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의 눈물이 좋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왠지 눈물이 많으실 것 같아요.”
남자라면 모름지기 울지 않는 것이 미덕인 한국 사회에서 처음 만난 한국 남성을 면전에 두고 무례한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문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처럼 촉촉했기 때문이다. 유리알처럼 투명하고 맑은 문의 동그란 눈을 보고 있으면 길고양이를 보는 것 마냥 측은함과 신비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제어할 수 없는 마음이 나도 모르는 새 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행불일치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높은 확률로 마이너스 요소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나는 문이 언행불일치한 몇 순간을 사랑한다. 그중 한 순간은 이것이다.
‘남자는 울지 않아!’라고 씩씩하게 말하면서도 눈시울이 붉어질 때면 그 모습을 숨기지 않고 나를 지그시 바라보는 문, 그러다 눈물이 흐를 것 같으면 시선을 멀리 내다보며 눈에 힘을 주는 순간. 나는 그 순간의 문을 사랑한다.
처음 문의 눈물을 목격한 건 우리 집에서 치킨을 먹을 때였다. 그날은 문 어머니의 세 번째 기일이었다. 어머니 기일 전날 밤 나와 저녁을 먹은 문은 원래 계획대로라면 저녁 식사 후 본가로 갔어야 했다. 하지만 INFP와 INTP가 만나면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드문 법. 문은 본가로 가지 않고 내 방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본가 가는 문의 손에 들려줄 생각으로 미리 써둔 편지를 비몽사몽 한 채로 나를 배웅하는 문의 손에 쥐여주고는 출근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비몽사몽했던 아침과 달리 단정하고 말끔한 모습으로 문은 나를 맞아주며 치킨을 시켜줬다.
우리는 치킨을 앞에 두고 아웅다웅 이야기를 나눴다. 그때였다. 내가 문의 눈물을 처음 목격한 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우리가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순간 문이 말없이 치킨을 입에 꾸역꾸역 넣고 있길래 고개를 돌려 문을 올려다보니, 문의 눈과 코가 금방이라도 톡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나는 오른손으로 문의 등을, 왼손으로 문의 손등을 쓸며 말했다.
“오빠 울고 싶으면 울어도 돼!”
그러자 문은 양볼 가득 치킨을 담고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대답했다.
“아까 아침에 쑥이 출근하자마자 쑥이가 준 편지 보면서 한바탕 엄청 울었어!”
두 번째로 문의 눈물을 목격한 건 규카츠와 크림우동 세트를 먹을 때였다. 콘텐츠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영화, 애니메이션, 드라마 등 웬만해서는 도무지 공통의 콘텐츠를 찾기 힘든 문과 내가 웬일로 공통 콘텐츠를 찾았다. 바로 드라마 <멜로가 체질>.
드디어 쿵쿵짝짝이 맞게 된 우리는 드라마의 무엇이 인상 깊었는지, 어떤 배역을 좋아했는지, ost는 어땠는지 신이 나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러다 나는 별안간 기억나는 드라마 속 대화를 읊었다.
“나 힘들어. 안아줘.”
그러자 문이 대답했다.
“너네한테 하는 말이야.”
정확하게 뒤이어 나올 대사를 기억하는 문이 신기해서 그를 올려다봤는데 문의 눈과 코가 금방이라도 톡 터질 것처럼 붉어져 있었다. 식당 조명이 어두웠는데도 문이 눈물을 참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빠 우는 거야?”
“응”
“왜요? 슬퍼서?”
“... 몰라”
이후로도 문의 눈에는 자주 눈물이 맺혔다. <극장판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을 보면서도,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배꼽을 잡고 웃을 때도, 미래에 출간될 에세이 제목을 지을 때도. 눈물이 터지는 순간마다 이유는 달랐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문의 감정이 진하게 살아 있다는 것.
처음엔 그저 ‘눈이 촉촉해 보여서 눈물이 많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문의 눈이 벌게지는 순간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갔다.
