거운 땡볕 아래 (안 그래도 까만데 더)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수련회 티셔츠에 슬리퍼, 게다가 2박 3일 짐이 담긴 뚱뚱한 백팩까지. 꼬질꼬질한 모양새가 영 데이트와 거리가 멀어보였지만 상관 없었다. 당장 침대 위로 다이빙해서 모자란 잠을 보충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지만 그보다 간절한 건 문이었다. 우리 집보다 더 먼 길도, 내일 출근 때문에 오래 머물 수 없는 것도 다 괜찮았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 그저 보고 싶은데.


“오빠! 나 지금 오빠네로 간다!”

“안 피곤해~?”

“걸스카우트 대원 같은 까만 애가 갈 거니까 놀라지 마.”

“오히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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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창가에 앉았다. 하늘은 높고 맑았고, 바람은 미세하게 선선했다. 입추가 지났다더니 정말 가을이 덜컥 왔나보다. 가방에서 초코맛 과자를 꺼내 영화를 보며 팝콘을 먹듯, 하늘을 보며 와작와작 씹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오늘 첫 끼네.’ 오후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120g 짜리 미니 과자 한 봉지가 트리거였을까? 급격하게 배고픔이 몰려 왔다. 문이 보고 싶다는 일 순위 욕구가 고작 120g 짜리 초코맛 과자에 밀려 버렸다. 그때부터 머릿속은 오직 두 가지 생각뿐이었다.


‘배고프다’

‘뭐 먹지?’


그때였다.


“쑥쑥이 배고프지~? 짜파게티 끓여줄까?”


짜파게티! 그래 짜파게티! 짜파게티라는 말에 입에 군침이 싹 돌았다.


문은 짜파게티 요리사다. 봉지 뒷면 레시피대로 끓이는 퓨어 짜파게티부터, 계란후라이와 치즈를 얹은 짜계치, 매운맛을 못 먹는 나를 위해 사천 짜파게티와 오리지널을 섞은 ‘맞춤 매콤 짜파게티’, 항정살 구이를 곁들인 건면 짜파게티까지—그가 끓여주는 건 늘 최고였다. 매 데이트마다 짜파게티만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그의 부엌 찬장에는 항상 짜파게티, 건면, 사천 짜파게티가 줄지어 있었고, 그는 틈만 나면 유혹했다.

“쑥이 짜파게티 끓여줄까?”


하지만 내 대답은 대부분 “안 돼”였다. 식단 조절 중인 나에게 주 1회 짜파게티는 치명적이었으니까. 짜파게티는 ‘아주 가끔’ 허락되는 특식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특식! 오늘 같은 날은 먹어도 되지 않을까?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답장을 보냈다.

“응! 나 먹을래!!”


그 순간부터 머릿속은 오직 하나—짜파게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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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삐삐삐삐-

현관문을 열자마자 시원한 냉기가 밀려나왔다.


“우와 시원해! 오빠 나 왔다네~~”


집이 고요했다. 평소라면 ‘쑥쑥이~~’하며 두 팔 벌려 마중 나와야 하는데 맞아주는 이가 없었다. ‘짜파게티 끓이느라 집중하고 있나?’하며 곧장 부엌으로 향했는데 문이 없었다. 화장실, 부엌, 거실까지 불이란 불은 훤히 다 켜져 있는 집에 아무도 없었다.


‘어디갔지? 어디 간다는 말 없었는데?’


그때 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딨어? 나 집 왔는데~~”

“쑥쑥이! 왜 이렇게 일찍 왔어~? 나 치즈 사러 잠깐 마트 왔다네 금방 갈게~~”


그는 커다란 손에 달랑 슬라이스 치즈 한 묶음을 들고는 집에 돌아왔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만난 나를 안아준다거나 눈을 맞추며 얼굴빛을 살핀다거나 하는 인사 없이 곧장 주방으로 가 짜파게티를 끓이기 시작했다.


“쑥쑥이 배고프지? 얼른 짜파게티 끓여줄게!”


물을 올리고, 물이 끓는 동안 후라이팬에 대패 삼겹살을 볶는 동안 그의 안중에 나는 없었다. 한 가지 목표가 있으면 열중하느라 다른 것은 안중에 없는 그를 아는 터라 그 모습이 무척이나 사랑스러웠다.


‘굉장한 한 그릇을 만들 셈인가보군!’


쉼없이 대패 삼겹살을 휘적이는 그의 뒤로 가서 그를 살포시 안았다. 그러자 그제야 겨우 한 마디 건네는 나의 문.


“쑥쑥이 잘 다녀왔어~?”


눈 앞에서 맛있게 익어가는 고기를 보고 있으니 당장 입을 벌려 받아먹고 싶었다. 하지만 참기로 했다. 난 어른이니까! 그러고는 요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스르르 그를 놓아주고는 조수를 자청했다.


“오빠 나 뭐할까?”


허기를 누르고 그의 보조가 되어 끓는 물에 면을 넣고, 주변 정리를 하고, 김치와 젓가락을 세팅하니 짜파게티가 완성되었다. 슬라이스 치즈 한 장과 대패 삼겹살이 토핑된 짜파게티가 차려졌다.

“쑥쑥이 맛있게 먹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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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아 너무 맛있겠다~~ 나 다 먹는다!?”

“응! 쑥쑥이 다 먹어!”

“잘 먹겠습니다!”


열기에 녹진하게 녹은 슬라이스 치즈와 짜파게티, 그리고 대패 삼겹살까지 야무지게 한 젓가락을 집어 입에 넣는 순간, 진한 짜장 소스와 치즈의 풍미, 씹을수록 고소해지는 대패 삼겹살의 육즙까지… 첫 입의 감동에 취해버린 나는 젓가락을 내려 놓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오물오물 씹으며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후우움- 너무 맛있잖아~~”


그제야 문은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했다.


“우리 쑥쑥이 2박 3일 동안 애기들이랑 같이 있느라 수고 많았지? 많이 먹어~ 먹고 더 먹어~!”


그동안 꽉 붙잡고 있던 어깨 힘이 풀리고, 속 깊숙이 쌓여 있던 허기와 피로가 한 번에 녹아내렸다. 2박 3일 내내 쉴 새 없이 뛰어다니고, 아이들의 웃음과 울음을 품어내느라 마음은 분주하고 몸은 무겁기만 했는데, 이 한 젓가락이 그 모든 걸 잊게 만들었다.


그 맛이 특별했던 건 단순히 짜파게티에 치즈와 삼겹살을 얹어서가 아니었다. 내가 오기 전에 치즈 하나를 사러 급히 다녀온 사람, 나를 먹일 생각에 뜨거운 불 앞에서 열중한 사람, 그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웃으며 또 한 젓가락을 집었다. 오늘 같은 날은, 그냥 먹어도 된다. 아니, 꼭 먹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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