어젯밤 오랜만에 문의 두 눈과 콧등이 벌게졌다. 열한 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결혼과 미래에 관해 심각히 대화를 나눴고, 그러다 밥때를 훌쩍 놓쳐 버렸다.
나는 눈물을 닦고 문에게 화해의 포옹을 청했다. 우리는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가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상을 차렸다. 미리 만들어 둔 월남쌈과 땅콩소스, 냉동실에서 꺼낸 항정살 양배추 볶음, 그리고 문은 탄산수, 나는 프로틴셰이크를 들었다.
나는 머리가 아플 만큼 많이 울었고, 그런 나를 보며 문득 엄마가 떠올랐다. 우리 부모님의 결혼사진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다. 엄마가 다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신혼 초, 장례식장에 간다던 아빠가 연락 없이 늦게 들어오자 엄마는 아빠가 집에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울면서 결혼사진을 찢었다고 했다. 엄마와 내 상황은 다르지만 연인과 대화를 나누다 울고 나니 엄마 생각이 자꾸 났다.
‘결혼하면 우는 일이 더 많아질까?’
‘엄마는 아빠 때문에 얼마나 울었을까?’
그런 생각을 하다 문 어머니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오빠,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울었다는 얘기 들은 거 있어?”
문은 잠시 생각하다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대신 이런 이야기를 들려줬다. 몸이 편치 않으셨던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한 시어머니를 10년간 직접 모셨다는 이야기.
4남매의 셋째 아들 아내로서 시어머니를 모신다는 건 흔치 않은 일이지만 문의 어머니는 자신의 신념이었던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기꺼이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 아픈 몸으로 시어머니를 씻기고, 밥을 차리고, 함께 시간을 보내며….
문의 어머니 이야기 속에서 나의 엄마가 겹쳐 보였다. 나오미를 떠나지 않은 룻처럼 할머니에게 최선을 다했던 우리 엄마. 눈감는 순간까지도 할머니가 자유롭고 눈치 보지 않는 삶을 살기를 바랐던 엄마. 그래서 그런 걸까? 문 어머니 이야기를 들을 때면 한 번도 뵌 적 없는 그분이 유독 애달프게 느껴진다.
아니다. 내 마음이 애달파지는 이유는 내가 사랑하는 문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그리워하는 사람이 바로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문의 마음이 나에게 그 마음이 전이되기 때문이다.
“에, 쑥이 눈 또 빨개진다!”
문이 놀렸다. 나는 고개를 휘휘 젓고 이렇게 말했다.
“오빠, 어머니 진짜 대단하신 것 같아. 어머니는 정말 좋은 며느리셨던 것 같아. 어머니도 며느리 사랑 듬뿍 받고 가셨으면 좋았을 텐데… 내가 어머니만큼 좋은 며느리가 됐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자 이번엔 문의 두 눈과 콧등이 벌게졌다. 오랜만에 보는 눈물 머금은 문의 모습이었다.
“내가 오빠한테 더 더 잘할게. 달님이랑 아버지께도 잘하고. 오빠가 나를 아끼듯, 나도 오빠를 잘 지켜줄게. 귀한 아드님, 내가 고생시키지 않을게.”
문은 말없이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멋쩍어진 나는 프로틴셰이크를 들며 “짠!” 하고 외쳤고, 문도 탄산수를 들며 화답했다.
이제는 문이 흘리는 눈물의 결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문이 걸어온 시간, 마음속에 품은 사랑, 그리고 침묵 속에서 흘러나오는 감정들. 문은 슬퍼서만 우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많아서 우는 사람이다. 그래서 문이 눈물을 머금을 때마다 내 마음도 자꾸 문 쪽으로 움직인다. 그의 감정이 전염되기도 하지만 그보다 문이라는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문이 우는 얼굴이 좋다. 아프고 예쁘고, 무엇보다 솔직한 얼굴. 그 눈물 속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선명하게 보인다.